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

지그문트 바우만
4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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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들의 사회'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가 맺는 관계가 일시적, 한시적인 계약 관계이다. 그리고 인간은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벗어나 홀로 떠돌고 방황하는 유목민적 운명에 처한다. 공공의 문제를 공공의 장에서 이야기하는 일은 무의미해지고, 공적 책임과 윤리 역시 개인적이고도 사적인 문제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는 공적인 인간, 공적 사회, 공적 책임이 부재하는 '개인화 사회'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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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우리의 존재 방식 The Way We are 1. 노동의 흥망성쇠 2. 지역적 질서, 세계적 혼돈 3. 자유와 안정: 그 파란만장한 인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4. 근대와 명료성: 실패한 사랑 이야기 5. 내 동생이 내 책임입니까? 6. 다름으로 하나 되기 우리의 사고 방식 The Way We Think 7. 비평-사유화 그리고 무장해제 8. 진보: 같고 또 다름 9. 빈곤의 쓰임새 10. 교육: 실시되고 있는, 걸맞은, 그래도 해야 하는 11. 세계화하는 세계에서의 정체성 12. 믿음과 즉각적인 보상 우리의 행동 방식 The Way We Act 13. 사랑은 이성이 필요할까? 14. 개인의 도덕성, 부도덕한 세계 15. 두 개의 전투를 치르는 민주주의 16. 폭력, 어제와 오늘 17. 포스트모던 시대의 성(性)의 쓰임새 18. 불멸 이후의 삶은 존재하는가?

