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음식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음식이 안내하는 도시 문제 해법의 길 광우병, 멜라민 파동, 이물질이 들어간 공산 식품 등의 식품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책임자가 처벌되고, 감시 시스템이 정비되지만 문제는 끊이지 않고 되풀이된다. 왜일까? 이 책의 저자, 캐롤린 스틸은 한마디로 음식이 현대 문명이 처한 모순의 핵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신의 재기 넘치는 건축가이자 ‘세계 지식인의 유희’ TEDGlobal 2009의 연사이기도 저자는 런던경제대학 도시디자인팀을 이끌던 경험에서 음식이 바로 도시 문제 해법의 열쇠임을 깨닫고 7년의 연구?조사 끝에 이 책을 세상에 내놨다. 이 책은 지금 도시가 어떻게 먹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고대 근동에서 유럽?미국을 거쳐 오늘날의 중국에 이르기까지 음식을 통해 나타나는 도시문명의 주요 경로와, 음식이 땅과 바다에서 도시로, 시장과 슈퍼마켓을 거쳐 주방?식탁?쓰레기장 그리고 다시 땅과 바다로 돌아가는 과정을 씨실과 날실로 엮는다. 이를 통해 도시의 운명은 바로 도시가 먹는 것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실감나게 전달하고, ‘슬로푸드 시티’, 쿠바의 ‘오르가노포니코’처럼 성과를 거두고 있는 대안들을 제시한다. 전 세계 식량과 에너지의 75%를 소비하고 있는 도시는 앞으로 30억 명의 인구를 더 수용해야 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찾지 않으면 우리는 곧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음식이란 프레임이 우리의 삶에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우리의 식량안보는 백척간두에 서 있다 음식이 전 세계 생산지에서 출발해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기적에는 커다란 대가가 따른다. 곡식을 얻기 위해서는 매년 1900만 헥타르의 열대우림을 쓰러뜨려야 하고, 고기를 얻기 위해 사람 10명이 먹을 곡물로 소 한 마리를 먹어야 하며, 채소를 얻기 위해 인공위성으로도 보일 만큼 거대한 비닐하우스 농장에 수자원을 고갈시킬 정도로 물을 대야 한다. 또 1칼로리의 식품을 얻는 데 10칼로리를 소모하며, 전 세계 인구 중 10억은 비만인데 반해 10억은 굶주리는 말도 안 되는 일에 눈감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식품의 공급이 몇 개의 거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전 세계 식품 거래의 80%를 5개의 다국적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이것은 전대미문의 무서운 현상이다. 일상 식품의 대부분을 그 생산은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닌 먼 곳에, 그 공급은 극소수의 세력에 의지하고 있으며, 최첨단 초고속식품망만 믿고 식량을 전혀 비축하지 않고 있는 우리의 삶은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음식은 도시를 만들고 무너뜨린다 음식은 인류가 탄생했던 때부터 줄곧 도시의 운명을 결정해 왔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뛰어난 관개시설로 문명을 꽃피웠던 수메르의 도시들은 토양 고갈에서 비롯된 영양실조로 막을 내렸다. 로마는 제국의 식욕을 충족하기 위해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다가 결국 내부로부터 파열했고, 구체제의 파리는 곡물경찰을 통해 프랑스 전역의 식량을 무리하게 파리 중심으로 통제하려다가 민심을 잃어 프랑스혁명으로 무너졌다. 산업화에도 음식이 큰 역할을 했다. 공장 노동자들이 하루를 버티려면 옥탄가가 높은 육류가 필요했는데, 곡물의 대량생산과 육류 가공법 개발로 미국은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육류를 싼값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전 세계의 산업화가 더 빨리 이뤄질 수 있었다. 미국의 농업은 애초부터 기업적인 성격이 강했다. 드넓은 토지와 단일 작물 농법의 결합은 대량생산으로 이어졌고 여기에 유럽의 수많은 문화가 섞여서 탄생한 것이 바로 햄버거다. 다양한 이민자들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고기와 소금과 지방과 설탕만으로 만들어진 햄버거는 미국을 음식 문화가 빈곤한 비만의 제국으로 만들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문화가 모인 미국에서 최악의 음식이 탄생한 것이다. 민주주의와 음식의 관계 그러나 이는 그나마 겉으로 드러난 문제들이다. 음식이 쥐고 있는 중요한 열쇠는 사실 안 보이는 것에 있다. 그것은 공공장소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음식을 요리해 사람들을 초대하고, 자기만의 요리법과 맛있는 요리를 이웃과 나누며, 주인과 손님 사이에 형성된 신뢰를 바탕으로 마음 놓고 아이에게 심부름을 보내고 걱정 없이 외상을 주는 골목의 채소 가게가 있는 동네. 지역민이 자연스레 연대의식과 소속감을 가져 스스로 자경단원의 역할을 하는 이런 도시 공동체는 음식이 없다면 꿈도 못 꿀 일이다. 요즘엔 동네에서 이런 식품점이 없어져도, 요리를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슈퍼마켓의 독점력을 키운다. 슈퍼마켓은 ‘바닥을 향한 피 튀기는 경쟁’의 책임을 고스란히 떠넘겨 농부들을 파산으로 몰고, 판매 식품의 종수를 극도로 줄여 식품 다양성을 죽이며, 외양으로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멀쩡한 식품을 쓰레기로 만든다. 그러나 슈퍼마켓의 가장 무서운 점은 시장과는 달리 ‘타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점점 더 많은 공간이 슈퍼마켓화하고 있는 지금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타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도시에서 개인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묻지 마 살인’과 같은 범죄의 증가로 사회가 살벌해지는 것은 물론, 사회 공론의 장을 그 운영의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것이다. 음식, 가장 현실적인 프레임 푸드마일, 비만의 유행, 도시화, 슈퍼마켓의 힘, 에너지 문제, 기후변화. 현대 문명의 모순을 드러내는 이 모든 문제의 해답을 구하는 데 있어 음식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음식이란 프레임으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계획한다면 ‘생태’나 ‘녹색’이라는 말이 상품을 장식하는 라벨로 전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의 동탄은 세계 최초의 ‘에코도시’로 건설되고 있다. 일터와 집의 동일 구역화, 녹색에너지동력원, 하수를 이용한 농업공장, 쓰레기제로 순환 시스템, 빗물 활용도와 단열 효과를 높이기 위한 초록지붕 등 현재 동원할 수 있는 ‘친환경’ 아이디어들이 총동원되어 디자인된 동탄은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도시들과 같은 식품공급망에 의지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도시를 통제하는 정치적이고, 사회경제적인 구조를 해결해 도시가 모든 것과 연결되는 유기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다면 도시의 형태는 생태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유토피아, 실낙원, 전원도시 등을 통해 도시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했던 아이디어들이 실패한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식을 연결고리로 삼으면 이 실패한 아이디어들에서 살아 있는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영감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제적 고립을 식량 자립의 기회로 삼아 성공을 거둔 쿠바의 도시 농업 ‘오르가노포니코’, 하수를 이용해 하수도를 정화하고 퇴비를 확보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하수농장’, 지역식품망을 강화하고 주민들에게 요리와 채소재배 기술을 교육하며 도시 내 채소밭을 더 많이 확보하는 아일랜드의 활동 계획 ‘에너지감소사업계획’. 이 모든 프로젝트들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이유는 음식을 그 중심에 놓았기 때문이다. 음식만큼 우리의 생존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문제들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프레임도 없다. 건강하게 먹기 위한 노력만으로 우리는 독점자본을 견제할 수 있고, 잃어버린 연대의식을 되찾을 수 있고, 서로 믿고 사는 사회를 회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