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단편 작품을 한글과 영어로 동시에 읽을 수 있는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시리즈의 네 번째 세트(46~60번)가 출간되었다. 아시아 출판사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에서 나온 가장 중요하고 첨예한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별하여 총 105권의 시리즈를 기획하였다.
「유리방패」에서는 운동회 때 이인삼각 달리기를 하는 것과 같은 두 사람이 매번 면접 때마다 콤비가 되어 만담, 마술쇼, 행상 모습 재연과 같은 각종 이벤트를 벌인다. 컴퓨터게임 회사에서의 면접에서 실타래를 푸는 이벤트를 펼치다 실타래가 엉켜 진땀만 뺐던 그들은,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그 색실을 펼쳐놓았다가 순식간에 “거리의 예술가들”이 되어 버린다. 취업을 위한 발악과도 같은 이벤트 연출을 그들은 “저희가 가장 좋아하는 건 면접장에서 노는 겁니다”에서처럼, 하나의 유희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의 유희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면접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소모적 노동으로 변모해 피곤과 무료함만을 가져다주게 된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상상계에서의 놀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극점에 다다른 것이다. 청년실업이라는 현실의 어두운 측면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 「유리방패」는 그러한 단독성의 세계가 잔인하기까지 한 한국적인 현실과 만났을 때 얼마만큼의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 탐구한 새로운 경향의 작품이다.
세계인들에게 한국 단편 소설의 깊이와 품격을 전하는 이 시대의 걸작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단편 작품을 한글과 영어로 동시에 읽을 수 있는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시리즈의 네 번째 세트(46~60번)가 출간되었다. 아시아 출판사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에서 나온 가장 중요하고 첨예한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별하여 총 105권의 시리즈를 기획하였다.
이번에 출간된 네 번째 세트는 ‘디아스포라(Diaspora)’, ‘가족(Family)’, ‘유머(Humor)’라는 카테고리로 나누어 김남일, 공선옥, 김연수, 김재영, 이경 (디아스포라) / 천승세, 전상국, 이동하, 이혜경, 권여선 (가족) / 한창훈, 전성태, 이기호, 김중혁, 김종광 (유머) 등 한국 대표 작가들의 중요 단편 소설들을 기획, 분류하여 수록하였다.
이번에 출간된 네 번째 세트에는 가족이라는 관계의 전형적인 의미가 점점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단일민족으로서 민족 공동체를 중시하던 과거의 모습과 달리 이제 새롭게 가족, 공동체, 타인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집중 조명했다. 또한 유머(Humor)라는 카테고리를 통해 식민지, 전쟁, 분단, 독재 등 불완전한 대내외적 정치 상황이 점차 안정되어감에 따라 달라진 한국문학의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바이링궐 에디션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개성과 세계문학의 보편성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한 이혜경 작가의 평과 같이,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전집에는 세계의 독자들도 깊이 공감하며 호흡할 수 있는 한국문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바이링궐 에디션에 수록된 단편 소설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한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주요한 사건들과 그에 응전하여 변화한 한국인의 삶의 양태를 살필 수 있다. 이 시리즈는 세계인들에게 문학 한류의 지속적인 힘과 가능성을 입증하는 전집이 될 것이다.
하버드대학교 한국학 연구원 등 전문 번역진의 노하우 속에서 태어난 빼어난 번역문
이 시리즈는 하버드 한국학 연구원 및 세계 각국의 우수한 번역진들이 참여하여 외국인들이 읽어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손색없는 작품으로 재탄생하여 원작의 품격과 매력을 살렸다. 영어 번역의 질을 최우선으로 삼고 브루스 풀턴(브리티시 컬럼비아대), 테오도르 휴즈(컬럼비아 대학교), 안선재(서강대학교 영문학 명예교수), 전승희(하버드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연구원) 등 한국 문학 번역 권위자들은 물론 현지 내러티브 번역자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그리하여 그간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했을 때 느껴지는 번역투의 어색함과 딱딱함을 벗어던진, 영어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로 갈고 닦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에서 나온 가장 중요하고 첨예한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동아시아학과 한국문학 교수인 테오도어 휴즈와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학과 한국문학 교수인 데이비드 매캔이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시리즈의 출간을 반기며 추천사를 썼다. 테오도어 휴즈는 이 시리즈가 세계의 독자들에게 “한국 문학의 풍부함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 될 것으로 추천했다. 데이비드 매캔은 “최상의 번역자와 편집자들이 작업한 시리즈”로 칭찬하며 국경과 언어의 벽을 넘어 사랑받는 한국 문학에 대한 기대를 표현했다.
불운과 행운
소설의 핵심사건은 막바지에 가서야 벌어진다. 아무래도 운수가 꼬인 듯해 집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한 용표는 앞길을 가로막는 버스를 불법 추월하다가 교통경찰에게 딱지를 끊길 처지가 된다. 뇌물 오천 원으로 상황은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만 원짜리를 받은 경찰이 거스름돈 오천 원을 돌려주지 않고 줄행랑을 치고 만다. 여기서 모종의 반전이 일어난다. 용표는 한편 코믹하면서도 한편 서글픈 이 무수한 불운들에 맞서기로 결심한 듯 경찰차를 뒤쫓는다. 계란트럭에 달린 확성기로 “빽차는 우측으로, 빽차는 우측으로” 하고 외치며 달리는 장면은 작품의 절정이다. 망신살이 뻗친 경찰이 차를 세우고 만 원짜리 지폐를 팽개치듯 돌려준 뒤 달아나자 용표는 마치 행운아가 된 것 같은 승리의 기쁨에 들뜬다. 용표의 불운들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 아니지만 그의 마지막 행운은 스스로 쟁취한 것이란 점이 중요하다. 이 소설은 일상적 불운을 행운으로 전도시키는 하층민 특유의 자발성과 낙천성을 넓은 시야와 균형감 있는 서술로 유머러스하게 묘파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강경석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