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살림, 영성부터 옷, 섹스, 먹을거리까지
60대 현경과 30대 수진이 나눈 4년간의 깊은 대화
● 현경, 그녀의 운명이 시작된 서울과 스스로 선택한 뉴욕, 근원을 만난 아프리카까지
함께 여행하고 생활하며 발견한,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사랑 그리고 자유로움……
이 책은 60대 여성 멘토 ‘현경’과 30대의 젊은 여성 ‘김수진’이 4년에 걸쳐 나눈 세대 간 대화를 김수진이 정리한 책이다. 아픈 다리로 남들보다 세 배나 더 걸려 산티아고 길을 순례한 뒤 <순진한 걸음>이라는 책을 써서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 김수진이, <미래에서 온 편지>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등의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여성?환경?평화 운동으로 유명한 유니언 신학대 교수 현경과 4년 넘게 한국, 미국, 아프리카 등지를 함께하며 여러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평화와 살림, 영성靈性, 여성성 같은 의식과 가치관의 문제부터 옷, 섹스, 먹을거리 등 자기를 돌보고 표현하는 일상의 문제까지, 수진의 질문에 대한 현경의 대답과 현경이 삶으로 몸소 보여주는 모습은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젊은 여성들이 가슴 깊이 듣고 새길 만한 지혜와 통찰로 가득하다. 특히 아름다움과 당당함, 자기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많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전해줄 것이다.
4년 전 첫 만남에서 두 사람은 서로 에너지가 많이 다른 사람들임을 알아차린다. 현경의 표현을 빌면, 수진은 “삼십대 중반의 여성인데도 에너지가 한 번도 섹스를 해보지 않은 어린 소녀” 같고, “한 번도 화장을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얼굴”에 코스모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야들야들해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이 책, 8, 10쪽) 그에 반해 수진은 현경을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운 길을 여는 전사의 에너지를 지닌 ‘인디고 차일드’ 같다고 느낀다. 현경은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낀다는 “애늙은이” 수진의 태도가 불편하고, 수진은 “화려하고 강하고, 소위 ‘기 센’ 언니”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거칠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39쪽)
그러나 만남이 깊어지면서 수진은 “전사 같던 그녀에게서 소녀처럼 여리고 섬세한 예술가를 만나고”(26쪽), 일과를 묻고 고민을 들어주며 자신의 외로움과 아픔을 알아주고 쓰다듬어주는 모습에서 ‘여성의 영성’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경험하며, “아름다움이란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임을, 성숙한 여성들의 모임이 지닌 힘과 치유를, 거룩한 분노로 인한 창조적 파괴의 미덕을”(28쪽) 보게 된다. 현경도 지금까지 삶의 목적과 세상을 구하는 약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난 이른바 ‘영웅 여정’의 길을 걸어왔다면, 수진을 만나면서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지금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며, 싸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변해갔음을 알아차린다.(14, 15쪽)
이렇듯 달라서였을까? 두 사람이 만나 묻고 답하고 발견하고 소화시킨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아서, 이제 자기만의 삶의 지도를 만들기 시작한 또 다른 젊은이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되기까지 4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다름과 닮아감이 이 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 요소가 되었다.
여름과 겨울, 방학마다 서울에 온 현경과 함께 수진은 여성 평화 운동 단체인 조각보 모임이나 제주 강정의 평화 대행진에도 참여했고, 어느 해에는 수진이 뉴욕을 찾아가 현경의 집과 학교에서 그녀의 제자와 친구들은 물론 일상 속의 현경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우연찮은 기회로 주어진 동아프리카 여행을 함께하고 비행기로 킬리만자로를 넘으면서 둘은 자신들의 여행이 회귀와 합일, 귀향으로 모아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렇게 이 책은 ‘서울, 뉴욕, 동아프리카(킬리만자로)’로 이어지는 발길을 따라가면서, ‘운명, 선택, 귀향(또는 회귀)’이라는, 우리 인생의 주제들을 가지고 대화하고 거기서 걸러진 지혜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는 책이라 하겠다.
