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가지 빛깔로 그려낸 희망의 미학,
노무현 5주기 기념 출간 『그가 그립다』
1. 변호인 노무현, 그가 그립다
유시민, 조국, 정철, 신경림, 정여울, 류근, 한홍구, 노경실 등 『그가 그립다』에 담긴
스물두 명의 메시지는 한 젊은이의 영혼 앞에 민낯으로 부르는 소박한 합창
변호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지난 시기 십여 년 정도 정치를 했다. 그 가운데 5년은 국회의원이었고 1년 5개월은 장관이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큰 권력과 영향력이 있었던 만큼, 마음만 먹었다면 더 많은 사람의 변호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마음을 때린다. 나는 변호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변호인이 되어 주려고 노력했지만, 다른 누군가에 대해서는 변호인이 되기 싫은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 나는 ‘힘 있는 자리’에 있었을 때, 더 많은 억울한 사람들의 변호인이 되어 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치에 뛰어들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것만은 크게 후회한다.
_ 유시민의 <변호인이 된다는 것> 중
날씨를 피할 수 없듯이, 민주주의의 가뭄을 피할 방법도 없다는 것을, 저는 당신이 떠나신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숨어 살면 될 줄 알았습니다. 추위를 피해 집 안에만 웅크리고 있는 게으른 아이처럼요. 저도 민주주의의 한파를, 민주주의의 가뭄을, 민주주의의 고사 상태를 피해 보려 했습니다. 소박하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제 작은 보금자리 안에 꽁꽁 숨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겁 많고 소심하며 ‘정치’의 ‘정’ 소리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는 저 같은 사람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요.
_ 정여울의 <오랜 자폐를 털고> 중
그는 ‘노무현’이라는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놀랐습니다. 크게 놀랐습니다.
그는 내세울 게 없어서 당당했고, 감출 게 없어서 명쾌한 젊은이였습니다. 또, 가슴이 뜨거워서 활짝 열어젖히고 나누어야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기꺼이 그를 앞장세웠습니다. 그리고 쉼 없이 요구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진 것처럼 자신을 버린 채 땀 흘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변덕이 심한 여름철 날씨였습니다. 우리는 참 많이도 그 사람을 우리의 용광로와 얼음 창고 속에 몰아넣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냉정한 등을 ‘눈부신 빛을 반사하는 거울’처럼 그의 심장 앞에 들이밀었습니다.
_ 노경실의 <머리말> 중
하지만 우리는 그를 그리워하면서도 그를 잊어가고, 분노하고 울다가도 이내 웃으며 밥을 먹어 왔다. 변덕스러운 생활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그렇게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딱 5년만큼만 괴로워하고 그리워했다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무현은 우리의 벗이자, 이웃이며, 때로는 원수 같은 동지였다. 그래서 우리의 5년은 시간을 넘어서고, 그리움을 뛰어넘은 사랑의 고백이 되었다. 이 책 『그가 그립다』에 실린 스물두 명의 메시지는 그리운 그의 영혼 앞에서 민낯으로 부르는 소박한 합창이다.
“그가 그리운 것은, 사실 그를 그리워함이 아니라 옳은 삶과 자기다운 죽음에 대한 소망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 그가 그리운 것은, 어지러운 시대에는 벗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립다.” _유시민
“노무현 대통령을 사적으로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생애와 언동을 종합하면 그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는 항상 ‘호모 엠파티쿠스’와 ‘호모 심비우스’가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_조국
“우리의 송변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저들은 저렇게 활개를 치는데, 우리는 그저 영화 보며 박수나 치고 있어야 할까요. 노무현이 뛰어내린 그 자리, 바로 거기서 우리는 출발해야 합니다.” _한홍구
“미안해서 보고 싶다. 미안해서 만지고 싶다. 미안해서 울고 싶다. 세상 모든 ‘싶다’는 그를 위해 만들어 둔 말일 것이다. 그가 그립다.” _정철
“그리운 것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이다. 추억만이 유일한 은신처가 된 사람은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는 사람이다. 대상과 정면으로 부딪쳐 저항할 의지가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시인이 아니다.”_류근
안될 것을 알지만 그른 것에 대항하는 용기, 사리사욕이나 명성보다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가치를 수호하는 정의로움, 그 무엇보다 사람을 위해 불의를 참지 않겠다는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키려 했던 사람, 노무현.
그의 삶과 정신 속에서 찾아낸 희망의 불씨가 『그가 그립다』 속에 스물두 가지의 빛깔로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의 불씨를 간직한 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리라는 굳은 다짐 역시 활자 위에서 피어나고 있다. 그렇게 그는 우리 곁에 없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2. 노무현의 전속 이발사, 청와대 총주방장 등이 들려주는 ‘인간 노무현’
제가 관저에 처음 들어간 날을 기억하시는지요?
“정 선생, 어서 오세요.” 손을 번쩍 드시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답니다. 어느덧 저에 대한 호칭이 사장님에서 선생으로 바뀌어 있었고요. 시간이 조금 지나고 저한테는 선생이라는 호칭이 낯설고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그냥 편하게 말씀 놓으셔도 됩니다.” 했더니 “그게 잘 안됩니다. 그냥 갑시다.” 하셨어요. 동갑내기인 저에 대한 배려를 당신은 그렇게 하셨던 건데 지금 생각해도 당신의 따뜻한 성품과 성격이 이 호칭에 담겨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_ 정주영의 <당신의 전속 이발사> 중
청와대 관저의 식사 시간은 아침은 7시, 점심은 12시, 저녁은 6시 반이다. 대통령은 이 시간만큼은 누구라도 철저히 지키게 했다. 이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 힘들지 않게 하려고 아들 내외 가족이라도 밖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오게 했다 (…)
“신 부장, 나라도 이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인터폰을 하게.”
대통령께서도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이 시간만큼은 솔선수범 지키려고 엄청 노력하셨다.
_ 신충진의 <식사하세요> 중
노무현 대통령이 올백 스타일의 머리를 좋아했으며 이발을 하는 동안 도전 골든벨 같은 퀴즈를 즐겨 풀었다는 일화를 들려주는 전속 이발사. 모내기국수, 막창구이, 라면 등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했던 음식을 나열하며 그를 추억하는 청와대 총주방장. 가장 가까이에서 그와 일상을 함께한 이들의 이야기에는, 대통령이라는 직책과 정치인이라는 신분을 내려놓은 ‘인간 노무현’이 담겨 있다.
3. 『그가 그립다』로 시작하는 희망 릴레이, 노무현장학금
『그가 그립다』에 참여한 스물두 명의 작가 모두는 인세를 좀 더 의미 있게 사용하고 싶어 했다. ‘어떻게 하면 그가 남긴 정신을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작가들은 본인들의 인세를 ‘노무현재단’과 ‘노무현장학금’에 기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노무현장학금’은 ‘꼴찌도 장학생이 될 수 있다’는 독특한 심사 기준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진취적인 자세로 이웃과 지역사회에 봉사해 온 학생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장학금의 설립 목적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던 노무현의 학창 시절과, 그 어려운 사법 고시를 통과했음에도 ‘고졸 대통령’이라는 꼬리표에 내내 시달려야 했던 그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의 친인척 중 머리가 좋음에도 상고나 공고를 선택해야 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