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정신승리법’의 효력이 상실하는 순간, 아Q의 참된 본능이 드러나고 아Q의 혁명이 시작된다 왕후이, 루쉰의 「아Q정전」을 새로 읽다 『아Q 생명의 여섯 순간』은 1996년부터 10여 년간『독서』잡지 주간으로 세계 지식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절망에 반항하라』,『탈정치 시대의 정치』『죽은 불 다시 살아나』등으로 우리에게 낯익은 루쉰 연구가이자 현재 중국의 사상가로 손꼽히는 왕후이(칭화대 교수)가 아Q의 ‘정신승리법’이 효력을 상실하는 여섯 순간을 분석하여 그 안에 내재된 ‘성찰하는 국민성’과 신해혁명의 현재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책이다. 왕후이는 루쉰과「아Q정전」을 새로 읽는 이유에 대해 “현재 중국이 신체는 튼튼해졌지만 아직도 머리를 가누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며 중국의 ‘문제’에 주목하여 중국 이야기를 다시 빚어내자는 취지임을 책의 앞머리에서 밝히고 있다. 아Q가 중국 국민성에 대한 우언과 풍자라고 보았던 기존의 해석을 뛰어넘어, 아Q의 삶에서 여섯 가지 순간 - ‘실패(패배)의 고통’,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름’, ‘성 결핍과 굶주림’, ‘생존본능의 돌파’, ‘혁명의 본능과 무의미함’, ‘죽음의 공포’의 순간에 아Q가 느끼는 본능과 직관이 정신승리법을 돌파하고 현실을 직시하여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순간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왕후이는 루쉰의 생명주의 즉 ‘인간은 살아야 한다’라는 소박한 신념에 주목한다. 혁명이란 죽음을 의식한 후에야 탄생하며 그것은 사람을 살리고 또 어떻게 살리느냐에 관한 사고와 행동이라는 것으로 ‘생명주의의 정치화’를 설명한다. 고전을 더 이상 새롭게 읽으려 하지 않는 순간 고전은 경직화하고 화석화된다. 늘 현재의 문제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읽어내는 것이 ‘열린 경전’, 살아 있는 고전으로 만드는 행동이며, 왕후이가 이 책에서 시도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너머북스가 새로 기획하는 ‘고전 새로 읽기’ 시리즈의 첫 권이기도 하다. 권말부록으로 이 책을 옮긴 김영문 선생의 번역으로「아Q정전」전문을 실었다. 아Q가 억압되지 않은 참 자아와 만나는 여섯 가지 순간 왕후이는 아Q의 ‘정신승리법’이 그의 본능, 욕망, 잠재의식을 억압하는 ‘의식’의 발로라고 분석한다. 말하자면 ‘정신승리법’은 가식적인 자기 합리화로 아Q의 참된 자아를 억압하고 기존 질서로 회귀하게 하는 반복, 순환의 폐쇄 시스템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아Q정전」에 대한 새로운 읽기에서는 ‘정신승리법’이 효력을 상실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정신승리법’이란 ‘의식’이 아Q의 본능, 욕망, 잠재의식에 대한 억업을 중단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오랫동안 억압되고 뒤틀려 있던 아Q의 참된 본능은 가식적인 ‘정신승리법’의 압제를 뚫고 자신을 성찰하며 생생한 생명력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왕후이는 그 순간이 「아Q정전」에 여섯 차례 출현한다고 밝혀낸다. 이 순간이 다 합쳐도 1분을 초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 순간이야말로 아Q가 억압되지 않은 자아와 대면하는 찰라이고 중국인이 각성하며 혁명이 발단되는 계기라는 것이다. 그 여섯 차례 순간은 이렇다. - 여섯 순간의 첫째와 둘째 : ‘실패(패배)의 고통’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름’ 도박판에서 처음으로 딴 돈을 몰매를 맞고 다 뺏기고 아주 짧은 순간 “서운하고 불쾌한 마음이 엄습하는 걸” 먹을 수 없었던 순간과 하수로 보았던 왕털보에게 두들겨 맞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는” 순간이다. 자기도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싹트고 있었다. - 여섯 순간의 셋째와 넷째 : ‘성 결핍과 굶주림’ ‘생존본능의 돌파’ 아Q가 자기도 모르는 충동으로 우서방댁에게 같이 자자고 하는 것, 그로 인하여 일거리가 끊기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면서 느끼는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감각이 주는 각성이다. “그가 구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의식 혹은 잠재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여섯 순간의 다섯째 : ‘혁명의 본능과 무의미함’ 아Q에게 ‘직감’이 생겨났다. 