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새해 정민 교수가 선사하는 깨끗한 정화의 울림!”
말들만 어지러운 세상에 던지는 단장短章의 미학,
단 다섯 자에 마음밭 시원한 물꼬가 터진다!
조선 지식인의 지식 경영에서 한국학 속의 그림까지 고전과 관련된 전방위적 분야를 탐사하는 정민 교수가 《우리 한시 삼백수》 7언절구 편에 이어 1년 만에 5언절구 편을 펴냈다. 정민 교수의 학문적 본령은 한문학 중에서도 고전 문장론이다. 삼국부터 근대까지 우리 5언절구 백미 3백수를 가려 뽑고 풀이했다. 원문에는 독음을 달아 독자들이 찾아보기 쉽게 했으며 원시元詩만큼 아름다운 평설은 순수한 감성 비평에 국한했다. 부록에서는 시인의 생애에 대해 간략히 서술했다.
공자는 《시경詩經》을 묶으면서 “《시경》의 3백 편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무사思無邪다”라고 했다. 사무사는 생각에 삿됨이 없다는 뜻이다. 시를 쓴 사람의 생각에 삿됨이 없으니 읽는 사람의 마음이 정화가 된다. 이것이 저자가 3백수의 상징성을 굳이 내세운 이유다. 5언절구를 우리말로 옮길 때는 보통 7.5조의 3음보 가락으로 옮겨 읽지만 이 책에서는 4.4나 5.5 또는 3.3.3의 실험적 번역을 다양하게 시도했으며 특별히 4.4의 가락에 천착했다. 한자 다섯 자를 우리말 여덟 자로 옮긴 셈인데, 뼈만 남기고 살은 다 발라냈다. 글자 수가 줄면 꾸밈말을 빼야 한다. 군더더기를 덜어내니 뜻이 더 깊어진다. 대신 어구 풀이에서 원래 의미를 가늠하도록 최소한의 설명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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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예전 체코의 한국문학 연구자가 한국 한시를 체코어로 번역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계절과 꽃 소식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몰라 궁금하더니 한국에 와서 지내자 금세 이해가 되더란 말을 인상 깊게 들었다. 시는 문화의 풍토성을 간직한다는 말이다. 한시의 기본 미감 발생 원리가 그렇고, 여기에 우리 민족의 정서 교감의 특성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우리 한시 속에는 자연이 등장하고 그 속에 사람이 깃든다. 사물은 끊임없이 교감의 언어를 발신한다. 새가 울고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것도 내게 보내는 자연의 메시지 아닌 것이 없다. 사물 속으로 내가 들어가 그들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스스로 치유되는 한시의 정서 표달 방식은 세상을 제멋대로 주무르려고만 드는 현대인의 욕망을 향한 일종의 경고 같다. 옛사람들은 한시 속 새 안에 다양한 의미를 담았다.
<기러기 떼>
날아가는 기러기 떼 줄 못 이루고
변방 소리 밤낮으로 일어나누나.
그리운 맘 머리만 하얗게 샜다
구슬피 바라보는 천 리 먼 사람.
旅雁不成行 邊聲日暮起
여안불성항 변성일모기
相思空白頭 悵望人千里
상사공백두 창망인천리
-조위曺偉, 1454-1503
여보게! 아우님. 부모님 모두 편안하신가? 가을 서리 내리더니 자꾸 하늘이 소란스럽네그려. 고개 들어보면 겨울 나러 남녘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가 보이는군. 저희들도 불안한 걸까? 대오도 흐트린 채 꺼이꺼이 울며 나네. 너희는 가는데 나는 왜 못 가나? 날마다 마음만 공연히 심란해지곤 하지. 나라 일에 매인 몸, 가고파도 못 가니 저 기러기 발에 묶어 편지 한 장 띄워 보내네. 머리는 수심에 희게 물들고 보고픈 아우님은 천 리 먼 곳에 있으니 그리움 좀체 가누지 못하겠네. 따뜻이 나누던 한잔 술 오늘따라 사무치네.
<지친 새>
강 넓어 큰 고기 마음껏 놀고
숲 깊어 지친 새 돌아오누나.
전원으로 돌아옴은 내 뜻이지만
진즉에 기미機微 앎은 아니었다네.
