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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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내가 문학에 ‘입덕’하는 날이 올 줄이야.”(vol***) “대체 어떻게 이런 재미난 상상을 하시는 거죠?”(bky***) “아 역시 정세랑 작가님이다. 이 말을 몇번이나 뱉었는지 모른다.”(sowo****) “우리에겐 이런 작가가 필요하다.”(filli****) 창비장편소설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가 정세랑 8년 만의 첫번째 소설집! 신선하고 경쾌한 상상력, 다정한 문장이 주는 ‘정확한’ 위로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정세랑이 작품활동 8년 만에 첫번째 소설집을 선보인다. 발표 당시 파격적인 형식과 지금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SNS상에서 화제를 모았던 「웨딩드레스 44」를 비롯해 총 아홉편의 작품을 묶은 이번 소설집은 “강력한 가독성과 흡인력으로 이 사회의 연대 의지를 되살리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던 전작 『피프티 피플』의 묵직한 메시지와,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작가가 밝혔던 『보건교사 안은영』의 경쾌한 상상력 등 정세랑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기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정세랑 월드’의 시작점이자 정수라 할 수 있다. 정세랑을 통과하면 어떤 이야기도 반짝거리게 되어 있다는 걸 이번 책에서 또한 여실히 증명해낸다. 신선한 상상력과 다정한 문장으로 정확한 위로를 건네는 작가 정세랑의 이번 소설집은 또한 화제의 웹툰 『며느라기』로 수많은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수신지 작가가 표지 일러스트를 맡아 더욱더 눈길을 끈다. 내가 남긴 자리에 앉은 당신에 대한 염려, 그런 마음이 만들어낸 단단한 연대의 이야기 표제작 「옥상에서 만나요」는 직장에서 부조리한 노동과 성희롱에 시달리며 늘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나’가 회사 언니들의 주술비급서를 물려받고서 마침내 절망에서 빠져나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 표면에는 주술비급서가 있지만 ‘나’를 버티게 한 힘은 사실 “다정하게 머리를 안쪽으로 기울이고 엉킨 실 같은 매일매일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함께 고민해주었”던 사람들,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않게 막아준 언니들인 셈이다. 해서 ‘나’는 “내 후임으로 왔다는 너”를 염려하며 ‘너’가 “나와 내 언니들의 이야기를” 발견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남긴 자리에 앉은 누군가에 대한 염려는 그 마음만으로 단단한 연대의 힘을 만들어낸다. 같은 드레스로 연결된 44명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 「웨딩드레스 44」는 한벌의 드레스를 빌려 입고 결혼한 혹은 결혼할 여성들의 이야기를 44개의 짧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담아냈다. 낭만적 신화가 아닌 제도로서의 결혼을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 작품에는 다양한 여성 서사가 등장하는데, 특히 이 드레스를 마지막으로 입은 여성이 고등학생들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할 때쯤에는, 혹은 하지 않을 때쯤에는 과연 어떤 풍경이 그려질 것인가. 정세랑은 이처럼 다양한 여성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이러한 동시대성을 정세랑만큼 독특한 감수성으로 보여주는 작가는 단연코 없을 것이다. 이혼한 뒤 집 안의 물건을 모두 처분하는 ‘이혼 세일’을 열게 된 ‘이재’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혼 세일」에는 “40대가…… 50대가 보이질 않아. 선배들 다 어디로 사라졌지?” 물으며 여성으로서 느끼는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있고, “다른 사람들의 삶은 근사하고 자신만 지옥에 버려진 듯한” 기분 속에서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보는 목소리도 있다. 「효진」의 주인공 효진은 “어둡게 끈적이는 어떤 것”으로부터 도망쳐온 인물이다. 효도 효, 다할 진이라는 이름대로 살라고 강요하는 아버지로부터, 가난해서 자기를 떠났다고 생각하는 열등감 가득한 전 애인으로부터 도망치고 또 도망친다. 예고된 불행에 맞서는 인물이 아니라 도망치라고 말할 뿐인 효진의 목소리는 지금-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상한 용기를 불어넣는다. 혹시 나의 특장은 도망치는 능력이 아닐까? 누구나 타고나게 잘하는 일은 다르잖아. 그게 내 경우에 도주 능력인 거지. 참 잘 도망치는 사람인 거야. 상황이 너무 나빠지기 전에, 다치기 전에,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도망치는 사람.(62면) 적당히 차가운 곳으로 도망쳐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거기서 얻는 것들은 분명히 있어.(64면) 과로로 돌연사한 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으로 친구들과 ‘돌연사맵’을 만드는 「보늬」와, 한국으로 유학을 온 이스마일이 과자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과자 귀를 갖게 된 이야기 「해키 쿠키 이어」는 전작 『피프티 피플』을 떠오르게 한다. 단지 일을 했을 뿐인데 사망한 사람들,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부조리를 고발했다 해고된 사람들, 이들이 불행을 딛고 다음 세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작가는 끊임없이 고민해오고 있었다. 한편 곶감을 먹으면 죽는다는 뱀파이어가 되고 만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원히 77 사이즈」, ‘은열’이라는 여성 인물을 상상하여 전근대 한일관계사 속에 놓아둔 「알다시피, 은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 나라가 화살편지로 인해 오해를 쌓아가는 「이마와 모래」는 작가가 얼마나 다양한 상상력을 자유롭게 풀어놓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옥상에서 만나요」에는 절망을 빨아들이는 ‘남편’이 나온다. 그는 절망을 밥처럼 먹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그의 앞에 데려다놓는다. 그 면면도 다양하다. “뇌종양 수술 후 후각을 잃은 요리사” “험악한 이웃과 마찰을 겪은 캣맘” “텔레마케터” “20년 넘게 키운 앵무새가 죽은 사람” “극우 국회의원의 딸” 등, 작가는 직업과 상황만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상상하게 만든다. 정세랑은 한 인터뷰에서 “선한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던바, 평범한 사람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얼굴을 가진 우리들의 이름을 한명 한명 호명하는 작업을 이처럼 계속해나가고 있다. 정세랑만의 각도와 빛깔을 가진 새로운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한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많은 일들을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살아 있는 것들을 보듬는 그 애정 어린 손길을 믿고 싶어진다. 그 애정이 바로 정세랑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명랑’일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작가가 필요하다. 그만의 애정과 강인함이 모두에게 전염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