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작품-독자의 트리플을 꿈꾸다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26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의 스물여섯 번째 안내서. 2022년 청소년소설 『다이브』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청소년문학, 장르문학, 순문학계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작가이자 2023년 『개의 설계사』로 문윤성SF문학상을,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로 박지리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 단요의 첫 소설집이다.
단요는 지금까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시공간 속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방식으로 질서정연한’ 세계를 창조해왔다. 트리플 26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에서는 단요가 건축해온 기존의 세계관을 더 깊게 파고들어, 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해 위태롭거나 이미 무너져버린 세계의 이면에서 발견되는 현대사회의 모습, 그 안에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미래를 바라보려 하는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조화롭게 어우러지거나 반대로 번번이 충돌하는 ‘기술과 욕망의 세계’라는 테마파크에서 펼쳐지는, 보다 넓고 단단해진 ‘단요 유니버스’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망상과 착란, 희박한 도덕의식의 세계
그 안에서 재조합되는 현실과 현대의 조각들
2022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해 2023년 문윤성SF문학상과 박지리문학상을 동시에 석권한 작가, 2024 문학동네신인상을 통해 평론가로도 등단하며 특유의 첨예한 시선을 한 층 더 명료하게 드러낼 준비가 된 작가 단요의 첫 소설집,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이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단요가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던 “압도적인 규모의 상상력”(윤경희 문학평론가)은 더 이상 ‘SF’ 혹은 ‘장르문학’이라는 좁은 범위에 갇혀 있지 않다. 그의 목소리는 짧고도 긴 지면을 통해 “이 시대에 필요한 소설”(구병모 소설가)로 완전히 탈바꿈해, 계속해서 독자들에게 기민한 화두를 던진다.
들어가는 소설이자 표제작인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은 음주 운전 사고로 몸은 소각되고 머리만 살아 있게 된 제약회사 회장 ‘건록’이, 자신과 뇌가 연결된 소년 ‘목향’이 벌인 살인사건을 목도하면서 시작된다. 목향은 자기 머릿속에서 말을 거는 건록을 “하느님”이라고 부르며 정신적으로 기대고 건록은 그런 목향을 자살의 고비에서 몇 번이나 구해주지만, 그의 호의는 목향의 삶을 실제로 더 좋게 만들지 못한다. 얼핏 건록에게 맹목적으로 보이는 목향 또한 건록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긍정과 부정의 경계선을 넘나들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의식불명인 건록을 위해 ‘하느님에게 기도를 시키는 고아원’에서 자란 목향처럼, 개인의 믿음은 개인이 속한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인간은 종종 건록과 같이 내가 선의를 베풀지 않으면 누군가의 세계 전체가 위태로워진다는 기만적인 생각을 하며 만족감에 젖어들곤 한다. 그래서 해설을 쓴 이성민 문학평론가는 이 단편을 “사적 개입의 거짓 긴박성과 믿음의 환영이라는 두 축이 결부되어 있”는 소설이라고 평한다.
