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들의 노래

홍은전 and other · Essay/Social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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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분주한 출근길 지하철 승강장에 출몰해 한순간 도시의 리듬을 마비시킨 이들. 세상은 이들을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라고 불렀다. 한때 거대 양당의 당 대표였던 이는 이들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잡는 비문명적 시위’로 몰아세우며 공격했고, 그사이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수차례 ‘무정차’ 대응을 개시하며 장애인의 탑승을 거부했다. 이 책은 2021년 12월 시작된 출근길 지하철 시위의 기원을 더듬어보는 기록이다. 몇십 년간 지속해온 매일의 투쟁을 통해 거대하고 견고한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낸 싸움꾼 6인(박길연, 박김영희, 박명애, 이규식, 박경석, 노금호)의 생애가 인권기록활동가 홍은전의 글 속에서 뜨겁게 빛을 발한다. 이 여섯 개의 생애사들은 장애인이 승강장에 서기까지, 시설에서 혹은 집구석에서 지역사회로 나오기까지 걸린 22년이라는 시간을 감각하도록 한다. 전장연 혹은 장애인들의 시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급작스러웠지만, 전장연은 늘 해오던 투쟁을 여전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 투쟁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해프닝이 아니며, 수십 년에 걸친 장대한 역사를 뚫고 오늘날의 이곳에 ‘사건’으로 당도했다. 한편으로 이 책은 《비마이너》가 기획한 ‘진보적 장애인운동 기록 시리즈’의 첫 권인 《유언을 만난 세계》(2021)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장애해방운동에 온몸을 바친 열사들의 ‘죽음’에 ‘삶’으로서 응답하며 고군분투해온 여섯 명의 생애사인 셈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휘청이며 저항했던 무수한 이들의 이야기에 이제 이 사회가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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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기획의 말 4 ‘시작’을 만들고 ‘다음’을 조직한 전사들의 노래 | 강혜민(《비마이너》 편집장) 기록의 말 9 우리의 말이 역사가 되도록 | 홍은전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 | 박길연 이야기 17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기까지 | 박김영희 이야기 69 내 삶을 내 손에 움켜쥐고 | 박명애 이야기 139 나의 쓸모 | 이규식 이야기 193 싸우는 인간의 탄생 | 박경석 이야기 245 운동은 삶을 구할 수 있을까 | 노금호 이야기 315 장애해방운동이 걸어온 길 400

Description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될 때 세계는 다시 시작된다 버스, 지하철, 수용시설 그리고…… 마침내 이 사회 전체를 멈춰 세운 이들의 생生을 건 싸움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분주한 출근길 지하철 승강장에 출몰해 한순간 도시의 리듬을 마비시킨 이들. 세상은 이들을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라고 불렀다. 한때 거대 양당의 당 대표였던 이는 이들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잡는 비문명적 시위’로 몰아세우며 공격했고, 그사이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수차례 ‘무정차’ 대응을 개시하며 장애인의 탑승을 거부했다.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몸을 던져 기어서 열차 탑승을 시도하려는 이들을 서울교통공사 보안관과 경찰들은 시종일관 폭력적으로 저지했다. 이 책은 2021년 12월 시작된 출근길 지하철 시위의 기원을 더듬어보는 기록이다. 몇십 년간 지속해온 매일의 투쟁을 통해 거대하고 견고한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낸 싸움꾼 6인(박길연, 박김영희, 박명애, 이규식, 박경석, 노금호)의 생애가 인권기록활동가 홍은전의 글 속에서 뜨겁게 빛을 발한다. 이 여섯 개의 생애사들은 장애인이 승강장에 서기까지, 시설에서 혹은 집구석에서 지역사회로 나오기까지 걸린 22년이라는 시간을 감각하도록 한다. 전장연 혹은 장애인들의 시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급작스러웠지만, 전장연은 늘 해오던 투쟁을 여전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 투쟁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해프닝이 아니며, 수십 년에 걸친 장대한 역사를 뚫고 오늘날의 이곳에 ‘사건’으로 당도했다. 이들이 버스, 지하철, 수용시설, 그리고 마침내 ‘이 사회 전체’를 멈춰 세워 만들고자 했던 가장 낮고 가장 약한 자들을 위한 세계를 지금 우리는 보고 있다. 한편으로 이 책은 《비마이너》가 기획한 ‘진보적 장애인운동 기록 시리즈’의 첫 권인 《유언을 만난 세계》(2021)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장애해방운동에 온몸을 바친 열사들의 ‘죽음’에 ‘삶’으로서 응답하며 고군분투해온 여섯 명의 생애사인 셈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휘청이며 저항했던 무수한 이들의 이야기에 이제 이 사회가 응답할 차례다. 숙명宿命의 기록: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될 때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01년에도 장애인들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버스를 멈춰 세운 적이 있었다. 쇠사슬로 서로의 몸과 휠체어를 묶은 채 버스를 에워싼 중증장애인들은 이렇게 외쳤다. ‘장애인도 인간이다. 이동권을 보장하라!’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라는 언뜻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는 이 구호에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흘러가는 거대한 자본주의 세계 전체를 문제 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수십 년간 장애인은 자기 삶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한 채 집 혹은 시설에 철저히 유폐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컨베이어 벨트인 지하철에서 가장 먼저 치워진 자들의 이름이 바로 ‘장애인’이다. 