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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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乙)을 통해 민주주의를, 정치를 다시 사유하다! 가장 신뢰받는 현대 서양철학 연구자/번역자 진태원의 첫 단독 저서!! 드디어 진태원의 단독 저서다. 국내 최고 수준의 프랑스 현대철학 권위자로서 왕성한 논문 집필과 각종 기고, 강의 활동을 통해 지적 성실성을 인정받은 동시에 다수 책의 기획자, 편자, 번역자로 단단한 신뢰를 쌓아 온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진태원 교수. 오랫동안 벼려 온 그의 촘촘한 사유와 문제의식이 비로소 한 권의 완결된 단행본으로 독자들과 만나게 된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그의 화두가 그대로 책의 제목이 되었다. ‘을(乙)의 민주주의’다. 2009년부터 2017년 사이에 여러 계간지와 학술지에 발표한 글 중에서 ‘을의 민주주의’라는 주제의식하에 12편을 가려 3부 11개 장으로 묶었다. 단순히 계약관계의 일방을 가리키는 단어였던 ‘을’은 대중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부르는 이름이자 약자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제도적 · 절차적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가운데에도 점점 더 파괴되어 가는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현실은 우리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숙고를 다시금 요청하고 있다. “권력이 국민(혹은 people)에게 있다”라는 ‘주체’의 문제가 결국 민주주의의 핵심 정의라면, 위기 상황에 당면한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을’이라는 새로운 주체에 대한 고찰이 단초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 『을의 민주주의: 새로운 혁명을 위하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을’이라는 문제적 주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나아가 민주주의 일반을 면밀히 사유해 보려는 시도다. 을, 때로는 또 하나의 갑이 되고 때로는 가중되는 ‘2등 국민들’ 재벌의 횡포를 다룬 뉴스들을 타고 들불 번지듯 퍼져 나간 ‘을’이라는 단어는 평범한 대중들의 처지에 대한 가장 정확한 자조이자 한국 사회의 어느 본질 ― 겉으로는 민주주의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사실상 신분제(!)가 작동하는 ― 에 대한 가장 정확한 비판이라 할 만하다. 어떤 말로도 그 뉘앙스를 마땅히 대체할 수 없는 임팩트까지 갖추었다. 이 책은 현대 정치철학의 핵심적 화두라 할 ‘정치적 주체’에 있어 이러한 ‘을’의 등장에 주목한다. 한국어에서 그동안 영어의 ‘people’(프랑스어 peuple, 이탈리아어 popolo, 스페인어 pueblo 등)에 대응하는, 즉 ‘어떤 정치체의 합법적 성원이라는 의미’와 ‘소외되고 주변화되고 배제된 이들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진 용어 내지 개념이 없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또한 ‘을’은 (대중 · 민중 · 국민 · 서민 · 인민 등 다른 용어들에서는 누락되었던) ‘병’, ‘정’으로 이어지는 권력관계의 존재를, 여러 정체성들이 겹쳐 ‘가중된 을’의 존재(예컨대 비정규직이자 성 소수자인 이주노동자 여성)를 단어 자체의 의미 속에 이미 품고 있다. 동시에,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면서도 내적으로 배제당하는 ‘2등 국민’이라는 의미까지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을’들이 당하는 수많은 ‘갑질’은 붕괴해 버린 일상적 민주주의의 가장 적나라한 단면이다. 한편 세월호 사건은 그 자체로 엄청난 비극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공동체성’에 대해 새삼스럽고도 강렬하게 자문해 보는(혹은 회의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대 중반 들어 급격히 가속화되고 있는 사회 내의 온갖 혐오는 또 어떠한가. 이 모든 그림들 속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동료 시민들에 대한 차별과 착취, 모욕과 멸시가 일상화된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보편적 평등의 원리를 표방하는 민주주의의 이념에 입각해 볼 때, 이런 사회를 민주주의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더구나 이 모든 풍경들이 ‘촛불과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그림의 이면에 숨어 있다는 사실까지 감안할 때, 우리는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란 정녕 누구의 통치인가? 그 누구란 누구인가? 그리고 ‘새로운 혁명’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철학, 민주주의와 정치를 말하다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이론적으로 분석해 낸다. 