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시대의 ‘정상 인간’은 기획되고 만들어진다
역사 속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 톺아보기
현대 사회에서 시간 관리와 자기계발은 필수 덕목이다. 끊임없이 자기를 관리하는 인간형이 이 시대의 ‘정상 인간’형으로 인정받는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정상 인간’형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고 있다. 그런데 표준화된 ‘정상 인간’을 상정하는 이 사회는 과연 ‘정상’인가? 이 책은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에 의문을 가진다. 역사 속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변화해왔다. 과거에는 정상이던 것이 현재에 비정상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저자는 당대를 지배한 세력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이 나뉜다고 말한다. 국가와 자본으로 대표되는 지배세력은 사회를 원하는 대로 만들기 위해 ‘정상 인간’을 상정하고 그에 맞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실시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의 모습이, 일상의 풍경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장시간-저임금 노동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정상 인간 - 시대의 인간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자기계발의 시대, 시간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지금 이 시대가 상정하는 ‘정상 인간’형은 무엇인가?
시대마다 ‘정상 인간’의 모습은 다르다.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조국 근대화를 이룰 ‘근면한 근로자’가 ‘정상 인간’형이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은 어떨까? 시간 관리에 능숙한 ‘자기계발의 주체’, 이것이 이 시대가 상정하는 ‘정상 인간’형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시간을 관리하며 퇴근 후에도 학원을 다니거나 스터디를 하는 등 자기계발에 열중한다. 쉼과 여유를 누릴 시간은 없다.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대인 대부분이 불안·강박증에 시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왜 사람들은 시간을 관리하고 자기계발을 하려고 하는가? 우리는 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불안·강박증에 시달린다. 바꿔 말하면 이 시대가 만들어놓은 ‘정상 인간’형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려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상 인간’형은 누가 만드는가?
시간 관리와 자기계발은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들의 힘 관계에 따라 구성된 권력관계의 산물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경쟁’이 핵심이다. 개인 간, 기업 간, 국가 간에 경쟁에서 이기려면 사람들은 일터 외 일상에서도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도 아니면 일의 능률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와 자본은 시간 관리하는 인간형을 정상으로 만들고 자기계발이라는 주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 톨의 자유시간도 경쟁력을 드높이는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이것이 바로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다.
이 책은 역사 세력들이 오락·레저·스포츠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과 집단을 어떻게 특정한 인간형으로 만들어왔는지를 파헤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의 역사를 짚어본다. 특히 근대가 시작되는 시기,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시기, 신자유주의가 시작되는 시기마다 역사 세력들이 어떻게 개인과 집단을 개조해왔는지를 수많은 국내외 문헌을 참고하며 추적하고 있다. 이를테면 산업 질서와 맞지 않는 오락·레저·스포츠는 그것이 수백 년 동안 이어져왔던 전통이라고 해도 배제되었다. 산업자본은 동물싸움이 아닌 건전 오락을 장려했고, 독주가 아닌 맥주를 권장했다. 나치 정권은 국민체육, 국민차, 국민도로 같이 민족 정체성을 목표로 한 오락·레저·스포츠 프로그램을 대거 만들었다. 이는 박정희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여가시간이 지극히 부족한 신자유주의 시대 인간형은 행복과 사랑마저도 상품서비스에 의존하게 되었고 남은 시간에는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는 데 시간을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각 시대마다 ‘정상 인간’을 규정하는 세력들은 누구인가?
전작 《과로 사회》로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사회학자 김영선은 특정한 오락·레저·스포츠를 정상으로 내세우고 그렇지 않은 것을 비정상으로 내몰았던 일련의 프로젝트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지금 우리 시대에 전개되는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들을 비판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저자는 새로운 신자유주의 장치들이 장시간 노동이라는 비정상성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 비정상성을 해체하자고 말한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조차 우리의 것이 아니다.
권력이 기획한 여가의 통치,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
휴가 기간이 다가온다. 인터넷 창을 띄워서 각종 여행 상품을 둘러보고 예약한다. 제주도를 갈 수도 있고 동남아, 유럽으로 떠날 수도 있다. 주말에는 무엇을 할까? 피곤한데 집에서 TV나 볼까? 요즘 유행이라는 캠핑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각자 취향과 선호에 맞게 여가를 즐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가시간을 즐기는 이 모든 방법이 온전한 내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언제부터 여행을 즐겼는지, 영화가 없던 시대에 무슨 오락거리를 즐기며 여가를 보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상 인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일터 밖 여가 장면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사실 여행은 인류 보편적인 취미가 아니었다. 전통사회에서는 이동수단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귀족들이나 즐기는 취미였다. 19세기 중반, 증기기관차의 발명으로 교통혁명이 시작되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여행은 근현대 시대가 낳은 여가 모습인 셈이다. 반면 동물싸움과 몹 풋볼(돼지 오줌보 같은 공을 사용해 상대방 진영의 정해진 위치에 공을 갖다놓는 게임)은 근현대 시대에 사라진 여가의 한 장면이다. 영화관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각종 동물싸움을 즐겼다. 광장 주변이나 선술집 앞에서 ‘곰 곯리기(쇠사슬로 묶인 곰에게 개를 덤비게 하는 옛놀이)’, 투견, 투계 등이 벌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구경했다. 또 사람들은 몹 풋볼을 즐겼다. 정해진 규칙이 없을 뿐 현대 축구와 유사한,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 그러나 19세기 초반부터 이들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이면엔 산업자본의 계산이 있었다. 동물싸움이나 몹 풋볼을 공장에서 한창 노동해야 할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훼손하는 문제적 여가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물오락은 ‘동물 학대’로, 몹 풋볼은 ‘유혈 스포츠’라는 낙인을 찍어 비정상적인 것으로 사회에서 배제시킨 것이다.
국가 전체가 대대적으로 여가(통제) 프로그램을 실시한 경우도 있다. 1900년대 초반, 독일과 이탈리아는 오락·레저·스포츠 프로그램을 강건한 신체를 길러내는 것은 물론 정치적 충성심을 끌어내고 민족 정체성을 불러일으키는 탁월한 도구로 생각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각각 여가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기구를 만들어 콘서트, 도서관, 헬스클럽, 하이킹, 합창 등 다양한 여가 시설과 프로그램을 세우고 기획했다. 이를 통해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며 독재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
상식이 된 비정상성을 해체하자!
‘정상 인간 만들기’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사람들은 각종 캠페인이나 도덕을 앞세운 구호에 쉽게 순응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이 당대 지배세력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의문을 품어볼 수 있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진짜 정상적인 것일까? 비정상을 정상이라 여기며 살고 있진 않은가? 시간 관리와 자기계발에 시달리는 우리의 모습은 정상인가? 사람들은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 발전주의의 유물인 줄만 알았던 장시간-저임금 노동은 새로운 신자유주의 장치들이 비가시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