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예술, 권력, 주체를 꿰어내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통해 드러나는 푸코 사상의 전모 푸코를 처음 읽는 이들과 그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싶은 이들 모두에게 신선한 자극이 될 새로운 푸코론의 등장! 푸코는 권력론의 아포리아에 부딪혀서 주체의 윤리학으로 후퇴했는가? 오해를 넘어 ‘실존의 미학’을 중심으로 푸코의 사유를 밝힌다 1. 푸코의 사유에서 예술론과 미학은 왜 중요한가 : ‘실존의 미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새로운 삶의 발명 “제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그가 죽기 얼마 전에 콜레주드프랑스 강연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광기와 감옥, 권력의 메커니즘을 탐사하는 데 천착한 ‘현재의 역사가’, 수감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고 이란 혁명에 심취했던 활동가, 무엇보다 성(섹슈얼리티)의 역사를 탐색하면서 ‘주체’를 문제시했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에이즈 합병증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뒤늦음을 고백했다. 아직 연구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음을 직감한 이의 탄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푸코는 죽을 때까지 주체와 ‘실존의 미학’이라는 문제를 붙잡고 있었다. 그의 연구는 단지 죽어가는 자의 소일거리가 아니라, 그 자신의 삶과 타자의 삶 모두를 변형하는 작업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푸코의 미학: 삶과 예술 사이에서』는 푸코가 말년에 제창한 ‘실존의 미학’을 화두로 삼아 푸코의 사유 전체를 미학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다시 파악한다. 최근 학계에서 푸코의 생명정치나 통치성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푸코의 예술론은 초기의 관심사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곤 했다. 그러나 이 책은 1960년대의 문학론·회화론에 푸코의 평생 동안의 작업을 관통하는 사유의 기반이 있음을 간파하고, 이것이 후기의 주체론 및 윤리학에서 어떻게 ‘실존의 미학’ 혹은 ‘삶의 작품화’라는 중심적 개념으로 계승·발전되는지를 읽어낸다. 푸코에게 ‘실존의 미학’이 함축하는 것은 자기의 삶을 미적으로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자기계발에 힘쓰는 것이나 자기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는 것은 푸코의 생각과 거리가 멀다. 실존의 미학은 창조적으로 형성되고 변형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자기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라는 실천의 문제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권력론의 한계에 부딪혔던 푸코가 주체(자기)의 윤리학으로 퇴행했다는 해석도 분분했다. 하지만 이 책은 푸코의 말년의 작업을 개인의 윤리에 고착된 것이 아니라 예술과 삶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것으로 해석할 때 푸코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이자 일본의 젊은 철학자인 다케다 히로나리는 각 시대별로 푸코의 이미지론과 글쓰기론을 추적하면서, 이 실천의 장소가 ‘감성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이 교차하는 ‘바깥의 미학’이라고 불러야 할 장소topos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처럼 저자는 푸코 연구가 활발한 일본의 지적 토양 위에서 고유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푸코의 사유를 세심하게 풀어내고 있다. 모든 사회 구성원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판옵티콘’을 고발한 철학자나 ‘인구’라는 개념을 통해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생명정치의 탐구자로만 푸코를 이해해왔던 이들에게,『푸코의 미학』은 미학의 관점에서 푸코를 읽는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자신의 삶을 지금 여기에서 예술로 만들어내는 사유를 길어내는 데 유용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2. 