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 편집자의 책 소개
“사멸한 유토피아적 꿈의 세계, 그 잔해로부터 디스토피아의 음울한 판타지와 헤테로토피아의 현란한 유희가 출현한다”
여전히 디스토피아의 전시장이자 유토피아의 섬광인,
그러면서 점차 헤테로토피아의 미로가 되어가는 우리 시대 문학에 대한
섬세한 고찰과 치열한 사랑의 기록!
시인이자 평론가,『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명지대 문창과 교수 남진우의 평론집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되었다.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 이후 12년 만에 펴내는 평론집이라 그 반가움이 더하다. 책으로 묶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시와 소설로 나뉜 적잖은 두께의 두 권의 책이 증명하듯 남진우는 그동안 누구보다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해왔다. 또한 그의 비평의 시선은 단순히 동시대 작가에게만 머물지 않고 윤동주에서 김근의 시까지, 이청준에서 최제훈의 소설까지, 그리고 중국의 쑤퉁, 오스트레일리아의 마커스 주삭, 일본의 하루키를 아우르며 전 방위적으로 뻗어간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2000년대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의 한국문학의 흐름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짚어봐야 할 주요 작가와 작품 들의 지형적 위치를, 날카로운 지적 언어와 섬세한 감성 언어를 결합시키며 분석과 감동의 차원을 빚어내는 남진우 특유의 비평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헤테로토피아”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폐허에서 꿈꾸다』에는 총 다섯 부에 걸쳐 열여덟 편의 작가 혹은 작품론이 실렸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으로 시작된 한국 근대소설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국내적으로 정치적 민주화가 진척되고 국외적으로 현실사회주의 정권이 몰락하면서 유토피아의 도래는 필연성을 상실하고, 역사적 기획의 일종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 하여 상실감과 멜랑콜리로 채색된 유토피아적 상상력은 미래를 지향하는 대신 존재의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서사적 모험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근대가 부과하는 규율과 억압을 거부하고 진정한 자아나 소규모의 대안적 공동체를 찾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러한 회귀의 몸짓은, 거꾸로 뒤집힌 유토피아로서 문명 이전 단계의 단순하고 소박한 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닿아 있다. 에서는 이청준의 『서편제』 『인문주의자 무소작 씨의 종생기』, 박범신·김영하의 단편들, 김애란의 단편들을 분석하고 이렇듯 변형된 유토피아적 상상력이 드러나는 다양한 모습들을 다각도에서 짚어본다. 이어지는 에서는 박완서, 최인호, 황석영의 작품들을 통해 좌절된 유토피아의 흔적을 확인한다.
그렇다면 디스토피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유토피아의 다른 얼굴, 유토피아가 감추고 있는 다른 측면으로 공존했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은 신자유주의가 사회를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금 이곳을 첨예하게 되비춰주는 역상으로 기능하기에 이른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에서는 이청준의 『예언자』, 박범신의 『겨울강 하늬바람』, 임철우의 소설, 김영하의 『검은 꽃』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디스토피아로 나타나는 현시대의 악몽 같은 비전을 보여준다.
“유토피아의 상상력이 벽에 부딪치고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동어반복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새롭게 등장한 것이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이”라고 설파하는 저자는 “혼재향으로서 헤테로토피아는 상호이질적인 것들이 병렬 공존하는 세계로서 인간을 불확실상태에 방치한다. 거기선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이항대립마저 무화되며 선과 악, 현실과 허구, 자아와 타자, 존재와 부재의 이분법 역시 해체된다”고 덧붙인다. 이러한 헤테로토피아의 공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허구적 구축물인 문학이라는 것. 빠르게 한국문학의 중심부를 파고든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은 <제4부 헤테로토피아를 향하여>에서 다룬 천운영, 편혜영, 황정은, 최제훈의 작품을 통해 섬세하게 고찰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제5부 저 너머의 문학>에서는 쑤퉁의 『눈물』,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 하루키의 『1Q84』에 대한 깊이 있는 비평이 펼쳐진다.
뛰어난 통찰력으로 이 한 권 안에 우리 문학 전반의 흐름을 담아낸 남진우는 “세기말을 거쳐 21세기로 진입한 지금까지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은 점차 제한되고 감소되어왔”으며, “사멸한 유토피아적 꿈의 세계, 그 잔해로부터 디스토피아의 음울한 판타지와 헤테로피아의 현란한 유희가 출현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진단은 이 휘황찬란한 거대도시의 폐허에서 아직도 다른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증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진우는 그 사람들의 꿈의 조각들을 들어올려, 여기 이 한 권의 책 속에 우리 문학의 미래의 그림을 새로이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