이 책을 만드는 동안 현경의 꿈에 ‘책의 신’이 나타나 “이 책은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쓰여야 한다”고 했다 한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 책에는 그간의 현경의 저작들에서는 볼 수 없던 일상의 면모들―생활하는 뉴욕의 집, 학생들과의 수업 광경, 사람들과 만나는 방식, 그가 먹고 입는 것들까지―이 이 책의 화자인 수진이 보고 들은 그대로 구체적이면서도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고, 서울과 뉴욕, 아프리카에서 찍은 사진들에서도 현경의 깊은 철학과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다.
현경: “이제 우리는 함께 만나 막히지 않고 사회 변혁, 연애, 섹스, 신성, 우주에 대해 대화한다. 이래서 사람은 만나고 이해하고 친구가 되고 사랑해야 하나 보다. 그 에너지들이 모여 변화를 일으키고 평화를 만든다. 인생은 끊임없는 변화이고, 그래서 살아볼 만하다.…… 수진과 나의 4년간의 깊은 만남이 자유롭고 자기답게 살고 싶은 여성들의 세대 간 대화, 이해, 자매애를 키우는 데 작은 씨앗이 되기를 꿈꿔본다.”(‘현경의 여는 글’에서)
김수진: “지금 이 순간 할 일은 내 앞에 와 있는 삶에 깨어 매 순간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일, 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내 선택에 진실하며, 나 자신으로 귀향하는 일임을 자각한다. 이 여정에서 깨달음과 용기가 되었던 이야기를 이렇게 나누게 되어 고맙고 또 기쁘다.…… 쉽지 않은 작업에 용감하고 솔직하게 맨가슴을 열어준 검은 거울, 현경 선생님께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다 ”(‘김수진의 여는 글’에서)
● ‘검은 거울’, 모든 것을 긍정하고 품어주고 받아주는 여성의 영성
1부 ‘운명’은 서울에서의 이야기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부터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 인생의 스승을 만난다는 것, 거룩한 분노를 표현한다는 것, 평화를 이룬다는 것, 살림이스트로 산다는 것 등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름의 뜻을 묻자 현경玄鏡은 “여자들이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고 물으면 언제나 긍정의 목소리로 ‘그건 바로 너야!’ 하고 대답해 주는 거울, 남성들이 말하는 ‘옳고 그름을 가리고 뭔가를 되비쳐주는 밝은 거울’이 아니라 모든 것을 품어주는 검은 거울(玄鏡), 내치고 따끔하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긍정하고 포용하고 받아주는 여성의 영성”이라고 대답한다. 강연장에서 “당신은 기독교 신학자면서 불교 선생이기도 한데 당신의 진짜 종교는 무엇”이냐는 누군가의 질문에는,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불교도가 못 될 것 없죠. 기독교는 제가 태어나고 성장한 바탕이고 불교는 제가 선택한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굳이 제 종교를 정의하라고 한다면 글쎄, 저는 ‘우주 자궁교’라고나 할까요?”라고 답한다.
이름부터 믿음까지 그녀는 모든 것이 페미니스트이고 살림이스트이다. 그러나 이는 그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새어머니 손에서 자라고, 아버지 사업이 무너져 뼈저린 가난을 경험하고, 이혼과 우울증으로 죽어가던…… 그런 운명을 극복하면서 내려온 수많은 선택의 결과였다.
분노와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믿는 수진과 달리, 현경은 분노는 때로 필요하고 좋은 것이기도 하다고 믿는다. 분노가 있어서 문제 해결의 의지가 생기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그대로 주저앉지 않을 힘을 얻기도 한다는 것이다. 현경은 정의를 향한 이러한 분노를 ‘거룩한 분노’라고 불렀다. 그러나 현경의 페미니즘은 ‘거룩한 분노’에만 머물지 않았다. “상처를 넘어 모든 것을 살리고, 사랑하고, 보살피고, 먹이는 힘, 여신의 에너지”로, 곧 살림의 에너지로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현경이 ‘이즘’을 앞세우며 사회 참여만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백팔 배를 한다는 그녀는 “수행이 없는 참여도 아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