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귀가 없다

노미영 · Poem
1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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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 시인선 47권. "대박을 꿈꾸는 시에 퍼붓는 신랄한 야유"(최영철)를 날것의 감각으로 펼쳐놓았던 첫 시집 <일년 만에 쓴 시>(2002) 이후 13년 만에 펴내는, 노미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노미영의 시는 슬프다. '슬픔' 자체가 아니라 '슬픈 듯' 자신의 20대를 들여다보았던 첫 시집의 기본 정조가 '라멘타빌레(슬픈 듯이)'에 있었다면, 이번 시집은 더욱 치열하고 절실하게 '새로운 슬픔'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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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시인의 말 제1부 레시피 11 네 번째 슬픔 12 처럼 14 슬픔은 귀가 없다 16 빗방울 행진곡 18 무늬 20 수소문 21 비이 22 물의 가족 24 뼈인두를 달구다 26 사시나무 숲 28 연관검색어 29 흔적들 30 문(門) 32 달의 왼쪽 34 제2부 물의 길 37 물의 역사 38 영혼 접골원 40 부레옥잠의 말 42 환시(幻視) 44 물의 눈 46 물의 잠 47 물의 문(門) 48 섬 49 물의 표정 50 소금 박물관 52 테러리스트 54 귀환 56 개와 늑대의 시간 58 빙산 60 제3부 사슴뿔버섯 63 무소속 64 더 낡은 시계 66 노안(老眼) 68 희와 시 70 늙은 입덧 72 강철 엄마 73 달님 안녕 74 꽃들의 재활 76 날마다 생일 78 목련공작소 79 물의 꽃 80 발효의 역사 82 사랑의 문법 84 냉동 인간 86 해설 슬픔의 소리를 보고 듣고 만지다 / 오태호(문학평론가)

