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 현대의 비판

쇠렌 오뷔에 키에르케고르
3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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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反復, 덴마크어: Gjentagelsen)은 쇠얀 키에르케고어가 "콘스탄틴 콘스탄티우스" 라는 익명으로 1843년 10월 16일에 출간한 저서이다. 이 저작은 특별히 그의 작품 중에서 문학적 감수성으로 가득한 작품으로 철학적 가치를 차치하더라도 그 독특한 영원히 남을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현대의 비판」은 1846년 3월 코펜하겐에서 키에르케고어의 실명으로 출판된 『문학평론』의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논문으로서, 이 『문학평론』은 1845년에 출판된 『두 개의 시대」라는 소설에 대한 평론으로서, 여기에 번역한 부분은 이 『문학평론』의 제3장에 수록된 ‘A. 혁명시대’와 ‘B. 현대’ 중의 B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분량으로 보아서도 『문학평론』의 거의 절반에 필적할 만한 분량이고, 또 『두 개의 시대』라는 소설에 대한 평론의 범위를 넘어서, 20세기 후반의 ‘현대’에 대한 비판으로도 여전히 우리의 심금을 울려 줌으로써, 우리들 자신이 우리의 현대를 관찰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도서출판 치우에서는 실존 철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쇠얀 키에르케고어의 정신적 세계를 입체적으로 그려보는 데에 있어 탁월한 장점을 가진 이 두 저서를 함께 실어 다소 이해하기 힘든 쇠얀 키에르케고어와의 만남의 지평을 넓히고자 본 기획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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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007 현대의 비판 211 ■ 부록 키에르케고어의 생애에 대한 짧은 이야기 305

Description

「반 복」 「반복」(反復, 덴마크어: Gjentagelsen)은 쇠얀 키에르케고어가 "콘스탄틴 콘스탄티우스" 라는 익명으로 1843년 10월 16일에 출간한 저서이다. 이 저작은 특별히 그의 작품 중에서 문학적 감수성으로 가득한 작품으로 철학적 가치를 차치하더라도 그 독특한 영원히 남을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총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저서에서 실존에 대한 탐구는 물론이거니와 오늘날 실존주의의 선구자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남녀간의 연애에 대한 섬세한 심리묘사, 소극(笑劇)에 대한 깊이 있고 논리 정연한 이론 전개, 여기에다 자신의 불행했던 연애사로 비롯되어 흔들릴 수밖에 없는 마음과 모종의 악의까지 숨김없이 드러낸다. 저자의 다른 저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런 독특함은 키에르케고어의 저서를 조금이라도 접해 본 독자들이라면 바로 레기네 올센과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의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키에르케고어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랑에 상처 받고 스톡홀름으로 떠나버린 청년처럼, 실제로 레기네 올센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완성된 작품이 바로 이 반복인 것이다. 베를린에서 신앙인이자 철학자로서 체념의 운동을 통한 믿음의 운동의 가능성, 그리고 그럼으로써 사랑의 반복의 가능성까지 열어낼 수 있었던 키에르케고어에게, 레기네 올센의 결혼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저작 후반부의 수정이 가해진다. 아마 이 저작에서 언듯언듯 보이는 악의는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이 저서의 가치는 키에르케고어라는 철학자를 동시대의 다른 철학자들과는 달리 입체적이며 생명력 있는 인물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할 수 있다. 쇠얀 키에르케고어에게 처음 다가가는 독자라면 입문서로써도 적합한 작품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런 독특함 때문이며, 이는 전적으로 사실이다. 「현대의 비판」 「현대의 비판」에 대한 출판사 서평은 이 책의 번역자인 고 임춘갑 선생의 후기로 대신한다. 왜냐하면 본서에 실린 고 임춘갑 선생님의 역자 후기만큼 탁월한 서평은 없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현대의 비판」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이뤄진 서두부분을 제외한 전체 부분이다. “현대, 정열이 사라진 반성의 시대” 쇠얀 키에르케고어는 이 논문에서 자신이 살고 있던 그의 ‘현대’를 프랑스혁명 당시의 ‘혁명시대’와 대비해 가면서 자신의 ‘현대’에 대하여 통렬한 비판을 퍼붓고 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큰 소리로 꾸짖고 있다. 즉, 혁명의 시대에는 정열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정열이 없는 반성의 시대고, 분별의 시대고, 잠깐 동안 감격에 사로잡혔다가도 속절없이 식어버리는 시대라고 단정한다. 직접적인 감격은 가끔 과오를 저지르지만 감격이 없는 반성에서는 아무것도 생산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분별과 반성은, 결국 어떤 창조적인 행위도 자신의 책임 아래 수행하지 못하고, 끝내는 모든 인간이 방관자가 되고 만다. 구체적인 인간이 개인의 책임 아래 주체적으로 일하기를 포기하면, 추상성이 활개를 치고, 공공이 일체를 지배하고, 개인은 공공이란 것에 억눌려서 꼼짝을 못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허깨비에 불과한 공공을 떠받들고 다니며 비열하고 파렴치한 짓을 자행한다. 이런 온갖 고약한 짓을 앞장서서 저지르고 다니는 것이 저널리즘(오늘날의 매스컴)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평등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수평화의 작업을 집행하지만, 이런 수평화의 운동은 대개의 경우 뛰어난 자를 끌어내려서 똑같이 저급한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때 인간은 단지 숫자의 다소에 의해서만 평가를 받고, 허깨비 같은 공공성 여부가 사회성의 범주가 되고, 실존적인 개체의 내면성은 헌신짝처럼 버림을 받는다. 그러나 키에르케고어는 반성이란 것을 일률적으로 무시하지는 않는다. 정열을 밑바닥에 깔고, 거기에 반성이 튼튼한 터전을 닦으면, 그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을 인간으로 살게 하는 내면성이 생기고, 자신의 주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인간이, 즉 실존적인 개인이, 개개의 외톨이가 각자의 내면성을 확보할 때고, 이것이 또 종교의 알맹이이기도 하다. “근대화가 낳은 괴물, 수평화” 키에르케고어가 이 논문에서 특히 역점을 두고 날카롭게 자신의 현대를 비판하고 있는 대목은, 근대가 발전시켜 놓은 수평화라는 작업이다. 이 과정은 키에르케고어가 가고 나서 백년이 훨씬 넘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비판은 우리의 현대인 오늘날에도 꼭 들어맞고 있다. 다시 말해서, 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비판은, 마치 어제 적어진 것처럼 우리를 찌른다. 그가 지적한 문제는 오늘날 점점 첨예화되고 있고, 더욱 악화되어 더욱 고약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제는 인간성의 회복을 아무리 소리 높여 외쳐보아도 모두가 ‘쇠귀에 경 읽기’ 식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인간의 가치, 실존!” 끝으로, 이 『현대의 비판』이 나온 것이 1846년이고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나온 것이 1848년이었다는 점을 독자 여러분께서는 기억하시고, 키에르케고어의 실존과 마르크스의 유물론적인 계급투쟁의 이론을 대조하여 살펴보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 가치를 유지하고 구원을 받기 위하여서는 어느 편이 보탬이 되겠는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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