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 ‧ 노시니어존의 확산, 늘어나는 정신과 진단명
건강과 위생 강박, 불편을 참지 않는 사람들…
우리가 추구한 ‘쾌적함’이라는 미덕이
오히려 배제와 낙인, 통제의 연료가 되고 있다
◆ 2021 기노쿠니야 인문대상 수상작
◆ 사회학자 오찬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 강력추천
쓰레기 없는 깨끗한 거리, 정시에 칼같이 움직이는 대중교통, 어디서나 터지는 와이파이와 냉난방 시스템, 소음이나 냄새를 허락하지 않는 무음무취의 공간, 친절하고 빠른 서비스업 종사자, 지극히 얌전한 아이들과 단정하고 건강한 어른들.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청결하고 안전하며 질서 정연한, 그야말로 ‘쾌적한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쾌적함이 타인을 향한 노골적인 배제와 통제의 동력이 되고, 더 나아가 우리를 억압하고 병들게 하고 있다면 어떨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구마시로 도루는 신간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에서 우리가 이룩한 질서와 청결, 효율과 균질화가 우리에게서 무엇을 앗아갔는지, 그리고 왜 이 최적화된 사회에서 개인은 더 불행해지고 있는지를 파헤친다. 이 책은 질서와 청결을 숭상하는 일본에서 출간 즉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서점인과 독자들이 그해 최고의 인문서에 수여하는 ‘기노쿠니야 인문대상’(2021)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현대 도시 시스템은 과거의 불편함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켰지만, 동시에 개인을 억압하는 또 다른 힘으로 작동해왔다. 이제 현대인들은 무결점의 능숙하고 효율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한다. 저자는 정신건강, 신체건강, 청결, 저출생, 공간 설계, 의사소통을 주요 키워드로,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가치들이 어떻게 개인을 ‘정상성’이라는 좁은 규격 안에 가두고, 그 기준에 미달하는 이들에게 부적격 낙인을 찍는지 날카롭게 짚어낸다. 이제 우리는, 과거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들에 일일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필요 이상의 수치심과 죄책감, 열등감을 느낀다. 그 결과 사회는 더 예민하고, 엄격하고, 편협해졌다.
저자는 “모두가 쾌적함에 취해 숨이 탁탁 막히는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게 기묘하게 느껴진다”고 고백하며, 완벽한 시스템에 숨은 고충과 해악, 그 결과 우리가 맞닥뜨린 부자유를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학자 오찬호 역시 “쾌적함과 불쾌감이 동전의 양면처럼 떠돌며 정상과 비정상을 쉽사리 구분하는 풍토를 과감하게 짚어낸다”며 “‘사회적 청결’이라는 시대의 흐름이 차별과 혐오의 연료가 되고 있다는 저자의 목소리가, 한국 사회 곳곳에 스며들기를 희망한다”고 일독을 권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 또한 “안전한 사회가 될수록 안심은 되지 않는 아이러니가 일본과 한국의 현재”라며, 이 책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뼈 때리는 진단과 처방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은 고도화된 질서 속에서 배제와 낙인, 통제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시의적절하고도 깊이 있는 논의의 장을 열어줄 것이다.
아이, 노인은 출입 금지? 불편을 제거함으로써 쾌적함을 얻는 사회
: 타인을 배제하는 ‘불쾌해할 권리’는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최근 몇 년 사이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 사회에는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혐오와 배제의 문화가 깊게 자리 잡았다. 노키즈존은 노시니어존으로 확산되며 특정 세대를 배제하는 관행이 되었고, 이러한 배제는 차별이 아니라 ‘쾌적함을 위한 합리적 선택’처럼 포장되고 있다. 노인들이 보기 싫다는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에 불투명 시트지로 창문을 가린 요양원, 공놀이를 자제해달라는 현수막이 붙은 어린이공원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심코 던진 평범한 말 한마디에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순식간에 비난의 대상이 된다. 도심 주택가나 대단지 아파트 주변에서는 단정한 겉모습을 유지하지 않으면 경계의 눈초리를 받는다. 우리가 합의한 정상성의 기준이 그만큼 협소하고 날카로워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청결과 질서, 효율과 균질화를 향한 압력이 강한 사회일수록, 즉 ‘쾌적함’이라는 미덕을 극단까지 밀어붙일수록 평범한 개인이 더 쉽게 문제적인 존재로 분류되는 서늘한 현실을 고발한다. 그는 특히 현대인이 내세우는 ‘불쾌해할 권리’에 주목한다. 내가 불편해지지 않기 위해 타인을 밀어내는 이 권리는 결코 평등하게 행사되지 않는다. 그것은 대체로 더 힘 있고, 더 건강하고, 더 생산적인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특권에 가깝다. 결국 쾌적함을 향한 질주가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모두 언제든 불쾌한 존재로 전락해 배제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군이다.
