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된 공동체

베네딕트 앤더슨
3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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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이들조차 ‘민족’은 근대 이후 역사적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상상된 공동체”라는 앤더슨의 핵심 주장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만큼, 이 책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2016년 런던정경대(LSE)의 한 연구자가 구글 학술검색 서비스를 활용해 가장 많이 인용된 사회과학도서의 순위를 집계한 바에 따르면, 『상상된 공동체』는 총 64,167회 인용되었으며, 이는 전체 사회과학도서 인용 순위 중 다섯 번째였다. 이번에 새롭게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번역은 앤더슨의 또 다른 주요 저술인 『세 깃발 아래서: 아나키즘과 반식민주의적 상상력』을 번역 출간했으며, 앤더슨과 마찬가지로 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정치를 연구하고 있는 서지원이 번역했다. 앤더슨은 10여 개 언어의 탁월한 구사력, 동남아시아학에 대한 정통한 학문적 역량을 바탕으로 유럽만이 아니라 그 식민지들 및 다른 국가들의 경험까지 섭렵하고 있고, 그 국가들의 정치와 더불어 문학 또한 전거로 활용하는 탓에 그 글을 번역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이를 한국어로 옮기기 위해 옮긴이는 직접 지은이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번역을 다듬었다. 이제야말로 이 사회과학 고전을 제대로 읽을 기회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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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감사의 말 제2판 서문 제1장 서론 제2장 문화적 뿌리들 제3장 민족의식의 기원 제4장 크리올 선구자들 제5장 오래된 언어, 새로운 모델 제6장 관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제7장 마지막 물결 제8장 애국주의와 인종주의 제9장 역사의 천사 제10장 센서스, 지도, 박물관 제11장 기억과 망각 여행과교통:『 상상된공동체』의지리적전기에관하여 참고 문헌 옮긴이 해제 찾아보기

