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SF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단연 1순위’
판타지와 리얼리즘의 경계를 허문 미국 문학의 거장
어슐러 K. 르 귄의 중.후기 대표 단편집
판타지와 리얼리즘의 경계를 뛰어넘어
문학의 미래를 제시한 작가 어슐러 K. 르 귄
퓰리처상과 더불어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내셔널 북 어워드는 2014년 ‘평생공로상’ 수상자로 어슐러 K. 르 귄을 선정했다. 미국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에게 수여되는 이 상은 그간 수상자들의 이름만 살펴보더라도(필립 로스, 아서 밀러, 토니 모리슨, 존 업다이크, 스티븐 킹 등)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미 수많은 단편들로 네뷸러상(여섯 번), 휴고상(다섯 번), 로커스상(스물한 번)을 수상하고 세계환상문학상과 카프카상, 펜/맬러머드상 등 장르를 넘나들며 기록적인 수상 경력을 보유한 르 귄으로서는 당연한 수순으로 보이기도 한다.
“판타지와 리얼리즘의 경계를 뛰어넘었을 뿐만 아니라, 내러티브, 언어, 캐릭터, 장르 등 그 모든 것에 관한 규율을 거스름으로써 문학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르 귄의 풍부한 이미지로 구축된 세계는 독자들로 하여금 젠더와 인종, 환경, 사회에 대한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깊은 사유를 하게 만든다” 같은 선정의 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르 귄은 스스로 SF 작가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 작품의 진폭은 이미 오래전부터 장르를 벗어나 미국 문단 전체에 폭넓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르 귄을 소개할 때면 언제나 빠지지 않았던, ‘SF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면 단연 1순위’라는 말 역시 그녀의 작품이 갖는 보편적이면서도 뛰어난 문학적 소양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일상의 권력부터 헤인을 무대로 한 시간의 역설까지
장르를 초월한 어슐러 K. 르 귄의 중.후기 대표 단편집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 르 귄은 이미 고전이 된 여러 편의 장편 못지않게 엄청난 양의 뛰어난 단편을 써낸 작가로도 유명하다. 총 아홉 권의 단편집 중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내해의 어부》는 1980년대와 1990년 초반까지의 작품들을 모은 르 귄의 중.후기 대표 단편집으로 꼽힌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은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남녀의 권력관계부터 시작해 르 귄의 주 무대인 헤인을 배경으로 시간의 역설을 탐구한 작품들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원숙한 작가로서의 역량을 선보인다.
르 귄 스스로 농담이라 칭한 유머 풍자극 <고르고니드와 한 최초의 접촉>에서는 외계인과의 조우를 통해 재치 있게 역전되는 권력관계를, <뉴턴의 잠>에서는 인간의 이성이 잠들었을 때 깨어날 ‘괴물’에 대한 섬뜩한 예언을 예의 그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려 보인 뒤, 이어서 인간의 가죽으로 만든 소리 없는 악기 <케라스천>을 통해 짧지만 강력한 초혼곡을 들려주고, <상황을 바꾼 돌>에서 억압받는 자들의 조용한 반란을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가득한 우화 형식으로 그려 보인다. 마지막 세 작품 <쇼비 이야기> <가남에 맞춰 춤추기> <또 다른 이야기 혹은 내해의 어부>는 시간 여행에 관해 실험한 르 귄의 드문 단편들로, 그중에서도 표제작 <내해의 어부>는 “같은 시간 같은 인물에 대한 완전히 다르면서 완전히 진실인 두 이야기가 가능한지”를 탐구한 작품이다. ‘우라시마’라는 어부가 하룻밤 바닷속 용궁에서 지내고 돌아오니 바깥세상에서는 백 년이 흘러 가족도 친구도 모두 사라지고 없더라는 일본의 우화를 차용해, 겹겹이 쌓인 무한한 우주와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유약한 인간의 존재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이전보다 다채로워진 스펙트럼으로 인간의 심연을 탐구하는 이번 작품집에서는 르 귄 특유의 인류학적이고 심리학적인 통찰과 함께 스스로 농담이라 칭한 “작가의 어두운 면이 주는 선물”과 같은 의외의 이야기들까지 더해져 여전히 매력적이면서도 보다 풍성해진 르 귄의 문학세계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