폭증하는 ADHD, 늘어나는 정신과 진단명
: ‘능숙한 인간’만을 허용하는 사회는 어떻게 개인을 환자로 만드는가
친절함과 빠른 일처리 능력은 이제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기본값이 되었다. 저자는 지나치게 업무 수준이 높고 고른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선호되는 일본 사회 풍경을 그리면서, 일본과 한국처럼 서비스 수준이 높고 규격화된 곳일수록 개인은 언제나 밝은 표정과 효율적인 대응을 강요받는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러한 ‘고성능의 기준’이 노동 현장을 넘어 대학입시와 취업, 일상적 인간관계에까지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다양성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일률적인 규격에 맞춰 자신을 교정하는 이들만 살아남는 경쟁이 곳곳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의 허들이 높아지면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 사람들의 설 자리는 급격히 좁아진다. 일처리가 조금 느리거나, 성격이 내성적이거나, 의사소통이 서툰 이들은 역량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좌절과 불안은 결국 현대인들을 정신건강의학과로 내몬다. 과거라면 조금 독특한 개성으로 받아들여졌을 특성들이, 이제는 반드시 교정해야 할 질병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폭증하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ASD(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개인의 결함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이를 자본주의적 질서와 고도화된 사회규범, 그리고 정신의료 시스템이 맞물려 만들어낸 구조적 산물로 규정한다. 저자는 묻는다. 과연 이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이 문제인가, 아니면 ‘능숙하고 결함 없는 인간’만을 허용하는 엄격한 사회가 이미 병든 것인가.
건강을 향한 강박, 눈앞에서 지워지는 질병과 죽음들
: 건강한 몸이 곧 우월함이 된 사회, 우리는 정말 안녕한가
오늘날 건강은 선택이 아닌 의무에 가깝다. 운동과 저속노화 식단, 건강위험인자를 점검하며, 노화를 늦추기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삶은 현대인의 기본값이 되었다. 이제 흡연은 좁은 흡연 부스로 밀려나, 비정상적 행위로 취급받고 있다. 인류 역사상 모두가 이토록 건강에 집착하는 시대는 없었다. 건강은 이제 삶을 위한 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 삶의 목적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건강한 개인’은 곧 ‘우월한 개인’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반대로 질병과 노쇠는 사회의 전면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중환자와 장기 돌봄이 필요한 이들은 병원과 요양시설이라는 의료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사회공동체로부터 단절되고, 도시는 오직 건강하고 생산적인, 활력 있는 사람들만의 공간처럼 유지된다.
