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최고의 작가, 그리고 최고의 번역가가 일구어낸 최고의 작품들
단편소설의 선구자이며, 단편소설만으로 ‘대문호’라 평가받는
안톤 체호프의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달이 있다고 말하지 말고 깨진 유리조각에 비치는 한줄기 빛을 보여줘라.”
기 드 모파상,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세계 3대 단편 작가로 꼽히는 안톤 체호프는 ‘문학의 변방’이었던 단편소설을 가장 중요한 문학 장르 중 하나로 자리 잡게 한 작가다. 막심 고리키, 나딘 고디머,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어니스트 헤밍웨이, 블라디미르 나르코프 그리고 또 다른 체호프라 불리는 레이먼드 카버와 앨리스 먼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가 체호프의 작품에게 배웠거나 영향을 받았다. 단편소설의 선구자이자 완성자이며, 단편소설만으로 ‘대문호’라 평가받는 체호프는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어로 이루어진 간결한 문장 안에 웃음과 비애, 체념과 전복을 동시에 담은 ‘가장 위대한 단편’들로 인간과 삶에 대한 더 없이 깊은 통찰을 보여준 ‘칼날처럼 날카롭고도 우아한 빛줄기’였다.
러시아어 원전 번역으로 체호프의 문장을 더 정확하고 더 생생하게 구현한 《자고 싶다》는 <관리의 죽음>, <베짱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등 체호프의 대표작뿐 아니라 <우수>, <반카> 등 현실 고발적 작품부터 <6호 병동>, <상자 속의 사나이> 등 인간의 위선과 삶의 속됨을 비판한 작품까지 엄선해 수록한 한편, <자고 싶다>, <삶에서 하찮은 일> 등 더없이 ‘체호프적’인 작품이지만, 대개의 ‘체호피언’이 아직 만나보지 못했을 작품까지 찾아 더해 ‘체호프라는 세계’의 전모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문득은 공명의 문학 브랜드 스피리투스가 야심차게 소개하는 문학 시리즈다. 시대를 초월해 문학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들을 다시 호출해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지만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글文을 얻을 수 있는得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득 시리즈는 이상과 프란츠 카프카에 이어 에드거 앨런 포, 김유정, 그리고 체호프 등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지만 한 번도 읽을 수 없었던 그들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새로운 장이 되고자 한다.
안톤 체호프의 소설 《자고 싶다》의 내용 및 특징
사소한 일상에 유머와 풍자를 더해 ‘비극적 유머’로 승화시킨 현대 단편소설의 선구자이자 완성자
“나는 거짓과 모든 형태의 폭력을 증오한다. 내게 가장 신성한 것은 사람의 육체, 건강, 지혜 영감, 사랑, 그리고 모든 형태의 거짓과 폭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위대한 예술가라면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강령이다. 간결함은 재능의 자매다. 요점이 있고 간결해야 잘 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잘 쓴 이야기를 읽는 일은 한잔의 보드카를 마시는 것과 같다.”
이 책의 표제작이자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지만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작품일 <자고 싶다>는 가볍게 느껴지는 제목과 달리 안톤 체호프가 증오한 ‘모든 형태의 폭력’에 대한 신성한 ‘사람의 육체’의 처절한 저항과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을 그 어떤 작품보다 극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처럼.
‘열세 살 먹은 어린 애보기’ 바르카는 너무 너무도 자고 싶다. ‘두 눈이 감기고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하지만 아기는 자지 않고 계속 칭얼댄다. 몽롱해진 바르카.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가 죽어가던 순간도 보인다. 순간, “이런 망할 것이 있나! 아이가 우는데 잠을 자!”, 주인이 귀를 아프게 잡아당긴다. 아기의 요람을 흔들며 노래를 흥얼거리지만 바르카는 금세 다시 혼미해진다. 새벽이 오자 안주인이 그런 바르카에게 일을 시키기 시작한다. “바르카, 난로에 불 피워!” “바르카, 차를 준비해!” “바르카, 주인님 덧신을 닦아!” “바르카, 계단을 닦아!” “바르카, 맥주 사 와!” 종일 바쁘게 움직이며 일한 바르카. 그런 그녀에게 그날의 ‘마지막 명령’이 내려진다. “바르카, 아기 좀 흔들어 재워!” 바르카는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자기 팔다리를 붙잡아 매고 내리누르며 못살게 구는 그 힘이 무엇인지’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마침내 적을 발견한다. 그 적은 과연 누구일까? 바르카는 그 적을 어떻게 했을까?