서양의 여러 현대철학자들이 불려 나온다. 일찍이 ‘주체(화)’의 문제를 자신의 주요 주제로 삼았던 미셸 푸코를 비롯하여 ‘인권의 역설’을 설파한 한나 아렌트, 한국에서 유독 부정적 의미의 정치적 수사로만 사용되는 용어 ‘포퓰리즘’을 학문적으로 정치화(精緻化)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다중’(multutude)을 해방의 새로운 주체로 제시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 등이 그 예이다. ‘몫 없는 이들’과 ‘치안’ 개념을 통해 정체(政體)의 일종으로만 간주되었던 민주주의를 ‘정치 그 자체’로 사고하게끔 인식을 쇄신한 자크 랑시에르와 ‘극단적 폭력’, ‘시민다움’(civilité), ‘평등자유’(égaliberté) 개념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 이론의 갱신에 탁월한 균형 감각을 보여 준 에티엔 발리바르는 진태원의 민주주의 분석에 특히나 많은 참조점들을 제공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서구의 담론에, 이론을 위한 이론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발리바르와의 비교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론의 거두 최장집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가한 것도 그렇거니와, 2010년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촛불시위, 우리 시대의 비극 세월호 사건 등은 이 책에 실린 글들의 주요 배경인 동시에 분석의 대상이 된다. 시인 김남주의 민중관, 한국인의 행복관을 다룬 글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 이전에 ‘을’이라는 주체가 다분히 한국적 맥락에서 건져 올린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 책이 단순한 ‘이론적 복습’이 아닌, 한국 사회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실천적 사유’의 결과물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이 책은 민주주의와 정치의 ‘주체’라는 문제 설정에 입각하여 여러 현대 철학자들의 사상 및 그 강점과 약점을 상세히 드러내 보여 주는 한편, 어떤 주체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독해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하에 서구 정치철학의 논의를 우리의 맥락에서 수용하고 변용하려는 값진 시도라 할 수 있다. 을의 민주주의, 새로운 혁명의 출발점 이러한 분석 속에서 우리는 “아무런 자격이 없는 이들에게 통치의 자격을 부여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근원적 특성을 보게 된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물리력, 지능, 재산 등의 차이에 관계없이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개인’에 근거를 둔 민주주의의 철학적 토대는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 그것은 끊임없이 (재)발명되어야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2등 시민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비슷하면서도 겹겹의 결들로 싸인 ‘을’들과 함께 우리는 어떤 민주주의를 사고할 것인가? 아니, 아직은 하나의 화두에 가깝다고 할 ‘을’은 그러한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아포리아’라는 말이 있다. ‘길이 없음’, 더 이상 진전이 불가능한 논리적 궁지를 가리키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개념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부정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기존 개념 및 이론 · 실천의 한계를 나타내고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극한의 노력을 표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을’은 한계에 봉착한 한국의 민주주의 상황에서 하나의 아포리아적 주체다. 그것이 어떠한 주체가 될 것인가는 결국 이후의 실천들에 달려 있다. ‘을의 민주주의’란 단순히 ‘을이 주인 되는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갑’을 만들 뿐이다. ‘을의 민주주의’라는 화두가 제기하는 문제는 결국 “갑과 을 사이의 구조화된 위계 관계를 어떻게 평등한 민주주의적 관계로 전화시킬 것인가”이며, “을이 지배자가 아닌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주인이 아닌(따라서 또 다른 하인이나 노예를 전제하지 않는) 주체, 주권자가 아닌(따라서 또 다른 신민, 백성을 전제하지 않는)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물음으로써 민주주의의 근원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것이다. ‘을의 민주주의’, 그것은 민주주의를 궁극적으로 사유할 때 도달하는 지점이자 그곳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