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만화’로 부활했다. 행복한 고전(古典)이란 많은 독자들이 오랫동안 읽고 또 늘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어떤 책은 명성에 비해 극히 적은 독자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고 할 수 있다. 난해한 문장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끝없이 중첩되고 혼재되어 있는 이 소설은 일반 독자만이 아니라 연구자들도 제대로 읽어내기 힘든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국내 독자들은 물론 프랑스 독자들도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 포기하곤 하는 텍스트라고 한다. 숱한 국내 독자들도 이 책을 읽으려 애를 쓰지만 중도에 그만둔 ‘우울한 경험’을 안타까워하곤 한다. 그렇다면 이 대작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그런 시도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만화’를 통해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부활시킨 일이다. 그 주인공은 광고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프루스트의 작품세계에 매료되어 만화가의 길로 뛰어든 영상 전문가 스테판 외에이다. 그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작품 전체를 열네 번이나 정독했고, 이야기체 감각을 보여줄 문장들을 점차적으로 골라냈다. 또 사진 자료를 수집하고, 프루스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파리 외곽의 일리에(콩브르) 지역의 풍경과 건축물을 스케치했으며, 그 시대의 의상을 연구하고, 프루스트의 특이한 삶을 보여주는 여러 곳을 방문하는 등 이 년간 이 작업을 위해 준비했다”(선데이 타임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만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만들어졌는데, 만화가 스테판 외에는 일 년에 한 권씩 십이 년에 걸친 작업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이 책은 그 첫 권이다. 원전의 문자 텍스트를 영상 이미지에 함께 담아 ‘한눈’에 보여주는 마력을 발휘 만화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현지에서 출간된 지 3주 만에 초판 12000부가 모두 팔려나가 8000권을 다시 찍었다고 한다. 이 만화책에 대한 현지 반응은 긍정론·부정론이 뒤섞여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프루스트의 원의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작업된 이 책이 프랑스 독자들에게 유익한 프루스트 문학 체험이 되었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며, 이것은 다른 언어권에 속해 있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훨씬 실감나는 프루스트 체험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프루스트의 문학세계를 세밀하고도 애정이 깃든 그림들로 복원해낸 이 만화가의 화필에 매혹되지 않을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프루스트의 작품을 문자 텍스트로만 접해 왔던 독자들은 이 만화본의 어떤 대목에서는 원작을 통해선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엄청난 속도감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단선적(單線的) 서술의 전개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문학 독서행위와는 달리, 몽타주를 서술의 기본단위로 삼는 만화는 원전의 문자 텍스트를 영상 이미지에 함께 담아 ‘한눈에’ 보여주는 마력을 발휘한다. 이는 만화만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하지만 스테판 외에는 자신의 만화책이 프루스트의 원작을 읽는 독서행위를 결코 대신할 수 없으며, 자신의 책을 길잡이삼아 직접 원작을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작년말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