<관리의 죽음>은 ‘기침’이라는 사소한 사건 하나 때문에 전전긍긍하다 죽음에까지 이르는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에 길이도 극도로 짧은 소품이지만, ‘자신이 던진 돌에 맞아죽는 개구리’의 비극을 유머러스한 상황 묘사와 대사로 그려낸 ‘비극적 유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따분한 일상의 희미한 바다에서 비극적 유머를 드러낼 수 있는 작가”라는 막심 고리키의 평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관리의 죽음>이 아이러니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면, 어린 아이와의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버리는 어른의 이야기를 스피디한 문체로 전하는 <삶에서 하찮은 일>은 패러독스에 기댄 작품이다. 거짓 혹은 거짓말 두 개가 엉켜 진실을 드러내는 한편, 아이의 천진함(childlike)과 어른의 유치함(childish)이 엉켜 현실의 부조리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인데, 그 진실과 부조리를 ‘살뜰한 보살핌을 받고 자란 귀여운 여덟 살짜리 꼬마’가 오롯이 감당해야만 하는 결말에 이르면, 아이와 눈물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또 하나의 역설을 말이다.
흔히 현진건을 한국의 체호프라 한다. <우수>을 읽다 보면 그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가족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건 앞에 놓인 인물의 비참한 현실과 내면을 치밀하고 섬세한 사실주의적 묘사로 전하는 것이 무척이나 닮았기 때문이다. 다만 <운수 좋은 날>이 감정적 개입을 최소화한 차가운 시선으로 이야기했다면, <우수>는 인물의 내면과 하나가 된 뜨거운 목소리가 이야기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또한, 영화 <올드보이> 덕분에 더욱 유명해진, 엘라 휠러 월콕스의 시 <고독>의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자고 싶다>의 바르카처럼 <반카>의 반카 역시 아홉 살짜리 아이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고된 일상과 가혹한 삶을 감내해야 한다. 그런 반카를 견디게 해주는 것은 ‘오로지 할아버지뿐’이다. 아니 할아버지와 관련한 기억뿐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 너무도 목가적이어서 반카가 처한 현실의 삶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렇게, 따뜻한 유머가 흐르는 기억과 냉기, 아니 살기 가득한 날카로움이 사방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담담하게 전하면서도 체호프는, 페이소스 가득한 유머로 삶의 비극성을 꿰뚫어 보여준다.
“많은 인물을 그려내는 건 필요하지 않아.
중력의 중심은 두 사람 안에 있어야 해. 그 남자와 그 여자.”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중력은 대개는 사랑을 동반하지만, 가끔은 서로를 밀어낸다. 끊임없이, 그리고 가차 없이. 사랑이 대개는 환상이고, 가끔은 속물적인 것이기도 하기에. 아니, 어쩌면 사랑은 대개 속물적인 것이고, 가끔 환상적인 것이기에.
<베짱이>의 올가 이바노브나는 다양한 재능을 갖춘 예술가(라고 주위에서 속삭이는 것을 듣는, 예술가가 되고픈 열정까지는 없는 예술가)다. 그런 그녀 주변에는 출중한 재능이 있는(사람이라고 올가가 믿고 싶어 하는) ‘유명 인사’들로 늘 북적인다(정확히는 북적이게 하고 싶은 것이 올가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유명 인사’가 아닌, 다만
‘선량하고 겸손한’ 의사인 ‘디모프’와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