하지만 어떻게? ‘버스조차’ 타지 못하는 불구의 몸으로 이 세상 전체와 맞서 싸운다는 건 얼마나 막막하고 답이 없는 일인가. 놀랍게도 그 불가능한 싸움을 시작한 이들이 있었다. 차별과 배제라는 문제를 문제 삼지 않는 세계의 모든 것을 문제 삼는, 실패할 것이 분명한 싸움. 2001년, 그렇게 비장애인 중심의 질서와 문명을 온몸으로 들이받는 장애인 권리 투쟁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웠다. 당장 가야 할 길이 막힌 사람들이 길길이 날뛰며 우리가 법을 어겼다고 비난했다. 참 이상한 말이었다. 장애인은 어길 법조차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벼랑 끝인 이들에게 이 사회는 신호를 지키라고 했다.”(홍은전, <기록의 말>) ‘비장애인 중심 사회’의 기본값을 뒤흔든 변화의 시작은 참으로 초라하기만 했다. 싸움을 시작할 어떠한 자원도 없던 시절이었다. 장애인들은 고작 ‘불구’로 낙인찍힌 몸뚱아리 하나로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버스를 낚아채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그곳에 묶었다. 배제와 차별의 근거가 됐던 불구의 몸이 싸움의 근거이자 토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대체 이들은 어디에서, 어떤 시간을 거쳐 이곳 우리 앞에 당도했던 것일까? 낮달 같던 시간들: 집구석에서 혹은 시설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인터뷰이들은 현재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장애해방운동가이다. 인천 장애인운동의 대표적 인물로 인천민들레장애인야학 교장이자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으로 활동하는 박길연, 장애여성공감을 만들었고 장애인이동권연대의 공동대표를 지냈으며 현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로 활동하는 박김영희,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의 교장을 거쳐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상임공동대표로 활동하는 박명애,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에서 활동하며 탈시설운동과 자립생활 지원에 헌신하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된 이규식, 24년간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장을 지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설립하고 센터장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초석을 마련하고 공동대표를 맡아 대구 지역 장애인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노금호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싸움꾼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투쟁판에 뛰어들기 전, 이들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집이나 시설에 남겨지는 생활을 받아들여야 했다. 박김영희, 박명애, 이규식, 노금호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어린 시절 특정 질환 때문에 장애를 입게 된 경우로, 주로 집에서만 생활하거나 집과 시설을 오고가며 지냈다. 그런 탓에 또래 친구들과 다르게 종종 학교 다니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곁에는 다정하고 따뜻한 부모나 형제들이 있었고, 시설이나 장애인 공동체에서 훌륭한 어른 혹은 좋은 친구들을 만나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제한된 일상 속에서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삶이 ‘무언가 부당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밤마다 울었어요. 나는 낮달 같은 존재였죠. 떠 있는데 아무도 내가 거기 떠 있는지 몰랐어요.”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나가서 살 방법은 없는 걸까?” 중도장애인인 박길연과 박경석은 질병 혹은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후 집 안에만 머물러 있던 시절에 대해 사뭇 다른 방식으로 회상했다. 류머티즘 관절염이 전신에 퍼져 걷지 못하게 된 박길연은 극도의 통증 때문에 아들을 제대로 보살펴줄 수 없었던 게 뼛속 깊이 마음 아팠다고 이야기하며, 동시에 자신을 돌보느라 오랜 시간 고생한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을 내비쳤다. 반면 행글라이더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박경석은 사고 직후 스스로를 유폐시킨 채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해버린 시간을 외려 어떤 고통도 감각하지 못하는 ‘시체의 경험’으로 설명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니 사람이 무감각해지더라고요. 가장 큰 절망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 같아요.” 마침내 세상 밖으로: 투쟁의 희열과 동지라는 곁 일상에 단단히 뿌리박힌 차별 때문에 절망을 절망으로 느낄 수조차 없었던 이들은 어느 순간 자신이 겪는 삶 전반의 문제들, 그러니까 학교에 배우러 갈 수도, 버스나 지하철을 탈 수도,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갈 수도 없는 그 모든 상태가 ‘차별’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대단한 사건을 일으킨 건 동지와의 만남이었다. 동지들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배제하는 사회가 문제임을 일깨워줌으로써 단숨에 이들을 세상 밖으로 이끌었다. 동지를 만나 세상으로 나온 이들은 과거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또 다른 장애인들을 동지로 조직해 싸움을 확장해나갔다. 이규식은 노들장애인야학을 통해 장애인운동에 입문했다. 시설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지내던 어느 날 아차산 초입 부근에 있는 정립회관에 우연히 들어갔다 노들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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