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지 이슈의 시대, 복지국가의 총체적 역사를 탐색하는 교양서
사회 양극화, 고용 불안정, 가족 구조의 변화 등을 배경으로 ‘복지/복지국가’ 담론이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다. 진보는 물론 일부 보수 진영까지 복지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복지 이슈가 정치권력 재편을 판가름하리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특히 국민 모두가 복지의 수혜자이자 부담자가 되는 ‘보편적 복지’ 개념이 주목받고 있으며, 최근 장하준 교수도 신간에서 ‘사회투자국가론’의 복지 담론을 비판하며 보편적 복지의 중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흔히 ‘빈곤층에 대한 국가의 시혜’로 인식되는 ‘복지’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복지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권리’이다), 개념의 차원을 넘어 제도 및 국가 시스템의 문제를 함축하는 ‘복지국가’의 의미와 중요성을 점검할 때이다.
노숙인과 부랑인 등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과 빈곤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정원오 교수(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의 신간《복지 국가》(비타 악티바|개념사 22)는 복지국가의 정의와 기원, 발전 단계, 제도와 유형, 위기와 전망까지의 총체적 역사를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그리고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난 객관적 태도로 차분하게 안내하는 입문서이다. 구체적 복지 영역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논리와 정책을 제시하는 몇몇 책 외에는 관련 도서가 드문 현실에서, 복지/복지국가의 의미와 역사를 짚어보고 비판 및 극복의 지점까지 탐색하는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적실한 논의로 나아가도록 하는 기본 교양서의 역할을 해줄 것이다.
2. 어떤 복지 국가가 될 것인가 ―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를 꿈꾸다
복지국가란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 활동, 즉 사회보장 정책을 통해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국가’이다. 정치 체제 측면에서 의회민주주의 국가이고, 이념의 측면에서 중도좌파 사민주의와 가깝다.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방식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국민 생활에 개입하는 특징이 있다. 그렇다면 복지 국가는 국민 생활에 어느 정도로 개입해야 하는가? 최저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정도인가, 아니면 평등한 수준 실현에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은 복지 국가인가? 초강대국 미국이 복지 후진국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복지 국가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첨예한 논쟁을 소개하는 이 책은, 대한민국은 복지국가의 초입에 들어선 상태라고 평가한다. 사회보장 제도의 종류와 다양성 측면에서 복지국가의 틀을 갖추었지만 질적 측면, 곧 사회보장을 위한 국가 재정 규모에서 미약한 수준(유럽 복지국가 평균 복지 지출의 32%, 영미형 복지 국가의 53%)이기 때문이다. 제도의 측면에서도 개선 과제를 안고 있는데, 저자는 국민 기초생활 대상자에서 벗어나는 빈곤 계층을 어떻게 제도의 보호 속으로 포괄할 것인가, 건강보험 제도의 급여 수준을 어떻게 높여나갈 것인가, 실업급여 대상자의 포괄 범위와 급여 수준을 어떻게 확대하고 높여나갈 것인가를 우리나라 사회보장 제도가 직면한 대표 과제로 꼽는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떤 모습의 복지국가로 발전해나갈 것인가이다. 지체된 복지국가로 불리는 미국 유형으로 갈 것인가, 발달된 복지국가로 평가받는 스웨덴 유형으로 갈 것인가, 탈상품화 수준이 낮고 불평등이 고착된 사회보장 형태로 갈 것인가, 탈상품화 수준이 높고 재분배 효과가 높은 사회보장 형태로 갈 것인가 등의 선택이 국가 차원에서 기다리고 있다. “21세기 한국의 과제는 품위 있는 근대국가의 완성이며, 이는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로의 발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3. 복지 국가란 무엇인가 ― 복지는 국가의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국민의 권리이다
복지국가는 어떤 경로를 거쳐 출현했으며, 기존의 국가와 어떻게 다른가? 이 책은 복지국가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국가의 형성·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미국의 정치사회학자 찰스 틸리의 논의를 빌려온다. 이 논의를 따르면 복지 국가는 원형국가 - 발전국가 - 민주국가 유형을 거쳐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이다.
