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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 불리는 그 이상한 것은 무엇일까?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 빈틈없고 주의 깊게 연구한다. 그리고 단언해 말한다. ‘사랑이 없으면, 그대는 죽은 사람’이라고. 사랑이 없으면 뜻대로 하고, 지상의 모든 신을 쫓아다녀도 온갖 사회활동을 하고, 빈민을 구제하고, 정계에 입문해도 책을 쓰고 시를 쓰더라도 그대는 죽은 사람이다. 사랑이 없으면 그대가 가진 문제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그런데 사랑과 함께라면, 뜻대로 해도 위험하지 않고 갈등하지 않는다. 그때 사랑은 덕의 진수다. ― 저자의 말 그는 절대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외로움, 집착, 고독, 쾌락, 자기만족과 같이 사랑이 아닌 것을 통해서 사랑을 말할 뿐이다. 대체 사랑이라 불리는 그 이상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보통 우리가 말하는 사랑에는 섹스, 시기, 외로움, 집착, 우정, 수많은 쾌락과 그로 인해 생기는 두려움이 뒤얽혀 있으며 이것들은 모두 마음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랑을 알고 외로움을 알려거든 먼저 마음이라는 사고의 방식과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라는 사람이 무언가를 원하고 소망하고 간절히 바랄 때, 그 나의 욕구는 나의 마음을 분명한 형태로 나타낸다. 즉 ‘나는 부자가 되고 싶어’라고 했을 때,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한 패턴을 만들고 나의 생각은 그것에 사로잡혀 버린다. 그러자 나는 그 관점 밖에서는 생각할 수 없고 그것을 넘어 설 수도 없다. 나의 마음은 생각의 패턴 안에서만 구체화되고 완고해지며 무뎌지고, 결국 욕망이 만든 미로에 갇히고 만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되는 행위의 패턴을 만들고 자동차와 외투를 소유하듯이, 사람이거나 물건이거나 그를 소유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을 사랑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그, 혹은 그녀가 자신의 곁에 없거나 멀리 떠났을 때만 상대를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녀는 내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 때는 더 이상 그녀를 생각하거나 그리워하지 않는다. 마치 그대가 이미 자신의 소유가 돼 버린 자동차나 가구를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따라서 그대가 어떤 이에게 반해서 그 사람 곁에 있고자 하고, 그를 소유하고자 하면 거기에는 사랑이 없다. 외로움이나 공허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런데 우리는 왜 자꾸 뭔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걸까? 바로 우리 삶의 실제가 외로움, 공허함, 결핍됨과 같은 내적 빈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란 아무리 활동적으로 움직이고, 책을 쓰고, 영화를 보러가고, 놀고, 사랑하고, 회사에 출근해도 언제나 허무하고 지루하고 판에 박힌 일뿐이다. 요컨대 우리는 자신의 존재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엄청난 공허함과 욕구불만을 채우려고 바쁘게 움직인다. 그 공허함을 체면이나 돈, 사회적 지위나 독서를 통해 얻어지는 지식 따위로 채우려 하기도 하고, 라디오를 듣거나 시끄럽게 수다 떨고 남 얘기하면서 잊으려 하기도 한다. 또 내 재산, 내 아내, 내 남편, 내 아이들과 같이 물건이나 사람에 이름을 붙여 주고 독점적으로 소유하고자 한다. 우리가 섹스에 몰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섹스라는 쾌락은 우리 삶의 원초적인 충동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절대적인 자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섹스에 몰입하는 순간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잊음으로써 절대적인 자유에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섹스라는 행위가 아니라 행위에 대한 생각이다. 마치, 음식을 먹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먹는 것 외에는 달리 생각할 게 없어서 하루 종일 먹을 것만 생각한다면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행위들은 오히려 고립감만 더할 뿐이며, 고립 속에서는 아무도 살 수 없으므로 갈등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제, 갈등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도피의 수준은 모두 같다. 그 어떤 사회활동이든,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이든, 신을 찾아 예배드리고 의식을 거행하기든 뭐든 말이다. 문제는 모순된 우리의 마음과 삶이다 이처럼 그대는 사랑이라는 말로 공허함을 감추고 자신과 자신의 부족함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랑이 없다. 오히려 더한 공허와 좌절, 해법 없는 문제만 알게 될 뿐이다. 외로움을 직시하지 못하고 계속 도망치기만 한다면 언제까지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없다.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어떤 형태로든 도피하지 않고 외로움을 이해하며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외로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사랑해야한다는 말이다. 사랑만이 유일한 혁명이다. 사랑은 이론도 관념도 아니다. 사랑은 감상도 아니고 낭만적인 정취도 아니며 그 무엇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마음에 속하지 않으며 마음이 정말로 고요할 때만, 마음이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묻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을 때만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사랑은 오직 자기에 대한 생각이 없을 때에만 존재하고 또 자기인식을 통해 존재하는 자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자신을 알면 이해하게 되고 마음의 모든 작용이 완전히 드러나고 이해되면 그때 그대는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사랑은 감각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것을, 사랑은 뭔가를 실현시키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은 아무런 결과도 없는 사랑 그 자체이다. 사랑은 그냥 존재하는 상태이며, 그 상태에서는 불안해하고 소유하려는 ‘나’가 없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가, ‘나’가 활동하는 한 사랑은 계속해서 존재할 수 없다. 그 때문에 ‘나’가 어떤 것인가를 인식하는 핵심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