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대통령도, 한국 최고의 재벌도, 고위 공무원도
세금을 안 내는데
왜 당신은?
성실하게 납세하면 바보 되는 대한민국의 세태!
당신의 근로소득세가 아까운 이유를 말한다!
대한민국의 지도층을 안다면 절대로 정답을 바라지 말아라!
- 세금을 통해 본 대한민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1998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민주당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적절한 관계’ 의혹으로 한참 궁지에 몰려 있었지만, 결국 그 해 열린 중간선거에서 승리했다.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그 중 하나가 ‘아메리카와의 맹약’이라는 이름 아래 보수 정책 의제들을 이슈화해 당시 공화당의 스타로 떠올랐던 뉴트 깅그리치(Newt Gingrich) 하원의장의 탈세 사실 때문이었다. 그가 국세청으로부터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자 미국하원윤리위원회는 그에 대한 징계 권고안을 결의했다. 국세청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의원직을 사퇴해야 했고 사실상 정치권에서 추방됐다.
그렇다면 세금의 잣대로 본 한국의 정치권은 어떨까? 뇌물수수와 군형법상 반란 등의 혐의로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미납한 추징금 1,672억 원을 안 내면 곱게 안 낼 것이지, 추징시효 만료를 몇 달 앞두고 300만 원을 납부해 지켜보는 국민들을 우롱했다. 1원이라도 납부하면 3년씩 강제집행이 면제되는 것을 노린 것이다. 전씨는 29만 원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의 3남 1녀는 수백 억 원대의 자산가다. 손자, 손녀까지도 거액의 부동산 소유자다.
그런데 이렇게 추징금을 안 내고도 그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너무나도 훌륭히 받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그의 자택 주변을 가보라. 경찰 1개 중대가 주변에 좍 깔려 경호를 서고 출입을 엄중히 단속한다. 그가 일찌감치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주변 주차 구역에 대놓은 차를 빼달라는 경찰의 재촉이 여간 성가시지 않다.
전직 대통령까지 갈 필요도 없다. 현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자신들의 자녀들과 자신 및 부인인 김윤옥 씨의 운전기사까지 위장취업시켜 경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탈세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서울 강남권에 여러 채의 빌딩 등을 포함해 모두 수백 억 원대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0∼2002년 동안 사실상 세금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보험료를 월 1만 5000∼2만 3000원씩만 내기도 했다. 한 달 수입 100만~200만 원인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도 이 대통령보다는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낸다. 그 밖에 그는 지방세를 체납해 여섯 차례나 재산을 압류당했으며, 고용산재보험료를 미납해 강제추징당한 전력도 있다. 미국이라면 이 가운데 단 한 가지 사실만 드러나도 대통령은커녕 정치권에서 사실상 추방당할 텐데, 이런 사람이 대통령까지 되는 게 대한민국의 기막힌 현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대통령뿐이면 다행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인 신재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은 장관 임명 인사청문회에서 10억 원대의 부동산을 3년 이내에 팔고도 등기날짜를 맞춰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가 드러나 낙마했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미국시민권자인 딸이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았는데도 국내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도록 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전현직 정부의 장관들이나 정치인들이 부동산 투기 과정에서 벌어진 탈세나 건강보험료 등을 체납, 미납한 경우는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엄정한 처벌을 비켜갔다. 당장 진수희 장관만 해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세계 최대의 부자로 손꼽히는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부시 행정부가 실시하려던 기업의 법인세와 상속세 감세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밝히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세금 안 내려고 추잡한 짓 하지 말고 정당하게 돈 많이 벌어서 세금 많이 내세요. 그것이 ‘우리나라’ 미국을 사랑하는 것이고, 우리 기업인, 부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세금의 잣대에 대한민국의 재계도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롭지 못하다. 예를 들어, 2008년 특검 과정에서 4조5000억 원에 이르는 차명재산 보유 사실이 드러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단 한 푼의 상속세도 내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냈다면 최소 2조 원의 상속세를 내야 했지만,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돈이 넘쳐나서 주체도 못할 국내 최고 재벌이 뭐가 세금 안 내려고 얼마나 파렴치한 짓을 한 것인가. 그런가 하면 이 회장이 막대한 재산을 세금 한 푼 안 내고 이리 빼돌리고 저리 빼돌릴 동안 도대체 이 땅의 국세청과 금융감독원과 검찰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건희 회장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인식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수조 원대의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낸 세금은 달랑 증여세 16억 원이 전부다. 2010년 가을 잇따라 불거져 나오는 각종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과 탈세 의혹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일은 비단 삼성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천 억 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을 사고 있는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은 선친이 남긴 재산 가운데 태광산업 차명주식 18%를 공식 재산 목록에서 누락했다가 800억원 가량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2009년 12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차명재산을 관리하다 살인미수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 재무2팀장은 공판과정에서 “본인이 관리하던 차명재산이 수천 억원에 이른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 일이 있은 뒤 CJ그룹은 1,700억 원이 넘는 차명재산 관련 세금을 납부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일가도 임원들의 차명계좌 형태로 수백 억 원대의 비자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이미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또 신한금융그룹 경영층의 내분사태 와중에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차명계좌로 50억원을 보유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2009년 이후 굵직굵직한 사건만 언급해도 이 정도다. 그렇다고 비자금 규모가 모두 드러난 것도 아니니 비자금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부자가 덜 내는 대한민국 세금의 이중구조
간단한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예를 들어, 당신이 1년 동안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 결과 연봉 5,000만 원을 받았다고 치자. 그리고 당신의 고교 동창생 A는 같은 해 주식투자로 5,000만 원을 벌었다고 치자. 또 다른 당신의 고교 동창생 B는 그 해 2000년대 초반에 4억 원에 샀던 집을 8억 원에 팔아 무려 4억 원의 양도 차익을 남겼다. 이 경우 당신은 연간 수백 만 원의 근로소득세와 주민세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 비례해 A는 주식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약간의 증권거래세를 냈을 뿐 차익에 대해서는 단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B의 경우에도 1가구 1주택자로서 양도차익에 대해 단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열심히 일해서 번 근로소득에 대해서는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데 주식이나 주택을 팔아 생긴 차익, 즉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단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다면 납득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 같은 상상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이 땅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경제는 이 기본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세금의 이중 잣대는 한국 경제를 병들게 하고 있으며 엽기적이기까지하다. 지금의 세금 문제는 우리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식 세대, 즉 우리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지금 2,30대에게는 어떤 변변한 일자리도 마련해 주지 못했는데 그 다음 세대에게는 큰 부채를 남겨주게 생겼다.
이런 마당에 더 큰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 충격으로 납세자의 주력인 경제 활동 인구는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가운데 노령 인구의 급증으로 사회복지 지출 등의 비용은 급증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향후에 어떤 형태로든 통일될 경우 천문학적인 재정이 든다. 지금은 340조 원 가까이 쌓여 국가재정이 건전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