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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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흔들리는 삶에 찾아온, 그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떤 ‘하루’ 2007년 창비장편소설상, 문학수첩작가상을 통해 등단하고 10년여 동안 7권의 단행본을 꾸준히 발표하며 “그 자체로 한국문학의 든든한 자산”(해설, 강경석)으로 자리매김한 소설가 서유미의 두번째 소설집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가 출간되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발표된 단편소설 6편을 묶었다. 경쾌한 필체로 평범한 인간 군상을 따뜻하게 보듬고, 시대의 질병을 예민하게 포착해온 작가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위기와 불안의 단면을 일상의 차원에서 세밀하게 해부한다. 특히 다양한 세대의 고민으로 시선을 확장하여 마치 하나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은 듯한 이번 소설집에서는, “어떤 속단도 내리지 않고, 무리한 요구도 없이 돌아봐주는 소설가”(추천사, 정세랑)가 어느 한 세대, 한 사람에게도 소홀함 없이 건네는 애정 어린 안부가 느껴진다.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예감 불안정한 현실에 말미암은 소시민들의 문제를 특유의 발랄함으로 다뤄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 이르러 스스로 “여기 실린 소설과 함께 인생의 다른 구간으로 넘어왔다”(작가의 말)고 말하며 문학적 시야를 한결 넓혀 다양한 세대의 고민을 담아낸다. 20대 청년부터 60대의 노인까지 수록작 6편의 주인공들은 “나름대로 생활 속 질곡을 타개하기 위해 열심이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해설)이다. 그들이 직면한 현실은 결혼과 이혼 그리고 출산, 양육과 교육, 실업과 가계부채 그리고 노후 문제까지 세대를 가로지르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위기와 불안을 총체적으로 드러낸다. 보증금을 올리려면 대출을 받아야 하고 월세를 더 내려면 수입이 늘어나거나 지출을 줄여야 했다. 그동안 잠도 줄이고 게으름 피우는 시간도 줄이고 말도 줄이고 꿈과 기대와 감정까지 줄이며 살았는데 여전히 뭔가를 더 줄여야만 했다.(「에트르」30면) 10년이란 세월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긴 시간이지만 뒤돌아보면 몇개의 장면만 기억나는 꿈과 같았다. 같이 먹은 수많은 음식과 수없이 부른 서로의 이름과 애칭, 셀 수 없는 다툼과 화해, 장소와 자세, 의미와 용도를 바꿔가며 진행된 뒤에 마침내 규격화된 섹스가 그 안에 다 녹아 있었다.(「뒷모습의 발견」119면) 「에트르」는 서른한살을 앞둔 연말에 백화점 베이커리 에트르에서 일하는 ‘나’의 이야기이다. 집주인이 월세나 보증금을 올리겠다고 하자 이사를 결심한 ‘나’는 12월 31일, 베이커리에서의 잔업을 끝낸 밤에 집을 보러 간다. 도착한 동네는 ‘나’의 동네와 소스라치게 닮아 있고 집을 보러 오라던 여자는 야근 때문에 집을 보여줄 수 없다는 연락을 해온다. 모처럼 산 에트르의 케이크는 허망하게 손에서 놓쳐 떨어지고 ‘나’의 삶은 여전히 버겁기만 하다. 「뒷모습의 발견」에서는 휴가를 내고 남편과 함께 강원도로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을 간 ‘나’ 앞에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종이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남편을 찾아 헤메는 동안 비로소 돌아보는 부부의 10년은 “이해라는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간 곳이 오해 속이었고, 결국 핵심이 아닌 언저리만 맴돌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남편의 지인들이 말해주는 남편은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것만 같다. 마지막에 실린 단편 「변해가네」의 주인공 ‘나’는 치매에 걸린 엄마를 요양원에 들여보내는 날 딸의 산통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딸이자 엄마이고 이제 곧 할머니가 될 자신의 삶을 찬찬히 돌이켜본다. 이렇듯 일상에 찾아온 어느 하루, “애써 억누르며 회피하고자 했던 위기의 진면목들”(해설)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주인공들의 삶은 금 가듯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일종의 균열을 맞이한다. 뭉근한 슬픔에서 비롯되는 묘한 생기 「개의 나날」의 주인공 ‘나’는 “고졸에 기술이나 경력도 없는 백 킬로그램의 거구”로 폭식과 게임이 삶의 위안이다. 우연히 만난 ‘조’를 따라 성매매를 알선하는 ‘삐끼’로 살고 있는 ‘나’는 가끔 기형도의 싯구 ‘나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다’를 읊어본다. 오래전 새아버지가 될 뻔했던 남자의 부고를 듣고 나서야 ‘나’는 자신의 짧은 인생을 돌아보는데, 남자가 남긴 편지와 돈을 쥐고도 ‘나’는 내일 역시 똑같은 하루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떠돌이 개를 향해서만큼은 다시는 여기 오지 말라고 말한다.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의 인물들의 미래는 희망적이지 않아 보이고, 우리는 모든 것이 잘 되리라고 쉽사리 단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스스로에게 해야 할 말을 떠돌이 개에게 던져보고, 망가졌을 것이 뻔한 케이크 상자를 품에 안는다. 넘어지고도 결국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따뜻한 애정이 이렇게 “뭉개져버린 희망을 재건 가능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묘한 생기”(해설)로 작품 편편에 남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우리에게 서유미 소설 속 ‘나’들의 이야기는 뭉근한 슬픔에서 비롯된 가장 솔직하고 유효한 지지로 다가온다. 이제 10년여의 활동을 결산하고 다음 10년으로 나아갈 서유미의 다음을 기대하면서, 우리도 기꺼이 그를 따라갈 마음이 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한 페이지밖에 되지 않지만 책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지나간 것 같았다. 시간을 내어 찬찬히, 책장을 넘기며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떠올리자 이상하게 웃는 얼굴만 생각났다. 그것 외에 다른 것은 희미했다. 엄마가 많이 웃었다고 하자 오빠와 동생은 모두 울먹거렸다. 나는 시큰거리는 팔목을 천천히 주물렀다. 한 장면만으로 기억되는 하루, 하나의 표정으로 남는 얼굴도 나쁘지 않구나 싶었다. (「변해가네」18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