공적 영역에서는 민주주의 원리가, 사적 영역에서는 자유주의 원리가 적용되던 민주국가와 달리, 복지국가에서는 사적 영역인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공적 영역의 원칙인 민주주의 원칙이 적용된다. 자유주의적 분배에 더하여 정치적 합의를 통한 재분배를 요구하는 것이다. 사회권 확대를 통해 반대자들을 포섭함으로써 체제 안정을 도모한 보수 정당·자본가 계급, 그리고 자본주의의 사회화 및 사회주의 실현을 꿈꾼 좌파 정당·노동자 계급, 양측이 정치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낸 정치와 경제 구조의 결합이 복지국가 체제인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복지국가의 등장은 국가의 정당화 방식을 변모시켰다. 즉 복지국가는 국가권력의 민주성에서 더 나아가 국민 생활의 안전을 보장하고 복지 급여를 제공해 국민의 복지를 보장함으로써 국가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여기서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 혜택은 국가의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국민의 권리라는 점이 중요하다. 일방적인 의무 관계였던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복지국가에 이르러 권리와 의무의 쌍방적 관계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적 민주주의는 민주국가에서 달성되지만, 실제적 민주주의는 복지국가에서 완성”된다.
4. 복지국가의 기원 ― ‘빈곤 없는’ 사회(영국)인가, ‘평등한’ 사회(스웨덴)인가
복지국가가 보편적으로 인식된 계기는 1945년 영국 노동당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보장 정책을 내세우면서부터이다. 당시 이 정책을 뒷받침한 것이 ‘베버리지 보고서’이다. ‘아동수당, 무료의료 시스템, 완전고용’을 통해 보편적 사회보험을 시행함으로써 빈곤을 타파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 보고서는 1942년 출간되어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그 실현을 약속한 노동당의 집권을 가져왔다. 앞에서 본 ‘의회민주주주의, 중도좌파 사민주의, 사회보장 정책’이라는 복지국가의 정의는 영국 복지국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확립된 것이다.
그러나 복지 국가의 진정한 기원은 1932년부터 복지국가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한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사민당의 장기집권이라는 정치적 기반 위에서, 이상적인 복지국가 체계에 가장 근접하고 사민주의 이념을 가장 잘 반영하는 복지국가 모델을 만들었다. 영국 복지국가의 목표가 빈곤 해소와 예방이라면, 스웨덴 복지국가는 불평등의 완화를 지향한다. 빈곤한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가장 소득이 낮은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국민 평균 생활수준과 격차가 크지 않은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다. 그래서 스웨덴 복지 체계에서는 사회보장 제도 외에도 다양한 사회 정책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스웨덴은 케인스의 일반 이론이 발표되기 전부터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추진했는데, 공공 일자리를 창출하는 노동시장 정책은 노동 시장에서 임금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연대임금 정책으로까지 확대된다. 연대임금 정책과 더불어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완전고용 정책, 위기 상황에서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보편적인 사회보장 정책이 스웨덴 복지국가 체제를 구축하는 세 기둥이다.
5. 사회보장 제도의 유형과 복지국가의 유형
복지국가의 사회보장 제도는 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수당, 사회복지 서비스의 네 유형으로 나뉜다. ‘공공부조’는 빈곤 계층을 선택해 복지 급여를 제공하는 선별주의적 복지 제도로서 효율적이지만 권리성이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사회보험’은 장래의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는 예방적 프로그램으로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보편주의적 복지 제도이며, 재원 규모나 급여액의 측면에서 복지국가에서 가장 주도적인 제도이다. ‘사회수당’은 아동 수당, 장애인 수당처럼 특정 인구 범주에게 무료 급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가장 권리성이 높은 프로그램이며, ‘사회복지 서비스’는 현금이 아닌 서비스 형태로 지원하는 사회복지 제도를 통칭한다.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