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구나, 미쳤어!”
이런 말을 들어도 멈추지 말 것.
집요하게 끝까지, 지쳐도 끝까지,
보이지 않는 본질과 디자인의 이유를 찾아내
보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 브랜드를 살리는 브랜딩 전략가
2009년, ‘화요’는 창업주의 말에 의하면 ‘곧 망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한, 이름 없는 브랜드’였다. 2005년 출시, 2007년에는 ‘국제주류품평회’(IWSC)에서 동상을, 2008년에는 세계 3대 주류 품평회 중 하나로 꼽히는 ‘몽드 셀렉션’(Monde Selection)에서 금상을 받았을 정도로 그 향과 맛은 인정받았지만,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여전히 희미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2013년, 화요는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로 꼽히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커뮤니케이션 디자인부문)를 수상하는가 하면, ‘고급 증류소주’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선두 주자로서 서서히 그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몇 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화요는 도자기 기업으로 유명한 (주)광주요가 한식세계화의 한 축으로 개발한 술로, 우리나라 증류소주의 대가들이 참여해 최고급 재료로 만든 제품이다. 품질 면에서는 이미 독보적일 정도로 수준이 남달랐다는 얘기다. 그러나 야심찬 출발과 달리 화요는 출시 이후 몇 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소비자들은 화요라는 제품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고, 그 장점과 매력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고급 소주, 맛있는 소주’ 하면 바로 화요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화요를 지금 이 자리로 이끈 것은 과연 무엇일까?
답은 브랜딩이다. 화요는 용기부터 레이블까지, 완전히 다 바꾸는 브랜드 리뉴얼을 통해 옷을 갈아입으면서, 시장에서 목표로 삼았던 지점에 무사히 안착했을 뿐만 아니라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었다. 브랜딩이란 이런 것이다. 브랜드 디자인을 잘하면 얼마든지 중소기업이 강소기업으로, 대기업이 강대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화요의 변신을 이끈 이가 바로 이 책의 지은이, 브랜드 디자이너 엄주원이다.
“한국적 감성과 정서가 세련되게 표현된 지금의 화요 디자인은 엄주원이 5년여의 산고 끝에 개척해낸 결과물이다. 5년은 긴 시간이다. 디자이너로서 한 프로젝트에 시간과 경비를 그렇게 오래 투자하는 것은 도박에 가까운 무리수였을 것이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일에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걸었던 그녀의 프로페셔널한 정신은 참으로 배울 점이 많다.”
_조태권, (주) 광주요 그룹 회장
화요 브랜드 리뉴얼의 주역, 『이유 있는 디자인』의 지은이 엄주원은 브랜딩 전략을 세우고,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다. 책에는 그가 15년여 동안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며 지켜온 원칙과 프로젝트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 특히 화요부터, 삼성물산 건설부문 아이덴티티 시스템, 삼성화재 서비스 아이덴티티, 조니 워커 블루 면세점 패키지 등 실제 브랜딩 및 브랜드 디자인 사례들이 자세히 실려 있어 브랜드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실용적인 길잡이 역할을 하기에 손색이 없다. 브랜딩 전략을 세우는 동안 디자이너가 끝까지 끌고 가야 할 원칙은 무엇인지, 브랜드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실제 현장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유 있는 디자인』은 꼭 봐야 할 책이다.
■ 브랜드 디자이너는 무엇을 하는가?
“디자인은 브랜드의 영혼이다.”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이다. 여기에 지은이의 의견을 보태 살을 좀 더 붙인다면, “디자인은 브랜드의 영혼이자 육신이며, 존재의 이유를 부여한다”라고 할 수 있겠다. 지은이는 ‘브랜드의 콘셉트를 세우고, 그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만들어내 정신과 외관이 조화롭게 맞물린 모습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도록 하는 것’, 그것이 브랜드 디자인이며, 브랜드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브랜드 디자인의 본질은 브랜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고, 그것을 명료하게 시각화하는 것,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밖으로 꺼내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의 브랜드가 탄생하기까지 그 스토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파고들어 정수를 찾아낸 다음 깎고 다듬어 소비자에게 구체적인 형상으로 전달하는 것이 브랜드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_서문 중에서
따라서 디자이너는 브랜드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애정, 클라이언트와의 밀착된 소통, 기나긴 과정을 견디는 인내심과 체력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한 디자이너는 경영학, 인문학, 심리학, 엔지니어링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면서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 원하지만 잘 표현하지 못한 것을 해결할 솔루션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세상을 씹어 되새김질해야 가능한 일이다. 수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정확히 표현해주는 하나의 콘셉트와 이미지를 건져내려면 늘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정말 좋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 아이의 호기심으로, 노인의 통찰로, 엄마의 염려하는 마음으로 사물을, 인간을,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 모든 디자인에는 이유가 있다
브랜드에 존재의 이유를 부여하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선 먼저 지켜야 할 원칙들이 있다. 지은이가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며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해온 것들이다.
첫째, 관찰하고 발견하라.
둘째, 혁신, 완전히 새롭게 하라.
셋째, 예술가처럼 미쳐라.
넷째, 배려하고 소통하라.
언뜻 보면 새로울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실상 현장에선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들이다. 실제로 지은이는 클라이언트와 제작자들 사이를 오가며,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이 네 가지 원칙을 본인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요구하는 것으로 업계에선 유명하다.
“일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미쳤구나, 미쳤어’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라고 믿는다. 물론 매번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은 힘들고 때로는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걸 어쩌겠는가. 귀찮아서 혹은 너무 바빠 애써 외면한 사소한 문제들이 나중에 걸림돌로 돌아오는 걸 경험으로 뼈저리게 알고 있으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브랜드 디자이너 엄주원은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브랜딩한다. 그래야 누가 봐도 왜 저렇게 했는지 그 이유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디자인이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을 제대로 발견하기 위해서는 ‘왜’라는 질문을 놓지 말아야 한다. 저 사물은 왜 태어났나, 저 사물은 지금 ‘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나, 다른 방식은 왜 시도하지 않았을까 등 ‘왜’라는 문제의식을 견지할 때, 더 좋은 발견, 더 좋은 디자인을 위한 길이 열린다.”
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