혁명에 대한 막연한 반감에서 웨이좡의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듯 보이자 호감을 느끼고 혁명에 참가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혁명이 끝나버렸을 때 아Q가 느낀 ‘무의미함’이 바로 그것이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한 일이나 겪은 일의 의미를 철저히 회화하하는 것이다. -여섯 순간의 여섯째 : ‘죽음의 공포’ 대단원과 죽음의 순간 조리돌림을 당할 때 사람들의 눈빛을 보고 느끼는 강렬한 감각, 즉 두려움과 극단적인 공포를 느끼는 순간이다. 「아Q정전」- 국민성에 대한 우언을 넘어, 혁명에 대한 우언으로 아Q 생명의 여섯 가지 순간은 아Q가 각성하는 계기가 되지만 매번 몇 초 심지어 아주 잠시 존재하다가 사라지고 만다. 아Q의 생생한 참 자아는 ‘정신승리법’이라는 억압기제에서 벗어나는 순간 다시 관성을 지닌 용수철처럼 옛 기제로 회귀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억압되지 않은 자아와 대면하는 짧은 순간이 아Q에게 있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것을 ‘국민성의 이중성’이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아Q의 마비된 국민성과 그 마비된 국민성을 반성적, 능동적으로 성찰하는 국민성이라는 이중성으로 「아Q정전」의 국민성 서술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왕후이는 아Q가 본능과 마주하는 여섯 순간이 자신의 ‘정신승리법’을 돌파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것처럼 신해혁명도 중국 역사의 순환구조를 끊고 새로운 미래를 가능케 한 발단이 되었다고 본다. 이 대목에서 아Q의 참 자아와 신해혁명의 참 역사는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내적, 외적 변혁의 계기로 서로 호응하며 새로운 미래를 가능케 하는 관건적 발단이 된다. 따라서 신해혁명은 실패한 혁명이 아니라 아Q 같은 우매한 농민까지 혁명의 대열로 소환해낸 획기적 변혁의 계기로 인식된다. 왕후이가 이 책의 첫머리에 “삼가 이 책으로 새로운 시대의 발단이 된 신해혁명을 기념하고자 한다”라고 언급한 것이나, 「아Q정전」을 국민성에 대한 우언을 넘어, 혁명에 대한 우언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분석에 근거한 것이다. 왕후이,「아Q정전」의 우물에서 새로운 샘물을 길어올리다 그렇다면 과연 저자가 이 책에서 여섯 가지 분석의 취지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Q정전」은 지난 ‘20세기’에 이미 세계 고전으로서의 위상을 충분히 누려왔다고 할 수 있는데, 어째서 왕후이는 새로운 텍스트 읽기를 시도한 것일까? 「아Q정전」의 우물에서 길어올릴 새로운 샘물이란 어떤 것이기에? 여기서 왕후이는 경전과 ‘경전화 과정’을 구분해서 바라보자고 한다. 경전은 살아 있지만 경전화 과정은 항상 작품 읽기를 고정된 틀에 가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작품도 일단 고정된 읽기 틀 안에 갇히게 되면 생명력이 사멸해버린다. 또한 경전화 과정은 하나의 정치적 방향이나 가치적 방향으로 일치시키기 위한 작업으로, 그 속에 감춰져 있던 또 다른 방향이 모습을 드러내거나 ‘경전 읽기’ 궤도에서 벗어나면 불가피하게 그것을 은폐하거나 규범화하거나 축출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마치 서예의 필법과 같다고 한다. 당대 이후 왕희지의 서법이 진정한 전범으로 자리 잡자 기타 서법 스타일이 은연 중 모두 억압되었던 것처럼. 「아Q정전」을 새로 읽는 일은 이 작품의 경전적 지위를 거듭 진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방시키기 위한 하나의 행동이며 다시 말해 구태의연한 읽기 가운데서 이 작품을 해방시켜 살아 있는 경전으로 새롭게 빚어내기 위한 과정이라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정신승리법’을 신봉하는 아Q들이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점이다. 왕후이가 지금 아Q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