저자는 몸을 관리하는 일이 개인의 책임이자 능력으로 환원되는 순간, 건강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적 가치와 결합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오래 살게 되었지만 병과 죽음이 일상에서 분리되면서, ‘노화’라는 생의 진실을 대면하고 사유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더 오래 일하고, 더 잘 버티기 위해 몸을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이 책은
COZYBOY
4.0
가장 현명한 처세술은 사회적 인습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인습과 모순되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르네상스형뮤지션
3.5
쾌적한 도시를 위해 인간이 개조되는 현상을 ‘사회적 표백’이라고 설명. 소음과 느림, 서툼 같은 이질성을 지워버리고, 오직 도시에 어울리는 ’고도의 규칙‘을 지키는 ‘무해한 시민’만을 남긴다는 의미. 특히 서울과 도쿄는 쾌적함을 미끼로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정작 그 안의 인간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압력을 견디다 못해 연소해 버리는 ‘거대한 블랙홀’. ‘서울이라는 좁은 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낙오하지 않기 위해’ 서로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옥죌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무해한 존재가 되라는 압력을 견디다 못해 질식해버린다. 블랙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서울과 도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에밀 뒤르켐이 ‘질서가 완벽히 유지된 수도원에서는 작은 일탈도 큰 죄악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듯, 지금 사회가 딱 그렇다. 예전 같으면 웃고 넘길 실수나 소음이 이제는 용서받지 못할 ‘민폐’가 되고, 척결해야 할 ‘악’으로 규정된다. 사회가 쾌적해질수록 ‘죄인’의 범위도 더 넓어진다. ‘노키즈존’ 논란, ‘운동회 소음’ 사과 사건 등은 통제 불가능한 존재를 우리 곁에 두지 않겠다는 사회적 선언과 같다. 도시가 쾌적해질수록, 이에 순응하지 못하는 약자들이 가장 먼저 배제된다.‘ ‘돈을 지불했으니 불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도 금전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감각이 강해지며 나타난 현상이다.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깊게 침투하기 전인 1970년대에는 이런 태도가 지금만큼 당연시되지 않았다.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이런 사고가 빠르게 내면화됐다. ‘당연함’이라는 것은 시대적 맥락에서 용인되는 것이지, 이게 반드시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과도한 ‘의료화(Medicalization)’ 현상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예전 같으면 조금 특이하거나 산만한 사람으로 넘겼을 이들을 이제는 ‘교정해야 할 환자’로 분류하는 식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의 범위가 극도로 좁아졌기 때문이다. 도시는 노동자에게 높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이 기준에 미달하면 ‘빌런’으로 낙인찍히거나 병원 진단서를 받아야 한다. 의학이 발전해서 환자가 늘어난 게 아니라, 사회의 허용 폭이 좁아져서 ‘환자’가 양산되는 꼴이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향해 ‘너는 정상인가’를 묻는 거대한 검문소를 운영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감각은 ‘폐를 끼치는 타인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내가 완벽한 무해함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스스로 검열하는 만큼, 타인의 사소한 잡음이나 이질성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도시의 질서가 견고해질수록 타인을 감시하는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작은 일탈조차 용납하지 않는 ‘검문소’ 논리가 일상을 지배하게 된다.‘ ‘’무해함’을 추구하는 사회의 끝은 도시가 재생산 기능을 상실하고 소멸하는 것이다. 고밀도 압박 속에서 ‘무해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매 순간 스스로를 검열하는 청년들에게, 통제 불가능한 존재(아이)를 책임지라는 것은 시스템과 사투를 벌이라는 말과 같다. ‘나 하나 무해하게 살아남기도 벅찬데, 어떻게 유해한 존재(아이)를 세상에 내놓겠는가’라는 저항이 저출산이라는 결과로 나타나는 식이다. 결국 서울과 도쿄라는 블랙홀은 주변의 젊은 에너지를 빨아들여 화려한 빛을 내뿜지만, 그 내부에서는 인간이 소멸하며 사그라들게 될 것이다.‘
알량한
4.5
노키즈존의 확대, 일본인의 관광객 '어깨빵' 등의 원인에 대해 알려준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 생활이 인간을 옥죄는 형틀이 되어간다.
시선
4.0
정신과 의사가 쾌적한 사회에 던지는 질문들. 관점이 신선하다, 더 많은 논의가 되길.
KDH
4.0
일본에서 자본주의, 개인주의, 사회계약이 가져온 사회 현상들을 짚는다. 지나치게 기준이 높아진 일본 사회에 대한 위화감이 주 내용이다. 대부분의 내용에는 공감하지만, 좀 파편적인 느낌이다. 너무 많은 걸 왔다갔다하는... 좋은 책이긴 한데, 기대를 너무 많이 한 듯.
은지
1.5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주제를 다뤘지만 그래서 결국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음. 문제 제기만 할 뿐인데 그마저도 결국 현재가 최선이란 듯한 말이 덧붙여져 명확하지 않다.
거친파도속의할머니
2.0
명확한 문제의식 대비, 깊이와 집중은 얕은 편
단단
2.0
흠.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고 비동의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다뤄야 할 내용들을 잘 다뤘다고 생각함.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것들을 담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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