블랑쇼, 루셀의 문학을 거쳐 폴 르베롤, 제라르 프로망제의 회화, 그리고 영화와 사진까지 ‘바깥’으로 보는 예술론 저자는 블랑쇼와 루셀의 문학적 언어에 관한 푸코의 초기 고찰에서 시작해, 벨라스케스, 마네, 마그리트의 그림에 관한 유명한 논고를 거쳐, 폴 르베롤과 제라르 프로망제의 회화, 베르너 슈뢰터의 영화, 듀안 마이클의 사진과 같은 1970년대 이후의 비평에 이르기까지 푸코의 논의를 폭넓게 다룬다. 이 책은 동시대의 예술에 현실적으로 감응한 푸코의 예술론을 한달음에 내다본다. 우선 1960년대의 문학론에서는 주체의 개입을 넘어서 언어가 전개되는 공간인 ‘바깥’의 영역에 주목한다. 동시기에 마그리트와 마네를 논한 회화론에서도 ‘시뮬라크르’와 ‘캔버스의 물질성’ 같은 ‘바깥’의 영역이 문제가 된다. 이런 바깥에 관한 사유는 레이몽 루셀론에서 광기와 결부된 언어의 ‘외재성’, 즉 주체와 재현 작용 각각에 대한 외재성으로 명확하게 제시된다. 이와 동시에 저자는 때로 푸코의 틀을 넘어서 ‘바깥의 미학’을 들뢰즈와 가타리를 필두로 한 현대 프랑스-이탈리아 철학에 접목시킨다. 이런 고찰은 마리오 페르니올라가 말하듯이 “더할 나위 없이 미학적인 시대”인 오늘날에 주체론이 놓여 있는 사유의 흐름을 포착하게 해준다. 3. 실존의 미학과 파르레시아로서의 예술 “그러나 모든 개인의 삶이 예술작품일 수 없을까요? 왜 타블로나 집은 예술의 대상인데도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요?” - 미셸 푸코 푸코는 1970년대에 이르러 위반의 힘을 잃고 있는 문학에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면서 이를 포기하고, ‘신체성’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면서 권력 분석으로 나아간다. 그는 기독교적 사목에서 연원하여 근대 국가에 받아들여진, 사람들의 일상에 작용하고 개인을 주체로 만들어내는 규율권력의 모습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푸코의 논의는 사람들의 삶 자체를 부단하게 통치하는 ‘생명권력’ 개념으로 발전되는데, 이런 권력 작용 안에는 주체에 의한 저항의 계기도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즉, 개인의 행동(품행)을 인도하는 통치의 체제에 맞서는 ‘대항-인도’에 의해 주체가 새로운 행동(품행)을 창시하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에 의한 자기의 통치’이며, 자기의 실천에 의해 주체가 구성된다고 하는 후기 푸코의 주체론이다. ‘실존의 미학’이라는 주제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부상한다. 이는 ‘윤리적인 것’으로서의 삶과 ‘감성적인 것’으로서의 예술 사이의 틈새에 놓여 있으며, 자신의 삶을 하나의 작품처럼 벼려내는 주체화의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논의를 통해 저자는 ‘실존의 미학’이 진리의 경험에 의한 자기 변형이나 역사성 속에서의 주체의 생성 같은 계기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이것이 푸코가 ‘생명권력’ 체제에 대한 응답으로서 가다듬어낸 테제였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밝혀내고 있다. 나아가 푸코는 예술을 통해 창작자의 삶과 예술 수용자의 삶이 변화할 가능성도 언급한다. 예술을 통한 삶의 변화, 실존의 미학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실천들이 존재한다고 했을 때 예술 창작과 수용도 그중 하나인 것이다. ‘진리진술’로 번역되는 ‘파르레시아’는 언뜻 철학에만 관계된 것처럼 보이지만, 예술이 진리와 삶의 연결을 구현하는 실천이 된다면 예술 역시 일종의 파르레시아라고 할 수 있다. 4. 푸코의 사상에 대한 비非단절론적 해석 “제 연구의 전체 테마는 권력이 아니라 주체입니다.” - 미셸 푸코 이런 전개는 지금까지의 푸코 해석을 넘어선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푸코의 사상을 단계론적으로 파악해왔다. 푸코는 초기에 담론의 고고학을 연구했고, 중기에는 권력의 계보학으로 관심을 전환했으며, 후기에는 주체의 윤리학으로 재전환되었다는 식이다. 또는 예술론, 권력론, 주체론과 같은 방식으로 장르를 나누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1976년에 출간된 『성의 역사 1: 지식의 의지』와 1984년에 출간된 『성의 역사 2: 쾌락의 활용』 『성의 역사 3: 자기에의 배려』 사이에 단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말 푸코는 8년의 침묵 끝에 내놓은 마지막 저작들에서 권력의 계보학을 버리고 주체의 윤리학으로 돌아섰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