Description

슬픔의 소리를 보고 듣고 만지다 〈시인동네 시인선〉 047. “대박을 꿈꾸는 시에 퍼붓는 신랄한 야유”(최영철)를 날것의 감각으로 펼쳐놓았던 첫 시집 『일년 만에 쓴 시』(2002) 이후 13년 만에 펴내는, 노미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노미영의 시는 슬프다. ‘슬픔’ 자체가 아니라 ‘슬픈 듯’ 자신의 20대를 들여다보았던 첫 시집의 기본 정조가 “라멘타빌레(슬픈 듯이)”에 있었다면, 이번 시집은 더욱 치열하고 절실하게 ‘새로운 슬픔’을 노래한다. 「시인의 말」에 드러나듯 노미영 시인에게 시는 ‘헐벗음’과 ‘바닥의 아뜩함’ 속에서 찾아온다. 가장 낮고 누추한 곳에서 샘물이 고여 오듯 시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자신에게 다가온 “어두운 것들”을 채집하여 기록한 내용이 이번 시집이다.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풀어낸 “어두운 것들”의 기운이 다른 “어두운 것들”에게로 건너가 시인의 폐쇄적 고립감을 뚫고 교감 어린 ‘위안’이 되기를 고대한다. 시인이 진정으로 고대하는 ‘위안’은 ‘슬픔의 슬픔’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다른 슬픔들을 향한 입과 귀가 되어 다시 공명하는 것이다. 젖어 있는 슬픔 『슬픔은 귀가 없다』의 핵심 정조는 ‘슬픔’이다. 온통 ‘슬픔’으로 채워진 이 시집은 ‘슬픔의 뿌리’를 탐문한다. 노미영 시인의 슬픔은 젖어 있다. 슬픔이라는 물기에 촉촉이 적셔진 시인은 물기를 제거하고 싶지만 그것은 그리 간단히 해소될 일이 아니다. 슬픔의 생은 축축한 습기를 항상적으로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인에게 “슬픔과 물은 한몸이다”(「부레옥잠의 말」). 슬픔은 ‘물’과 한몸이 된다. 슬픔은 수분을 내장한 시인의 기억과 시간의 다면체로서 시인의 내부와 외면을 넘나들며 다양한 존재태로 자신의 몸을 변화한다. 하지만 물이 된 ‘슬픔의 몸’은 ‘빛깔과 향기와 맛’이 부재한다. 슬픔과 물은 한몸이다 빛깔이 없고 향기가 없고 맛이 없는 몸 휘몰아치면 하늘과 땅을 호령하는 것도, 오래 고여 있다 보면 시큼씁쓸해지는 것도, 입술이 부르튼 슬픔이 강둑에 앉아 잠시 목을 축인다 목이 마르다 닻도 키도 필요 없는 이 여행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부유물들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며 흐르다 보면 밑창은 저 하늘 멀리 물고기자리까지 흔들어 보이지 않는 것끼리, 어두운 것끼리 마음 포개고 숨을 고르면 부르르 떠오르는 영혼의 떡잎들 영혼에게도 우산은 필요하다 불어나는 슬픔을 걸러낼 수 없어 멍울처럼 퍼져 터지는 꽃잎들의 계이름을 받아쓰다 보면 향기로운 불행의 뒤태가 만져질 것 같아 물은 오늘도 헝클어진 머리칼을 빗고 또 빗으며 백야(白夜) 같은 슬픔의 뿌리들에게 입을 맞춘다 ―「부레옥잠의 말」 전문 물과 한몸이 되어 “입술이 부르튼 슬픔”은 강둑에 앉아 목을 축이지만 항상 “목이 마르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부유물들” 사이로 흐르는 ‘슬픔의 여정’은 “보이지 않는 것”과 “어두운 것”들의 마음을 포개어 “영혼의 떡잎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 이때 “불어나는 슬픔” 속에서 시인은 “향기로운 불행의 뒤태”를 만지고, 물은 “슬픔의 뿌리들에게 입을 맞추”며 한몸이 된다. 물에 젖은 슬픔을 내장한 시인이 보기에 “물에도 표정이 있다”(「물의 표정」). 물의 표정은 추상적 시간과 함께 시인의 개인사적 시간을 함께 비춰준다. 그러므로 시인은 임진강물을 따라가며 웃음을 회복한다. “저 강물도 물푸레나무 같은 햇살이 그리웠기” 때문에 “햇살을 따라다니며 그니의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햇살과 함께할 때 강물은 “웃으며 반짝거리”면서 “내처 바다의 울음주머니 쪽으로” 흘러든다. “강바닥에서 시간의 시신을 수습한” 시인은 “햇살의 더께를 떨어내며” “잘 마른 웃음”을 웃는다. 이때의 웃음은 울음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웃음이 아니다. 이 웃음 역시 ‘슬픔’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슬픔’이라는 수분으로 젖어들 “잘 마른 웃음”일 수밖에 없다. 말림과 젖어듦 사이에서 시인은 이렇게 간간이 혹은 자주 ‘말려진 웃음’을 웃어야 한다. 그래야 슬픔을 내장한 채 강물과 햇살을 따라 흘러갈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물의 껍데기들”(「소금 박물관」)이 말라붙어 간간해진 “부르튼 영혼들”을 염전에서 만난다. 시인에게 염전은 “물이 제 할 말을 자꾸 삼키다”가 “허연 뼈가 천지(天地)에 드러나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시인 역시 그렇게 자신의 내면에 똬리를 튼 채 부르터 있는 상처투성이의 영혼들을 말리면, ‘스님들의 사리’처럼 영롱한 ‘슬픔의 뼈’를 드러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인은 “비도 휘발한다는 것을 아는”(「테러리스트」) 존재다. 하지만 빗줄기들은 “영혼의 동맥을 옥죄는” 위험한 존재들이어서 결코 “화해할 수 없다.” 빗속에서 시인의 슬픔은 빗줄기의 공습으로 인해 테러를 당한다. 예기치 못한 빗줄기의 테러로 희생양이 된 시인은 비와 화해하지 못한 채 비를 매개로 슬픔을 호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인은 “꿈에서 꿈으로 휘어진” “빛의 고샅길”을 걸으며 “소나기의 식어가는 뒤꿈치에 하늘 언저리를 슬쩍 시침질”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희망이라는 산란(産卵)” 속에서 “물의 발화(發火)를 채집”(「물의 꽃」)하여 슬픔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견인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물이 불처럼 발화하여 증발되는 ‘물과 불의 역동적 만남’을 응시하면서 “빛이 슬어놓은 알을 서리하러/한 번도 만진 적 없는 희망의 흰자위를 밟으러 가”기 위해 이번 시집을 발간한 것이다. 소나기와 햇빛이 만나 만들어낸 ‘물의 발화(發火)’가 시인의 ‘발화(發話)’로 시화(詩化)되어 새로운 슬픔의 존재태로 ‘발화(發花)’되면서 지극한 슬픔을 견뎌낼 내공을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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