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신 없는 세상의 순례자가 되어
희미한 시대에 바치는 기도문
■ 사라짐을 응시하기
창밖에서 메케한 연기가 들어오고 있다
(……)
아직은 무너진 것들의 속이 비어 있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교회는 오래도록 불탔다
마을엔
말라붙은 유기물이 남았고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에서
원래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것. 그것들은 전부 어디로 사라졌을까? 부재에 관한 실존적 질문은 이 시집에서 거꾸로 뒤집힌다. 사라진 것들이야말로 이 세상을 이루고 있다고. 시집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무언가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그리고 우리는 아주 멀리서만 그것을 목격할 수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라짐을 응시하는 일은 과거를 사후적으로 발명하는 일과 비슷하다. 누군가가 버려둔 소파를 보면서 그곳에 앉았던 사람을 상상하듯이. 공룡의 발자국을 보고 그의 이동 경로를 짐작하듯이. 이 시집은 “흘러간 곳에서 두고 온 것을 찾는” 시선을 통해 이 세계를 부재의 증상으로 현상시킨다.
■ 불투명한 꿈속의 말장난
오늘 밤에도 그 택시를 탈지 모르지. 집 앞에 강이 흐르고 있는데 그곳을 어떻게 건넜을까. 강가에 미색 돌들이 빛나고 있어. 창밖 연기가 생생해. 누구도 끄지 않는 불. 잠들어 있을 거야. 그 안온한 시간 동안. 택시를 타고 어딘가로 갈 때까지. 모든 것이 타기 전에 다시 어딘가로. 강의 깊은 곳으로.
―「어느 낮처럼 선명하게 보일 것이라고」에서
박다래 시의 화자들은 사건의 한복판이 아닌 현장에 남은 흔적에 등장한다. 무언가가 없어져 버린 ‘사건’에는 연루되지 못하면서 그것이 종결되고 남은 흔적에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어딘가에 몰두해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이곳저곳을 이동하면서 목격하는 것은 박물관에 박제된 바다악어의 시체, 타고 남은 유기물뿐이다. 그들에겐 성취해야 할 목적도, 달성해야 할 단계도 없다. 이는 구원을 기대하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연기처럼 퍼져 있는 부조리함의 감각이다. ‘선명한 낮’의 시대가 끝나고 불투명한 꿈의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구원은 신의 강인한 음성이 아닌 말장난과 같은 우연에서 촉발된다. ‘지나’를 ‘진아’나 ‘진하’로 부르는 것처럼. 시인은 원인과 결과 사이, 언어와 의미 사이, 믿음과 신성 사이의 틈새를 벌리며 이 세대만의 기도문을 작성하는 중이다. 우엉차는 우엉, 하고 우는 사람에게 좋다는 농담 같은 진담을 곁들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