Description

민족 및 민족주의 연구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 현대의 고전 민족은 상상되었다 제한적인 것으로, 주권을 가진 것으로, 그리고 공동체로 1983년 출간 이래 세계 수십 개국에서 25만 부가 넘게 판매되며(2006년 기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한국어판을 도서출판 길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내놓는다.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이들조차 ‘민족’은 근대 이후 역사적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상상된 공동체”라는 앤더슨의 핵심 주장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만큼, 이 책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2016년 런던정경대(LSE)의 한 연구자가 구글 학술검색 서비스를 활용해 가장 많이 인용된 사회과학도서의 순위를 집계한 바에 따르면, 『상상된 공동체』는 총 64,167회 인용되었으며, 이는 전체 사회과학도서 인용 순위 중 다섯 번째였다.(Elliott Green, 2018년 6월 현재까지의 통계는 88,813회 인용) 이번에 새롭게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번역은 앤더슨의 또 다른 주요 저술인 『세 깃발 아래서: 아나키즘과 반식민주의적 상상력』(2009, 도서출판 길)을 번역 출간했으며, 앤더슨과 마찬가지로 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정치를 연구하고 있는 서지원의 것이다. 앤더슨은 10여 개 언어의 탁월한 구사력, 동남아시아학에 대한 정통한 학문적 역량을 바탕으로 유럽만이 아니라 그 식민지들 및 다른 국가들의 경험까지 섭렵하고 있고, 그 국가들의 정치와 더불어 문학 또한 전거로 활용하는 탓에 그 글을 번역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이를 한국어로 옮기기 위해 옮긴이는 직접 지은이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번역을 다듬었다. 이제야말로 이 사회과학 고전을 제대로 읽을 기회를 얻은 것이다. 수평적-세속적이며 시간에 가로놓인 새로운 종류의 공동체 ‘민족’ 민족은 어떻게 “아득한 과거로부터 불거져 나와 무한한 미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 되었는가. 조상으로 연결되고 후손으로 이어지며 영원의 힘을 가진 듯 보이는 민족의 힘은 마술적이다. 사람들이 민족의 이름 아래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고, 또 민족을 위해 살기도 하고 죽음을 불사하기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세계화가 완료된 것으로 보이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민족 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고, 세계 도처에서 소수 민족들의 분리주의 운동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난민 문제 또한 민족 및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해 보기를 요구하고 있으며, 동북아시아의 역사 논쟁이나 분단과 정전 상태 해소에 관련해서도 이 주제는 예민하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민족주의는 현대 정치의 중심 자리에서 물러난 적이 없고 아마도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테니, 이 책의 부제가 명시하는 바, 민족주의의 기원과 보급의 과정을 되짚어 봐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민족은 제한적(limited)인 것으로 상상된다. 10억가량의 살아 있는 인간들을 포괄하는 가장 큰 민족조차도 그 경계는 유연할지언정 유한하며, 그 너머에는 다른 민족들이 있다. 어떠한 민족도 스스로 인류라는 집합과 경계가 동일하다고 상상하지 않는다. 가장 메시아적인 민족주의자들조차도, 어떠한 시대에 이를테면 기독교도들로 하여금 기독교도들만의 지구를 꿈꿀 수 있게 했던 그런 방식으로, 인류 구성원 모두가 그들의 민족에 참여할 날을 꿈꾸지 않는다. 민족은 주권을 가진(sovereign) 것으로 상상된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계몽 운동과 대혁명이 신이 하사한 계서적인 왕조령(dynastic realm)의 정통성을 파괴하고 있던 시대에 태어났다. 어떠한 보편적 종교이든 간에 그 가장 독실한 추종자들조차도 그러한 종교들의 살아 있는 다원주의에, 그리고 신앙 각각의 존재론적인 주장들과 그 영역이 뻗어 있는 형태 간의 어긋남에 어쩔 도리 없이 맞닥뜨렸던 인류 역사의 단계에서 성숙에 이른 민족들은 자유롭기를 꿈꾸었으며, 신의 가호 아래 있을 것이라면 다른 누구를 통하지 않기를 바랐다. 주권 국가는 이러한 자유를 표상하는 도전장이자 휘장이었다. 마지막으로,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각각의 민족 내에서 실제로 횡행하고 있을 법한 착취와 불평등과는 상관 없이, 민족은 언제나 깊은 수평적 동지애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토록 제한적인 상상물을 위해 목숨을 빼앗는다기보다는 기꺼이 목숨을 던진 것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형제애(fraternity)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죽음들로써 우리는 민족주의가 제기하는 중심적 질문과 돌연 마주한다. 무엇이 얼마 되지 않은(기껏해야 두 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은) 역사의 오그라든 상상으로 하여금 그토록 거대한 희생을 일으키도록 했는가? 나는 해답의 출발점이 민족주의의 문화적 뿌리들에 있다고 생각한다.(본문 27~28쪽) 잘 알려진 대로, 앤더슨은 민족을 왕조 국가가 쇠퇴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시기에 나타난 “상상된 공동체”로 정의한다. 그 공동체는 종교 공동체의 붕괴, 그 종교 공동체 안에서 신으로부터 정당성을 끌어냈던 왕권의 약화와 맞물려 출현했다. 종교가 힘을 잃으면서 인간 삶의 영원성도 함께 사라져버렸으나, 이제 민족이라는 맞춤한 상상의 산물이 등장해 인간의 공허한 삶에 새로운 연속성과 영속성을 부여했다.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세속적인 일상어와 인쇄자본주의였다. 종교와 왕조 국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신성한 언어의 독점적인 지위가 일상어에 의해 무너졌고, 이 일상어는 인쇄술과 자본주의의 혁명적 공세 덕에 널리 힘을 얻게 되었다. 신문과 소설 지면에 인쇄된 언어, 활자화된 언어가 그 일상어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숙명과도 같은 공감과 유대를 형성하게끔 했다.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서적이다. 운명공동체인 민족의 일원으로서 ‘비어 있는 동질적 시간’을 함께 헤쳐 나가려는 의지에 도달하려면, 그에 앞서 모어와 일상어로 경험하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정서적 충만감이 필요하다. 민족주의의 상상이 역사적으로 등장하는 데에는 언어적 숙명 외에도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가 필요했다지만, 민족주의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핵심적인 자연적 유대는 역시 언어인 것이다.(서지원, 「옮긴이 해제」 중에서) 18세기에 꽃핀 두 가지 상상 형식인 소설과 신문은 또한 시간을 파악하는 방식에까지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소설의 구조 속에서 행위자들은 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혹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지만 독자들은 모든 행위자들의 모습을 동시적으로 한꺼번에 볼 수 있다. 한 명의 한국인이 다른 동료 한국인들 중 극히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를 만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거의 대부분 이름조차도 모를 것이다. 다른 한국인들이 어떤 한 순간에 뭘 하고 있는지 그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런데도 매일의 신문을 읽고 뉴스를 접하는 우리에게는 그들이 우리와 같은 공동체 안에서 꾸준히 동시에 활동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에 상상된 공동체를 소환한다. “비어 있는 동질적 시간”(앤더슨의 발터 벤야민 인용)을 통해 달력을 따라 움직이는 사회적 유기체라는 관념이 바로 민족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민족 역시 역사를 타고 내려가며(또는 올라가며) 꾸준히 움직이는 견고한 공동체로 인식된다. 핵심적으로 나는 아주 오래된 세 가지 근본적인 문화적 관념이 사람들의 정신에 자명한 이치로서 행사하던 지배력을 잃었을 때에야, 그리고 지배력을 잃은 곳에서만 민족을 상상한다는 가능성 자체가 역사적으로 떠올랐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특정한 경전의 언어가 존재론적 진리의 떼어놓을 수 없는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 언어가 진리에 대한 특권적인 접근을 제공한다는 생각이다. 〔…〕 두 번째는 사회란 당연히 높이 있는 중심, 즉 다른 인간들과 구분되는 인격이자 어떤 우주론적인(신성한) 섭리로써 통치하는 왕들을 둘러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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