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100년 전통 하버드대 찰스 엘리엇 노턴 강의 역사에 남은 명강을 책으로 읽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는 해마다 저명한 예술가나 학자를 초청해 미술, 문학, 건축, 음악 등에 대한 이야기와 이론을 듣는 강연을 엽니다. '넓은 의미의 시학 강연'이라고도 불리는 이 '찰스 엘리엇 노턴 강연'은 움베르토 에코, 레너드 번스타인, 토니 모리슨,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이 강단에 섰던 유서 깊은 강연으로 1925년에 개설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56년 하버드대학에서는 미국 화가 벤 샨을 강연에 초청합니다. 벤 샨은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고유의 스타일을 확립한 예술가로, 그의 작품과 철학은 다양한 사회운동과 결부된 작업을 하는 여러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 그가 찰스 엘리엇 노턴 강연에서 여섯 번에 걸쳐 예술과 대학의 관계, 자신의 작업 과정과 예술관, 예술에서 형식과 내용의 관계, 예술/예술가의 비순응성, 현대 예술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 예술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공부에 관하여 명쾌한 어조로 친절하게 이야기합니다. 이 흥미로운 강연 내용을 엮은 책이 바로 『예술가의 공부』이지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예술가가 되기 위하여
당시는 인문학과 창의력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대학이 예술대학을 설치하고 예술가 영입을 시도하던 때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강연을 하게 된 만큼 벤 샨은 예술과 대학의 관계, 대학에서의 자유교육에 대한 내용을 시작으로 예술가가 되려는 사람과 예술가로서 성장하고 싶은 사람이 갖춰야 할 태도, 익혀야 할 공부에 대해 힘주어 말합니다.
그는 예술가가 갖춰야 할 기본 조건으로 교양, 식견, 통합성을 꼽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으라고, 모든 대화를 경청하고 사람들의 대화에서 무언가를 얻으라고, 대학 안에서나 밖에서나 뭐든지 읽고, 수학과 물리학과 경제와 역사를 배우고,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해보고,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모든 것에 귀를 기울여 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의견을 가지고, 예술에 삶에 정치에 휘둘리게 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유합니다. 나중에 하고 싶은 일과 무관한 내용의 경험이란, 지식이란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듯 모든 경험은 예술가에게 공부가 됩니다. 벤 샨은 수천 가지 경험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형태를 갖추게 하려면, 그러니까 시인이 경험을 음조와 운율과 단어로, 화가가 색과 형태와 이미지로 형상화하려면, 경험에 질서와 규율을 부여하여 새로운 의미에 도달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자유교육에 기반을 둔 통합성이라고 말합니다. 경험과 지식과 사유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예술가가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이라고 거듭 강조하지요. 사물과 사람의 가치를 알아보고 지금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는 지각력(교양), 방대한 지식을 축적하고 자기 의견을 만드는 능력(식견), 이 모든 재료를 창의적 행위로 통합하는 능력(통합성)은 사실 예술가뿐 아니라 한 인간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통합형 인간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기본 조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하고 싶은 일과 무관한 내용의 지식이라는 건 없다’는 말은 예술가나 예술가 지망생은 물론이고 이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지요.
연구자나 비평가가 아니라 예술가가 직접 자신의 예술관과 공부에 대해 말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신선한 자극이 될 것입니다. 책 곳곳에 들어간 저자의 드로잉은 그가 강연에서 말하는 내용과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느슨하게 연결되면서 재미와 이해를 더해 줄 것이고요. 차곡차곡 쌓은 지식과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공부, 그 경험에 가치를 부여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공부를 하고 싶은 분이라면 이 예술가의 공부법이 좋은 지침이 되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