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함께 슬퍼한다는 것
삶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
단단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배우 손수현과 인문사회 서적을 독자에게 알리는 출판 마케터 신연경이 함께 쓴 산문 『새드 투게더: 서로의 손을 잡고 일어서기』가 출간되었다. 2013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손수현 배우는 올해 개봉한 강유가람 감독의 영화 <럭키, 아파트>에서 한층 깊어진 연기로 호평받으며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관객들의 기대를 모았다. 뉴스레터 <오!레터>를 발행하며 좋은 책을 놓치지 않도록 소개하는 신연경 마케터는 독자들이 신뢰하는 출판인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새드 투게더』는 일과 삶을 사랑하는 두 저자가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위아래 층에 살며 써 내려간 고군분투다. 여성, 창작자, 비건 지향인, 페미니스트 등 다양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오래된 골목들을 나란히 걸으며 “늙어감이 낡아감이 아님을”, 거기에 “분명한 아름다움”이 있음을 발견한 기록이다. 단지 ‘우정’만으로 한정 지을 수 없는 동 세대 여성들의 느슨한 연대, 따뜻한 유대를 담았다.
손잡고 일어서다
젊은 날의 우정과 바람
흩어져 살던 각자의 삶을 잠시 뒤로 하고 이곳에 모이게 된 이유에는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월세를 반반 내고, 혼자 사는 것보다 안전한 데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 그러니 안 할 이유 없는 동거인 셈이다. (물론 재미도 있다.)
_본문에서
“어른이 되면 친구들과 한집에 모여 살고 싶어.” 이 책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그려본 꿈을 이룬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막연히 꿈꾸었던 미래와 달리, 어른이 되어 마주한 현실의 일상은 결코 녹록지만은 않다. 먹고사는 문제와 노동, 창작과 자기표현의 열망까지, 무엇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젊은 날의 고민과 바람들은 그들을 울고 웃게 한다. 그럴 때마다 두 저자는 현실에 부딪혀 넘어지더라도 그대로 주저앉기보다 손잡고 일어서는 편을 택한다. 우연한 계기로 발을 들였지만 자신만의 연기론을 쌓아가고, 독자를 기다리기보다 두 발로 찾아나서는 두 저자의 모습은 직업은 다르더라도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온갖 것과 부대끼며 삶을 꾸려가는 모양과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닮아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 그 과정 자체가 ‘살고 있다’라는 감각을 줬다. 나는 그런 감각을 마주할 때마다 시나리오 속에서 마주치는 인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했다.
_본문에서
내게 없는 언어, 속을 부유하는 언어를 먼저 잡아챈 사람들의 말을 빌려 내 시끄러운 고통을 직시했다. 책에서 발견한 말들이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으로 흘러 들어와 추상적인 분노나 슬픔이 남겨둔 빈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남에게 배운 말이 비로소 내 말이 되어 억압을 정의하기 시작할 때, 도피를 위한 출구가 아니라 도약할 수 있는 입구가 열렸다. 다른 사람의 상처로 이주하기 위한 입구.
_본문에서
타인을 끌어안다
낡고 오래된 희망
우정은 때로 친밀함을 빌미로 다른 이들을 소외시키거나 배타적인 선을 긋기도 한다. 그러나 손수현, 신연경 두 저자는 우정의 정의(定義)를 새롭게 넓힌다. 서로만을 위로하기보다 이웃과 타인, 소수자와 비인간 동물, 아직 모르는 이들의 상처까지 기꺼이 끌어안는다. 식탁 위에서 엄마가 읽던 전경린 작가의 소설을 마주하고 ‘엄마’라는 한 개인을 최초로 인식했던 유년의 기억을 어른이 된 현재의 ‘내’가 데버라 리비의 글과 나란히 해석하는 장면은 시간과 세대를 뛰어넘어 책으로 연결되는 모녀 사이의 우정을 그린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다른 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친구들의 애환에 동참하고, 책을 읽고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독자들의 생생한 외침을 들으려는 노력 역시 이들에게는 우정을 달리 표현하는 한 방식이다. “완벽한 건 보기에 좋지만 조금 멀리 있는 느낌이 들어서 흠잡을 곳 없는 하트보다는 약간 찌그러진 모양이 좋다.”라는 손수현 배우의 말은 흠잡을 곳 없이 매끈하게 꾸며낸 이야기보다 거칠더라도 빛나는 삶의 이면을 사랑한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그가 애정으로 포착해낸 순간들은 찌그러졌을지언정, 어쩌면 찌그러졌기 때문에 입체적이다.
내가 쓴 이야기의 끝에는 누군가의 허름한 냉장고가 보일 것이다. 아주 느린 속도로 폐허가 된 집 안을 가로지르는 카메라. 냉장고 문짝에는 언젠가 친구들과 찍었을 사진, 함께 지냈던 연인과 고양이 그림, 그리고 소중하게 주고받았던 쪽지 따위가 아무렇게나 붙어 있다. (…) 그 안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아주 낡고 오래된 희망이 들어 있을 것이다.
_본문에서
희망은 보통 미래를 그려보며 떠올리는 단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손수현 배우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아주 낡고 오래된 희망”을 이야기한다. 미래를 밝힐 희망은 과거의 내가 걸어온 시간에서 시작됨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걷다 보면 어느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언덕 위 빌라에 사는 동안, 삶은 마치 이 빌라처럼 ‘희망’도 잠시 빌린 것일 뿐 내 것이 아닌 양 인색하게 굴지만, 그들은 쉽게 주눅 들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아직 몰랐던 바깥의 세계를 깨우치고자 책장을 펼치며, 책장을 덮고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폭력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새로운 비건 식품이 출시되면 모여서 시식회를 연다. ‘인생은 쓰지만(bitter), 우리는 쓴다(write).’ 손수현, 신연경 저자는 자신들이 삶을 돌보는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써 내려가며 독자들에게도 함께 손을 잡고 일어설 용기를 건넨다.
내가 쓰길 원한 건 우정의 실패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완벽한 실패란 이제 더는 서로가 삶에서 중요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오는 거다. 내가 원한 것은 누군가가 어떤 이와 얽히고, 부서지고, 넘어졌다가 다시 손을 잡고 일어나는 이야기. 손잡고 일어나 서로의 상처에서 이로운 진물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