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겨지고, 눕혀지고, 눈이 감겨
남성의 눈요깃감이 된 비너스.
‘예술’로 포장되었던 시각 문화 속 여성 혐오를 파헤친다!
소위 ‘명작’ 속의 ‘아름다운 여성’을 우리는 오늘도 현실에서 마주한다. 하얀 피부에 찰랑이는 머리칼, 누구도 해치지 않을 것 같은 여린 눈썹, 왈칵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커다란 눈망울, 가녀린 몸의 여성들. 이 기준에 맞는 ‘아름다운 여성’을 우리 사회는 ‘여신’이라고 떠받든다. 그러나 이러한 칭송은 그들을 우리와 같은 인격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구경하고 평가하고 상상하는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 책은 시각 문화에 깊이 뿌리 내린 여성 혐오를 걷어치우고, 비판적으로 이미지를 읽을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_ ‘진단 테스트’로 알아보는 명작 속의 여성 혐오
책의 첫머리에서는 미켈란젤로, 피카소, 티치아노 등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며 진단 테스트를 실시한다. 하나님은 왜 ‘백인 노년 남성’으로 그려졌을까? 성모마리아는 왜 예수보다 젊어 보일까? 항아리의 물을 버리는 여성은 왜 굳이 어려운 자세를 취하고 있을까?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여성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드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_ 성인(聖人)도 피해갈 수 없었던 성적 대상화
신의 계시를 받거나 은총을 깨닫는 모습을 가리키는 ‘엑스터시’. 이 성스러운 순간을 포착한 그림에서 어찌된 일인지 여자 성인(聖人)은 성적으로 흥분한 모습으로 표현된 작품이 많다. 어깨는 들려 있고, 입은 벌어지고, 눈은 초점을 잃고 있어 성적 황홀경에 빠진 모습이다. 그에 비해 남자 성인은 정신과 사지가 멀쩡하게 그려져 있다. 성별에 따라 성인의 엑스터시를 다르게 그린 (남성)화가와, 그것을 바라보는 (남성)감상자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_ 민족의 영웅 유디트와, 성범죄 피해자 수산나의 경우
유디트와 수산나는 구약성서의 외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그림의 소재로서 인기가 높았다. 유디트는 적장의 목을 베어 유대 민족을 구원한 영웅이고, 수산나는 강간미수 사건의 피해자이다. 그러나 남성 화가들은 유디트를 팜 파탈 또는 우아한 귀부인으로 묘사했으며, 수산나는 남성을 유혹하는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2차 가해’를 했다. 그런 와중에 독보적인 작품이 있었으니,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는 유디트와 수산나를 여성의 입장에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묘사했다. 유디트와 수산나를 그린 여러 작품들을 비교 분석하면서 여성 재현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고민해본다.
_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
금욕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대에 ‘미의 여신’ 비너스는 신을 찬양한다는 명분을 챙기면서도 남성의 욕망을 채워주는 포르노그래피로서 적당한 소재였다. 그런데 성적 대상화를 위해 몸의 곡선을 강조하는 동시에 서 있는 모습으로 그리기는 쉽지 않았다. 화가들은 이 문제를 비너스를 눕히는 것으로 해결했다. 비너스는 벗겨지고, 눕혀지고, 눈이 감겨 남성 관객들의 관음증을 충족시켰다. 이처럼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은 ‘미의 기준’이 되었다.
_ 누드의 후유증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재현하는 누드는 미술관에 걸린 ‘명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텔레비전, 영화, 게임 그래픽, 불법 촬영물 등에서 넘쳐나고 있다. 이처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를 끼친다. 술이나 강제 주입된 약물에 의식을 잃은 여성을 ‘골뱅이’라 부르며 성폭행하는 것을 자랑하는 강간 문화가 펼쳐지는 사이트의 회원이 100만 명이라고 한다. 여성과 제대로 된 관계 맺기에 실패하고, 자칫 가해자가 될 수도 있게 하는 문화의 피해자는 남성이기도 하다.
_ 충열 테스트
오래된 서양 미술 작품들을 통해 여성의 재현의 문제점을 짚어보았는데,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현재에 적용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는 여성을 재현한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읽기 위한 방법을 고안했으며, 저자의 이름을 따서 ‘충열 테스트’라고 명명했다. 아래의 질문 3개를 던져 No가 2개 이상이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누드’이다. 미술 작품뿐 아니라 사진, 일러스트, 광고 이미지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이미지에 적용하여 ‘누드’ 여부를 감별할 수 있다.
_ ‘여신’ 칭송을 멈춰야 한다
비너스로 대표되는 ‘여신 칭송’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여신처럼 아름답다고 환호받는 여성 연예인,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는 레이싱 모델, 신체 특정 부분만 클로즈업되는 치어리더…… ‘칭송’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진정한 존중 없이 그저 성적 대상으로 소비할 뿐이다. 이제 우리는 시각 문화에 깊이 뿌리 내린 여성 혐오를 걷어치우고, 비판적으로 이미지를 읽음으로써 인간 그대로의 여성을 마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