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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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마르크스주의 그 후 20여 년 이 책은 1985년 첫 출간된 이후,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선언문이자,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에 기반을 둔 정치 분석, 사회 분석의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저서이다. 국내에서도 1990년에 처음 번역 출간된 이래로, 마르크스주의 이론 진영은 물론, 다양한 사회운동 이론에 커다란 충격과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수많은 비판과 찬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제 20여 년이 지나 새로운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되어 독자들 앞에 다시 놓이게 되었다. 그 사이 적지 않은 시간과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 책이 지닌 의미와 가치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그 시간과 사건들만큼 커지고 있으며, 좌파 이론 진영은 물론 포스트구조주의 이론 논쟁의 핵심에서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 정치철학의 귀환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무엇보다 정치적인 것에 사회를 잠정적으로 설립 및 봉합하는 구성적 역할을 부여하고, 이를 분석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는 정치적인 것을 어떤 또 다른 본질(경제 혹은 인간 등)의 반영물로 파악하는 관점이나, 정치적인 것을 경제, 사회, 문화, 법률 등 다른 심급들과 독립되고 구별되는 하나의 심급으로만 파악함으로써, 정치/정치적인 것의 구성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간과하는 기존의 시각들과 큰 차이를 보여 준다. 이와 관련해 지젝, 랑시에르, 알튀세르, 발리바르, 네그리/하트 등 오늘날 주목받고 있는 이론가들과 다양한 이론적 접점과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라클라우와 무페의 논의는 현대 정치철학 논쟁에 대한 좀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피해 갈 수 없는 중요한 이론적 지형을 제공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론을 중심으로 다양한 현대 민주주의론과 접점을 이루고 차이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물론, 민주주의 그 자체를 둘러싼 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반본질주의/반토대주의 정치철학 세계가 신의 섭리에 따라 운행되는 조화롭고 정의로운 체계라면 정치는 필요한 것일까? 통치하는 자들과 통치 받는 자들의 자리가 그 질서에 따라 정해져 있고, 그에 따라 사람들에게 각자의 자질과 특성이 부여되어 있는 세계. 이런 세계에서 정치가 필요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질서와 위계를 부여하고 이를 집행하는 정치일 것이다. 물론, 이는 단지 고대 형이상학적 세계 혹은 중세의 신학적 암흑기에나 정당화되었던 논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과연 그런가. 사실 근대사회에서도 정치 혹은 정치적인 것의 자리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예컨대, 근대의 사회과학은 정치적 현상들을 사회학적·심리학적 구성 요소나 경제적 요소로 분해함으로써, 정치적인 것의 영역을 과학적 담론의 영역에서 추방해 버렸다. 한편으로는,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연적’으로 조정되듯, 정치 논리를 최소한으로 제한할 때에만 사회는 그 정상적인 발전의 경로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시장주의자들의 논리를 필두로, 정치적 민주화는 사회경제적 근대화의 부산물일 따름이라는 근대화학파의 논리에 이르기까지, 다른 한편으로, 세계는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조응이라는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 법칙이 작동하는 투명한 질서로 간주되며, 정치는 경제의 반영이자 부산물로 생각되었던 마르크스주의에 이르기까지 정치 혹은 정치적인 것은 불필요한 것, 혹은 지배 질서의 도구, 그게 아니라면 기껏해야 하나의 블랙박스로 간주되었다. 이런 경향들에 맞서 이 책은 정치, 특히 정치적 접합의 계기를 특권화하는 작업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사회를 잠정적으로 봉합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정치에 그 본연의 자리와 역할을 되찾아 주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물론, 그와 같은 작업의 핵심 개념은 바로 헤게모니로, 이 책은 모든 정치 공동체 혹은 사회적 봉합의 형식은 헤게모니적 접합일 뿐으로, 이는 사회를 구성하는 그 어떤 ‘본질’이나 ‘아르케’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헤게모니적 접합은 그 어떤 특권적 주체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헤게모니적 주체의 정체성 그 자체까지 변화시키는 접합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이 책의 문제의식은 ‘정치적인 것’이 여론조사와 미디어 정치를 비롯한 정치 공학에 자리를 내주고, 접합과 파열은 의회의 의석수를 둘러싼 엘리트들 사이의 협상과 다툼으로 대체되며, 이런 다툼과 조작은 여전히 역사의 정방향에 대한 진리의 독점을 통해 정당화되는, 그리하여 정치적 동원은 명령과 윽박, 공포의 동원을 통해 이루어지는 한국 정치의 현실에서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혹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이 책은 한편으로 ‘포스트’구조주의 이론들을 본격적으로 사회 분석 작업에 도입한 선구적인 저작이자, 여전히 그 정점에 서 있는 저작이라 할 수 있다. 그 자체로 현상학, 정신분석학, 해체론(탈구축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해, 정치 분석과 사회분석의 논리로 전환한 대표적인 저작으로, 이 책이 처음 출간된 80년대 중반 이후로, 오늘날까지도 좌파 이론은 물론, 포스트구조주의 사회분석 이론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평가 받고도 있다. 라캉, 데리다, 푸코는 물론이고, 지젝, 랑시에르, 버틀러 등 오늘날 탈구조주의 분석이론가들과의 이론적 접점은 물론, ‘헤게모니’, ‘적대’, ‘등가의 논리’, ‘차이의 논리’, ‘결절점’ 등등 이 책의 주요 개념들은 그 자체로도 오늘날 우회할 수 없는 담론적, 개념적 준거틀로 여전히 남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위기 이후 등장한 새로운 사회 운동과 이에 대한 신우파의 대응 및 이에 따른 복지국가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등장에 대한 한편의 정치적, 담론적, 이론적 분석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그 자체로 우리 시대의 주요 장면들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이론적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저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우회하거나 이에 대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보다는, 그 위기를 적극적으로 전유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좌파의 새로운 분석과 운동의 논리를 제시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포스트 담론들이 수입된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철학적 논의 혹은 문화비평 분야에서만 일정한 성과를 보여 온 한국 사회의 이론적 풍토에 커다란 지적 자극을 제공할 것이다. 적대 그리고 신자유주의 아마도 이 책의 백미는 현대 정치철학 논쟁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3장(사회적인 것의 실정성을 넘어서)과 4장(헤게모니와 급진 민주주의)일 것이다. 특히 적대(antagonism)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의 완전한 봉합 불가능성을 논의하는 3장은 오늘날까지도 이 책의 의미를 생생이 살아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도발적인 이론적 쟁점을 다루고 있다. 관념론/유물론이라는 고전적 쟁점에서부터, 라캉의 이론을 중심으로 한 사회의 완전한 봉합 불가능성에 대한 논의, 데리다의 결정 가능성과 결정 불가능성을 둘러싼 분석의 논리들은 오늘날 현대 정치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4장의 핵심적인 내용을 이루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등장과 신우파의 대응에 대한 분석은 그 자체로 한편으로 정치한 담론 분석의 사례로서, 신우파가 복지국가의 확대가 낳은 문제를 새로운 사회운동 및 정치 논리와 어떻게 접합을 시켰는지를 보여 주는 생생한 장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오늘날 한국 사회 내에서, 신자유주의적인 담론 구성체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분석하는 데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