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30대 독신남의 전셋집 개조 프로젝트 『숨고 싶은 집』 제아무리 집 짓기 열풍이라도 30대 1인 가구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이다. 일단 집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숨고 싶은 집: 우연수집가의 혼자 사는 전셋집 고쳐 살기』(이하 『숨고 싶은 집』)은 30대 독신인 우연수집가의 전셋집 개조 프로젝트를 담은 책이다. 집을 지을 수는 없지만 허름한 집을 얻을 수는 있으니 그 집을 새집처럼 꾸민 것이다. 저자는 평소 갖고 있던 집에 대한 로망(벽면을 채우는 스크린, 무지하게 넓은 책상, 손 가는 대로 붓질 해서 만든 그림 벽까지)을 유감없이 실현해서 이미 많은 블로거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저자도 페인트붓을 들기 전까지 온라인광고 회사에 다니는 착실하고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다 프로젝트니 클라이언트니 하는 것에서 더 이상 설렘을 느끼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일단 물리적 환경을 바꿔서 슬럼프에서 벗어나보기로 했다. 작정하고 한남동 재개발지역에 전셋집을 얻었다. 집주인이 마음껏 고쳐도 좋다고 한 약속이 제일 큰 이유였다. 1년여에 걸쳐 집을 고치는 동안 그는 잊고 있던 꿈과 재능을 발견했다. 그래서 중간에 회사생활도 접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기 시작한다. 『숨고 싶은 집』은 30대 독신 남자가 집을 고치면서 ‘일상을 예술화하기’라는 자신의 모토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의 스타일을 따라하다 보면, 마음속에 있던 꿈이 어떤 식으로든 고개를 디밀어 읽는 이에게 자극을 줄 것이다. 집에 대해 갖고 있던 모든 로망, 그리고 자신의 꿈을 담았다 천장 몰딩, 장판 깔기, 벽 전체를 스크린으로 만들기……. 『숨고 싶은 집』에 등장하는 작업은 스케일이 큰 편이다. 대신 그만큼 변화의 폭도 크다. 인테리어 초보라고 겁낼 필요는 없다. 저자 역시 벽에 못 한번 박아본 적이 없는 소극적인 세입자였으니 말이다. 우연수집가는 또래의 다른 이들처럼 집에 취향을 온전히 반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일상을 예술화하고 창의적인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적이 생기자 2년이라도 제대로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새로 얻은 한남동 집에는 평소에 갖고 있던 집에 대한 로망을 거침없이 실현했다. 엄한 부모님 때문에 마음 놓고 보지 못하던 텔레비전을 큰 화면으로 보고 싶어 침실의 한쪽 벽면을 아예 스크린으로 만들었다. 만만치 않은 가격도 문제고 이사 다닐 때 운반하기도 어려워 번번이 포기했던 초대형 책상은 이참에 직접 만들었다. 이 집에 담긴 건 저자의 로망뿐이 아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구석도 눈에 띈다. 8인용 식탁도 그중 하나다. 그는 사람들과 더 많은 교류를 하고 관계를 확장해나가고 싶어 나무를 주문해 직접 식탁을 만들었다. 식탁은 운반이 쉽도록 만들어서 마당이 라일락이 한창일 때 핑계 김에 식탁을 마당으로 옮겨 파티도 열었다. 마당에 딸린 작은 텃밭에는 채소를 심었다. 푸성귀를 거두니 그 마저도 파티를 열 핑계가 되었다. 작업실에는 특히 공을 들였다. 앞으로 벌일 영상작업이나 소품사업이 이루어질 곳이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 손쉽게 잡아챌 수 있게 문을 아예 칠판처럼 만들었고, 조명 하나마저도 평범한 것이 싫어 자전거 바퀴 조명을 만들어 걸었다. 우연수집가는 집에 현실만을 담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꿈, 상상만 하던 그림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우연수집가의 집과 글에 열광하는 블로거들은 이런 점에 더더욱 열광했는지도 모른다. 집을 고치면서 집 밖에서의 삶을 모색하다 우연수집가가 고친 것은 집이지만 집을 단순히 아름답게 고친다는 명제를 넘어서 집 밖의 사람들, 즉 이웃, 친구, 동료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1년 동안의 리모델링 기간 동안 종종 눈을 밖으로 돌려 작은 이벤트를 꾸미기도 했다. 시공 매뉴얼 사이사이에는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자투리 목재로 우체통을 만들어 이웃에게 선물한 이야기이다. 몇 가구가 모여 사는데 우체통은 하나밖에 없어 뒤죽박죽 우편물이 섞이는 게 신경이 쓰인 저자는 우체통을 만들어 몰래 달아주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만들기’에는 신기한 구석이 있다. 남의 것까지 산다고 하면 나도 엄청 손해라는 생각이 들고 사람들도 왜 그런 짓을 하냐고 할 것이다. 그런데 남의 것까지 만든다고 하면 나 스스로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 모두 좋은 일 한다고 말한다. 노동과 시간까지 생각하면 비용은 더 드는데 말이다.” 93p 결과는 의외로 싱거웠다. 102호 할아버지 한 분만이 알은 체를 해주셨을 뿐, 다른 이웃들은 우체통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면 또 어떠랴. 저자는 자신에게 “잘했어요.”라고 칭찬을 건넨다. 마당에서 키운 해바라기 씨를 거두었을 때는 블로그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그냥 신청 받아서 우편으로 보내는 건 재미없으니 보물찾기 형식을 빌렸다. ‘한남동 버뮤다 삼각지대’라고 명명한 한남 나들목에 해바라기 씨와 캐러멜을 담은 봉투를 숨겨놓고 블로그에 공지를 했다. 블로그 독자들은 순식간에 봉투를 가져갔고, 어떤 사람은 저자에게 초콜릿이 담긴 봉투를 남기기도 했다. 이렇듯 『숨고 싶은 집』은 은둔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집이 아니다. 그보다는 남들이 말하는 ‘좋은 삶’을 흉내 내느라 지친 사람을 위한 집, 잠시 숨어 숨을 고를 수 있는 집, 결국에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 집이다. 우연수집가는 집에 숨어 꼼지락거리기도 하고 사람들을 불러 왁자지껄 떠들기도 하면서 우연히 찾아온 행복을 수집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