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나, 낙태했어

한국여성민우회
1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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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 사회는 ‘낙태’라는 주제에 대해 생명과 선택이라는 이분법의 감옥에 갇혀, 정작 당사자인 여성들의 인권은 외면해 왔다. 그러나 낙태는 단순히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넘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과 겹쳐질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몸이 너무 힘들어서, 육아에 대한 공포로, 주변의 강요로, 배우자에 대한 불신으로, 사회적인 낙인 때문에 낙태를 고민한다. 여성을 가해자의 입장으로 몰아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단정 짓기에는 낙태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또한 낙태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몸의 기억이므로, 관념적인 잣대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인터뷰에 응한 25명의 여성들에게는 낙태를 하는 25개가 넘는 다양한 사연이 있었지만, 누구나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은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전적으로 ‘맡겨야’ 하는 산부인과에서의 기억이었다.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심장 소리를 들려주고, 초음파 모니터를 보게 하는 등 의사와 간호사가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낙태를 경험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인터뷰를 통해 ‘피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단순히 조심하자는 차원을 넘어, 여성들이 ‘갑작스럽고, 강제적인 성관계’를 피임에 대한 고려도 없이 수용하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함께 아이를 만든 남성들이 낙태 결정 과정에서 취하는 태도와 행동은 여성들이 이후 ‘낙태’를 기억하고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과정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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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6 머리말 25명의 낙태에는 25개의 사연이 있다 12 민우회로 걸려온 전화, 떨리는 목소리 22 당신이 생각하는 ‘낙태’는 없다 : 그녀들의 이야기 24 25명의 그녀 26 그 선택의 ‘가혹함’에 대하여 | 낙태, 결정의 순간 52 어떤 하루 | 그날 그 산부인과에서 71 피임, 실천하기 | [왜]와 [어/떻/게] 사이에서 86 그 남자는 어디에 | 없거나 있거나 97 ‘죄책감’ 요구하는 사회 | 우리 이렇게 하자. 앞으로 이 일에 관한 얘기는 꺼내지 않기로 116 그 경험의 얼룩 | 낙태, 이후 139 나(만)의 경험을 넘어 | 자매애라는 세 글자 148 나에게 낙태는 이다 152 낙태, 자주 듣는 질문 몇 가지 154 자연 주기법도 했고, 질외사정을 했는데도 임신을 하게 됐어요. 158 낙태를 했습니다. 몸을 위해 뭘 챙겨야 하는 거죠? 161 이야기할 사람이 없습니다. 163 도움이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곳 164 낙태를 법으로 처벌해야 할까? 166 낙태 관련 통계 168 국내 낙태 관련 현행법 171 외국의 사례 178 맺음말 세상이 알아야 할 ‘낙태’