마지못한 인정일 때도 있었고 순전한 후회일 때도 있었지만 결론은 항상 같았다. 목향은 지금보다 행복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으로 시작되는 질책과 변명이 원의 맞닿는 두 호를 이룬 채 머릿속에서 공회전했다. 후회와 자기혐오는 오만을 닮은 변명이 되었고, 공포로 바뀌었다가, 죄책감과 분노와 다른 모든 감정이 되어 길게 늘어졌다. 사이사이에는 까마득한 침묵이 검은 띠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문득 이 방출 스펙트럼이 어떤 원소를 가리키는지 궁금해졌다. 원소라고…… 나는 아직도 이 상황을 지독한 농담으로만 느끼고 있는 것이다……. (24쪽)
「제발!」은 아포칼립스에 가까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SF의 뼈대 위에 고딕호러 장르를 덧씌운 작품이다. 사람들이 전쟁으로 “지나간 세계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또다시 전쟁을 하다 겨우 휴전협정을 맺은 근미래 배경 속, 주인공은 사이비 종교 ‘별의 인내자’에 빠져 가족을 버린 누나가 남긴 막대한 유산을 받으러 종교의 본거지에 찾아간다. 한 학자 컬트 집단이 만든 이 종교는 “찬란한 문명을 보존하”는 일을 목표로 지구를 떠나 우주 식민지로 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이 열정적으로 외치는 교리는 마치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현대의 세계가 언제든지 부서질 수 있는 허구적 체제임을 전시하고, 그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인공은 정신만 데이터화된 누나를 통해 인내자들의 말이 허무맹랑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의 주장이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정말로 지구 너머의 세계와 연동하면서 지상 정부들과 결탁해 “땅의 질서”를 조종하고 있었다. 이 반전을 통해 우리는 어떤 허구는 허구인 채 동시에 실재가 되어, 우리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 즉 보통의 인간은 여전히 “모두가 진실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지만 그게 진실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고, 상상과 거짓말을 마취제 삼는 땅, 땀과 피마저도 누군가의 여흥에 불과한 땅”에서 살아가야 하므로, “우주에 대해서는 절박하도록 몰라야만” 하는 채로 누나를 위시한 별의 인내자들의 구원받은 삶과는 전혀 다른 미래를 그려나갈 수밖에 없다.
마술이란 아슬아슬한 거짓말을 그저 믿음으로써 현실로 만드는 기예다. 기껏 마술사를 초빙해놓고 속임수를 알아내려는 사람은 돈 아까운 줄 모르는 얼간이다. 금화처럼 우수수 쏟아지는 정오의 햇살, 무수한 종류의 빛. 빛이 고통처럼 번쩍거렸다. 고통이 빛처럼 번쩍거렸다. (76쪽)
“저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무엇이 퇴적되고 있을까?”
지속가능성을 점쳐야 하는 망가진 세계
좌절을 딛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인간의 의지
남의 머릿속에 함부로 침투할 수 있는 건록 같은 ‘하느님’도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하고 우리 개개인 또한 세계가 구현한 상상과 거짓말에 이미 마취되어 있다면, 우리는 허구와도 같은 현실에 위태롭게 매달린 채 끝까지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일까?
검은 꽃이 즐비하게 자라난「Called or Uncalled」의 세계 속 주인공은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 모든 방해물에도 불구하고, 허구-현실을 실재-현실로 재건하고 우리와 우리 사회를 구원하는 것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인간의 내면과 그것에서 발현되는 삶에 대한 의지라고.
「Called or Uncalled」는 어둠처럼 새카만 꽃을 피우는 기능성 유전자 개량 식물이 곳곳에 심어진 한 도시, 그 식물의 돌연변이종이 강력한 마약 성분의 꽃가루를 퍼뜨리며 빠르게 질서가 붕괴되기 시작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전자화폐 완전 실명화를 추진하는 강경파 재무국장의 남동생” “급진적인 우파 가속주의자이자 사이버 아나키스트” “스트레스와 사춘기의 호르몬 이상으로 인한 조현정동장애 발병”자인 주인공의 병적인 망상은 종종 현실을 압도하는 듯해 소설의 혼란스러움을 가중한다.
그는 자신의 내·외면에 달라붙은 온갖 혼돈과 환각을 기꺼이 따라감으로써 머릿속에 흐르는 수많은 생각의 기원을 깨닫는다. 여기까지는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의 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Called or Uncalled」의 주인공은 깨달음 이후에도 건록에게 의지한 목향과는 반대로 “그 감각에 도취되었지만 이 모든 관계를 어딘가에서부터 끊어낼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검은 꽃이 도시 전체를 융해시키는 중”인 현실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한 후, 파괴된 세계를 재건하기 위해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그의 각성과 의지는 상징계로 빠져들어 가는 현대 세계를 물질세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의 세계로 다시 끌어당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과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땅’은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