Description

불멸과 영원은 사라지고, 일시적인 단편들이 끊임없이 흩어져 이동하는 최초의 시대, 개인들의 사회 <우리>는 모두 개인이다. <나>는 홀로 불확실한 미래, 불시에 다가올 재앙 앞에 서있다. 직장, 자본, 세계, 정체성, 믿음 등 모든 것이 일시적인, 유동적인 관계만을 원한다. 사회는 더 이상 개인의 불운을 집단적으로 해결해주지 않는다. 해결해주겠다는 약속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우리를 떠돌게 하는가? 지금 우리는 <개인들의 사회>라는 최초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개인들의 사회>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가 맺는 관계가 일시적, 한시적인 계약 관계이다. 그리고 인간은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벗어나 홀로 떠돌고 방황하는 유목민적 운명에 처한다. 공공의 문제를 공공의 장에서 이야기하는 일은 무의미해지고, 공적 책임과 윤리 역시 개인적이고도 사적인 문제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는 공적인 인간, 공적 사회, 공적 책임이 부재하는 <개인화 사회>를 살고 있다. 이 책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 The Individualized Society』는 개인화 사회를 사는 우리의 사고방식, 존재방식, 행동방식 관한 바우만의 성찰이다. 1.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 - 노동, 세계화, 자유와 안정, 모호함, 다양성과 배타성 출렁이듯 움직이고 빠르게 변하는 ‘유동하는 근대’에서는 우리의 사는 방식과 행동, 정치·사회 구조, 사회문제도 함께 흔들린다. 바우만이 지적하는 첫 번째 문제는 노동문제다. 둘 간의 상호의존으로 자본과 노동의 결합이 강했던 ‘무거운 근대’를 지나 노동의 존재 양상은 달라졌다. 변화의 핵심은 ‘장기간’ 개념이 ‘단기간’의 개념으로 대체된 점이다. 노동이 단기 고용으로 바뀌고 미래에 대한 전망은 보장되기는커녕 확정적이지도 않고 단편적인 특성을 지닌다. 승진과 해고와 관련된 원칙들이 파기되거나 바뀌었다. 따라서 서로에 대한 충성심이나 헌신이 싹틀 기회가 없다. 포드식 평생 고용 같은 장기간 의존이 가능하지 않으므로 공존재(함께함/Togetherness)할 방법에 대한 지혜를 모으기 위한 비판은커녕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오늘날 ‘액체화’된, ‘유동적인’ 사회에 적합한 노동력은 분산된, 흩어진, 탈규제적인 ‘유연한 노동시장’의 형태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조직적인 저항을 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고분고분한 노동력을 말한다. 이러한 노동의 유연성 문제는 ‘세계화’라는 새로운 흐름, 권력이 자본 중심으로 재편성되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바우만은 ‘세계화’라고 명명된 ‘새로운 세계 무질서’에서 질서의 가치절하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세계화’된 세상에서 질서는 무력함과 종속의 지표가 되고, 새로운 세계 권력 구조는 이동성과 정착성, 우발성과 반복성, 제약의 희소성 등으로 유지된다. 지역사회에 대해 어떤 약속도 하지 않거나 약속을 쉽게 파기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얻은 이동의 자유는 오늘날 지역적 차원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에서 사람들을 계층화하는 주요 요인이다. 피에르 자네는 근대 개인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질병은 ‘자아의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그의 진단은 바우만이 진단하는 포스트모더니티의 병명과 닿아있다. 오늘날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자신들이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수준을 사회가 강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이상의 부재(不在)’이다. 여기서 오는 무력함과 무기력이 이 시대가 앓는 병명이다. 울리히 벡의 주장처럼, 우리가 사는 이 ‘위험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지배력을 확장하고 있는 ‘모호함’은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모호함은 현대를 발전시키는 과학과 기술이라는 두 바퀴가 잘 굴러가도록 만드는 윤활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인류의 진보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모호함이 야기한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의 자유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지만, 자유를 누리는 데서 오는 결과는 마음대로 피할 수 없다. 자유가 야기하는 결과를 타개해나가려면 모호함을 만들어내는 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시장은 모호함의 생명을 유지해주고 모호함은 시장의 생명을 유지해준다. 이 폐쇄적인 순환구조에 빠져나올 탈출구는 보이지 않지만, 순환구조를 개혁할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바우만은 복지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말한다. 과연 복지가 필요한가? 이제 복지는 폐기되거나 축소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근대 초창기에 복지 국가의 출현은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이었다. 복지란 빈곤층과 장애인들, 나태한 사람들을 언제라도 다시 산업역군이나 군인에 편입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노동의 유연성’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전통적으로 ‘실직자’라고 불렸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노동예비군’이 아니다. 사회에서 빈곤층은 소비자로서도 무용지물이다. 그들은 계급 밖의 계급, ‘사회체제’로부터 영구히 단절된 부류이자, 빈곤층, 하층민이다. 따라서 이들과 연대감을 느끼지 못하며 이들이 처한 곤궁한 처지에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하지 않는다. 바우만은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말을 인용해 복지의 윤리적 타당성을 옹호한다. 레비나스는 “내 동생이 내 책임입니까, 내가 알게 뭡니까?”라는 카인의 의문형 대답으로부터 모든 부도덕함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당연히 내 형제는 내 책임이다. 인간적이고 문명화된 사회에 복지국가가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윤리적인 이유뿐이다. 현재 사회에서 우리 삶은 불확실성, 예측 불가능성, 불안정성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특징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바우만은 첫 번째로 근대 사회의 특징이었던 질서화, 구조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현상을 든다. 이는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방법과 기술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보편적인 탈규제현상을 든다. 비합리적이고 도덕적으로 맹목적인 시장경쟁에는 경제적인 면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미지 산업을 통해 끊임없이 전달받는 메시지를 이야기한다. 세계는 본질적으로 불확정적이고 유동적이라는 메시지이다. 이러한 것들이 현대 사회의 불확실성의 측면들이며, 이는 불안감을 초래한다. 이러한 불안감은 새로운 개인의 자유, 새로운 개인의 책임을 얻은 대신 치러야 하는 대가이다. 이러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해결할 공동의 노력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의 개인들은 이 두려움과 불안감을 ‘새로운 이방인들’에게 집중한다. 국수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연구하는 필 코헨(Phil Cohen)의 주장을 따르면, 민족적이든 인종적이든 모든 외국인 혐오증, 이방인을 적으로 간주하고 개인이나 집단의 주권을 제한하고 경계를 만드는 모든 행위는 그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은유적 표현으로서 안전한 집이라는 이상적인 개념을 표방한다. 이방인에 대한 공포, 부족적인 호전성, 배타의 정치는 모두 자유와 안전의 양극화가 지속하는 데서 기인한다. 양극화는 우리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무력감과 불안감이 증가하게 하고 새로운 개인주의가 표방하는, 자기구현과 자기주장을 가능케 하는 진정한 자유가 실현되지 않음을 뜻한다. 현 상태가 이대로 계속되는 한, 정치의 부족화, 인종 청소, 인간이 함께 존재하는 지역은 자꾸 분할될 것이다. 2.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 -사유화, 진보, 빈곤의 새로운 역할, 교육과 정체성 찾기, 믿음과 보상 우리가 나아가는 길에는 끝이 있다는 환상, 이상향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근대 초기의 환상이 와해되었다. 또 다른 변화는 근대화 과제와 의무의 탈규제화, 사유화이다. 인류에게 집단적으로 주어진 과제가 쪼개져서(‘개인화되어’) 개인에게 할당되었고 개인이 자신의 담력과 체력 등 자기가 가진 재원을 총동원해 자력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다. 또 개인은 자신의 비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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