Description

도덕적 관념이 아닌 삶의 언어로 낙태를 이야기하다 이 책에 실린 인터뷰를 진행하며 우리가 지금 낙태할 ‘권리’를 말하는 것조차 너무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고작 낙태할 ‘권리’라니요. 수술대에 올려 주는 것을 권리라고 말해야 하는 암담함 말입니다. 낙태할 권리와 낙태하지 않을 권리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낙태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는, ‘생명과 선택’이라는 이분법의 감옥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여성의 경험과 이야기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낙태, 그녀들이 털어놓는 몸과 마음의 기억 나에게 낙태는 ( )이다 나에게 낙태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만약에 제가 또 임신을 하게 된다면 수술대에 올라가서 전신 마취 주사를 맞고 다리 벌리고 할 상황이 너무 끔찍해요. 되게 치욕스러운 경험이에요. 무슨 개구리 해부하듯이… 나에게 낙태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슬픔”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슬펐어. 근데 지금 이렇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엄마 돌아가신 것도 그렇고 언니도… 그렇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상쇄되어 가요. 그 슬픔이. 근데 아이에 대한 부분은 점점 커져요. 나에게 낙태는 “나의 일부”다 음… 어쨌든 지금의 나를 만든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고, 그 선택에 대해서 후회를 할 수도 있는 건데요. 그건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어쨌든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의지로 뭔가를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에게 낙태는 “낙인”이다 낙인이 두 가지 면이 있잖아요. 하나는 비난의 대상으로서의 찍히는 낙인이고, 하나는 찍혀 버린 자가 가질 수 있는 자유요. 고상한 사람보다 망나니가 세상을 막 살 수 있는 것처럼요. 내가 낙태를 계속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여자에 대해 그어 놓은 그런 고정 관념, 선들을 벗어난 데서 오는 자유요. 나에게 낙태는 “우울하게 만드는 기억”이다 정말 말 그대로예요. 유쾌하지 않죠. 유쾌할 리 없고요. 한없이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하는 거 같아요. 그때에 나는 왜 그 상황에 내가 놓이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했나 혹은 하지 않았나. 물론, 무기력하게 자기비판만 하는 건 아니고요. 나에게 낙태는 “어쨌든 보듬어야 할 기억”이다 공유할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내 경험을 읽고 해석해 줄 만한 현명한 사람이. 그러니까 그런 치유 책자를 만들어서 여학생들한테 줘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병원에서야 임신하고 출산하면 받는 책이 많지만 낙태하고 주는 책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몸조리를 어떻게 하라든지. 우울할 때 들으면 좋은 음악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났지만 보듬고 살아야 하는 어떤 기억인 거잖아요. 보다 건강하게 그 기억을 만들 수 있게끔 하는 작업이 하나도 없으니까.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한국 사회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약 20만 건 가량의 낙태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낙인과 법적 처벌로 인해 아직까지 정확한 실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진행한 낙태 경험자 인터뷰 과정에서도 불과 10명을 모으는 데 3주 가까운 시간이 걸릴 정도로 낙태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은 당사자에게 상당한 부담과 고통을 동반하는 작업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사회적인 금기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보기 드문 기획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낙태’라는 주제에 대해 생명과 선택이라는 이분법의 감옥에 갇혀, 정작 당사자인 여성들의 인권은 외면해 왔다.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와 아이를 낳을 권리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배제한 채 낙태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법으로 처벌하고 있을 뿐이다. 낙태는 단순히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넘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과 겹쳐질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몸이 너무 힘들어서, 육아에 대한 공포로, 주변의 강요로, 배우자에 대한 불신으로, 사회적인 낙인 때문에 낙태를 고민한다. 여성을 가해자의 입장으로 몰아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단정 짓기에는 낙태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또한 낙태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몸의 기억이므로, 관념적인 잣대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인터뷰에 응한 25명의 여성들에게는 낙태를 하는 25개가 넘는 다양한 사연이 있었지만, 누구나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은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전적으로 ‘맡겨야’ 하는 산부인과에서의 기억이었다.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심장 소리를 들려주고, 초음파 모니터를 보게 하는 등 의사와 간호사가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낙태를 경험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인터뷰를 통해 ‘피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단순히 조심하자는 차원을 넘어, 여성들이 ‘갑작스럽고, 강제적인 성관계’를 피임에 대한 고려도 없이 수용하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함께 아이를 만든 남성들이 낙태 결정 과정에서 취하는 태도와 행동은 여성들이 이후 ‘낙태’를 기억하고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과정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책에 실린 인터뷰를 읽다 보면 낙태를 고민하는 여성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당혹감과 내적으로 여러 감정이 갈등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파트너의 지지와 경험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하게 된다. 강요된 죄의식과 처벌 만능주의 1980년대 낙태가 불법이었던 루마니아 독재 정권 하에서는 수십 만 명의 여성들이 낙태 시술을 하다가 사망했다. 실화를 각색한 영화「더 월」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낙태가 불법화된 1950년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여성이 음성적인 시술을 받다가 사망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처럼 단순히 ‘처벌’로 낙태를 막겠다는 발상은 수많은 여성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고 있다. 실제 2012년에는 수능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한 여고생이 안전하지 못한 낙태 수술을 하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만일 이 여성이 10대이고 미혼이라는 이유로 임신 사실을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출산이나 ‘낙태’에 대해 누군가와 상담을 할 수 있었다면, 처벌과 낙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비밀스럽게 위험한 수술을 감행하지 않아도 되었다면 그녀는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낙태를 미혼 여성들의 성적 ‘문란’이 원인인 양 쉽게 치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전체 낙태율에서 기혼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60퍼센트에 달하고 있으며, 실제 낙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라는 사실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소득이 적어도, 미혼이어도, 장애아를 낳아도, 여아를 낳아도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인 토대를 마련하기에 앞서 정부는 ‘낙태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죄의식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낙태 이후에도 여성들은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아간다. 불과 몇 시간 후에는 배가 고프고 잠이 올 것이며, 학교에 가고 회사에서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낙태 이후 성관계, 피임, 임신 등 일련의 경험이 남긴 생각의 변화를 마주하기도 하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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