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고’는 북미 인디언들 사이에서 대자연의 원시림에 출몰한다고 전해지는 정체불명의 괴수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 웬디고는 어쩌면 정말로 이제껏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거칠고 광활한 숲속에서 생사의 벼랑 끝으로 몰린 인간이 대자연의 힘에 짓눌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빚어낸 ‘망상’일 수도 있다. 아니면 문명이라는 미명 아래, 자연을 하나의 자족적인 생명체가 아닌 이용과 통제가 가능한 하나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하는, 인격화된 ‘살아있는 야생’ 그 자체를 일컫는 것인지도 모른다.
앨저넌 블랙우드는 영국의 공포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이 소설에서 미스터리한 존재인 ‘웬디고’를 제재로 삼아 ‘공포 심리의 메커니즘’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사람이 느끼는 공포는 그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온다. 그것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려, 대항조차 하지 못한 채 한낱 희생물의 최후를 모면할 수 없다는 실감은 사람을 자포자기 상태로 몰고 가기 십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상상력’이야말로 ‘공포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겁쟁이는 여러 번 죽지만 용감한 사람은 단 한 번 죽는다는 말도 있듯이.
이 작품의 배경은 대자연의 원시림이다. 거대한 숲 자체와 비교한다면, 한 인간의 존재감이란 그저 미물에 지날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문명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소총’을 들고 말코손바닥사슴 ―대자연의 상징이라고 하자― 사냥에 나섰다가, 도리어 정체불명의 뭔가에 의해서 그 자신들이 사냥감의 위치로 전락하는데서, 곧 ‘쫓는 자’에서 ‘쫓기는 자’로 처지가 한순간에 역전하는데서 공포감이 찾아든다. 인간에게 사냥 당하는 사슴이 느끼는 생명의 위협처럼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공포의 대상이 과연 ‘살아있는 실체’인지 아니면 거칠고 광활한 원시림 속에서 인간의 두려움이 빚어낸 망상에 불과한 것인지 독자의 판단에 맡김으로써, 생각의 여지를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