江闊脩鱗縱 林深倦鳥歸
강활수린종 임심권조귀
歸田是吾志 非是早知機
귀전시오지 비리조지기
-전원발全元發, 고려 후기
넓은 강물엔 큰 고기가 물 만나 논다. 제멋대로 거칠게 없다. 깊은 숲에는 날다 지친 새들이 둥지에 깃든다. 따뜻하고 안온하다. 전원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기쁘다. 왜 진즉 내려오지 못했나 싶다. 나는 세상일에 지친 새, 좁은 보에 갇혀 그물에 비늘을 다치기도 했던 큰 물고기다. 진즉에 벼슬길이 재앙의 길임을 알았더라면 그 길에서 그토록 아등바등하지는 않았을 터. 이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연에 묻히고 보니, 지난날의 망설임이 마음에 부끄럽다. 아직 늦지 않았다. 멋대로 헤엄치다 수면 위로 튕겨 오르기도 하고, 마음껏 날다 저물녘엔 둥지에 깃들리라.
<뱁새>
그물눈 촘촘해 걸릴까 싶어
작은 놈도 날개를 퍼덕이누나.
설령 매화가지 빌려준대도
마침내 네가 편히 쉴 곳 아닐세.
絓罹應密網 麽眇亦飛翰
괘리응밀망 마묘역비한
縱借梅枝一 終非爾所安
종차매지일 종비이소안
-정석경鄭錫慶, 1689-1729
뭔가 불편한 심기가 느껴진다. 봄 맞은 매화가지 위에서 조그만 뱁새 한 마리가 깝죽거리고 있다. 그물 줄이 촘촘해 다른 새들이 겁먹고 안 오는 동안, 하도 작아 그물에도 걸리지 않을 뱁새만 와서 찧고 까분다. 모처럼 뜻을 펼쳐 보겠노라고 날개깃을 퍼덕이며 이 가지 저 가지 제멋대로 오르내린다. 뱁새야! 여긴 네 놀 곳이 못된다. 딴 데 가서 놀아라. 아마도 얼어붙은 정국을 틈타 갑자기 출세한 소인배 하나가 겁도 없이 함부로 설쳐대는 양을 보다가 눈꼴이 시어 지은 시지 싶다.
새라는 하나의 소재를 통해서도 눈물겨운 형제애, 티끌세상을 벗어난 드높은 달관, 부조리한 세태에 대한 통렬한 비판 등 다양한 주제들을 녹여냈던 선인들은 꽃에는 황홀한 자연에 대한 도취, 뜻대로 되지 않고 어긋나기만 하는 세상길의 안타까움, 인고의 세월을 견뎌 끝내 이겨내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담기도 했다.
<들매화>
보슬비에 갈 길 잃고
십 리 바람 나귀 탄 채.
곳곳마다 핀 들매화
향기 속에 애 끊나니.
細雨迷歸路 騎驢十里風
세우미귀로 기려십리풍
野梅隨處發 魂斷暗香中
야매수처발 혼단암향중
-이후백李後白, 1520-1578
보슬비 속을 헤매 돌다 갈 길을 잃었다. 아니 이럴 땐 갈 길을 잊었다고 써야 할까? 나귀 등에 올라탄 채 십 리 길을 봄바람 맞으며 쏘다녔다. 미로(迷路), 즉 길 잃고 헤맨 까닭은 3구에서 말했다. 여기저기 피어난 들매화 때문에, 은은히 품겨오는 꽃향기 때문에, 그 향기에 떠오른 옛 기억 때문에, 보슬비 맞고 십 리 봄 길을 쏘다녔다. 꽃향기에 취해 보슬비에 젖어 옛 생각에 잠겨 길을 잃고 헤맸다. 들매화 때문에.
<빗속 꽃>
첩은 빗속의 꽃
님은 바람 뒤 버들 솜.
꽃 좋아도 쉬 이우니
솜은 날려 어딜 가나.
妾似雨中花 郞如風後絮
첩사우중화 낭여풍후서
花好亦易衰 絮飛歸何處
화호역이쇠 서비귀하처
-이수광李睟光, 1563-1628
좋은 꽃 어렵게 피웠더니 무정한 비에 땅에 진다. 꼭 내 신세 같다. 님은 바람에 갈 데 모르고 떠다니는 버들 솜 같다. 비에 지는 꽃잎처럼 얼마 못 가 시들 청춘인데, 안타까워라 님의 마음을 잡아둘 길이 없구나. 나를 까맣게 잊으시고 산지사방 이리저리 갈피 못 잡고 다니시는구나. 나는 님만 바라보고 있건만 님은 한눈만 판다. 딴전만 부린다. 그나마 시들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