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나이라면 왜 남자답게 굴지 않는 거죠?”
남성성의 과학과 신화를 넘어 역사와 일상을 지나
젠더 평등의 정치를 모색하는 전략들을 찾아,
지금 여기에서 고정된 ‘남성성’을 해체하는 ‘남성성/들’의 이야기!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 연예 병사 폐지와 해병대 캠프, 그리고 ‘진짜 남성성’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이 화제다. 연예인들이 병영 체험을 하는 모습을 담아내는 이 프로그램은 ‘군필자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시청률 상한가를 치고 있다. 유명한 군가의 제목을 차용한 타이틀은 사뭇 시사적이다. 군대를 다녀와야 ‘진짜 사나이’라는 암시를 던지면서 한국 사회가 그동안, 아니 지금도, ‘남성성’을 얼마나 성찰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신성한 병역 의무를 농락한 국군 홍보지원대원(‘연예 병사’)에게 쏟아진 비난도 똑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한편에서는 해병대 병영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진짜 사나이〉가 인기를 끌고, 군대 문화가 학생들까지 경험해야 할 진정한 ‘남성성’으로 받아들여지는 한국 사회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비극이다.
젠더 문제에 관해 발언하는 책은 많았지만 ‘남성성’에 관해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목소리는 드물었다. 《남성성/들》의 발간이 그래서 더욱 반갑다. 지은이인 R. W. 코넬은 젠더 연구로 유명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회학자이자 60대 나이에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코넬의 대표작인 《남성성/들》은 생애사와 이론적 논의를 적절히 결합해 하나가 아닌 남성성,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경합하는 남성성‘들’의 이론, 역사, 현실에 관해 논의한 체계적이고 방대한 남성성의 박물지다.
이론에서 정치까지, ‘남성성/들’의 박물지
《남성성/들》은 모두 3부로 구성돼 있다. ‘남성성들’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는 1부, 오스트레일리아의 네 남성 집단에 관한 생애사를 다루는 2부, 남성성의 역사와 정치적 전망을 다루는 3부가 그것이다.
1장은 20세기 남성성에 관한 과학의 세 가지 주요한 프로젝트를 다룬다.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출발한 정신분석학의 임상 지식, 사회심리학에 기반을 둔 ‘성역할’ 이론, 역사학과 인류학, 사회학에서 달성한 최근의 발전 등이다. 이 프로젝트들에 더해, 페미니즘과 동성애 해방 운동 진영에서 발전한 정치석 지식도 언급한다. 2장에서는 남자들의 몸과 남성성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널리 알려진 세 관점, 곧 몸을 타고난 기계로 간주하며 유전자 프로그램, 호르몬 차이, 성별에 따른 재생산 역할의 차이를 통해 젠더 차이가 생성된다고 보는 기계론, 반대로 몸은 사회적 상징이 각인되는 중립적 표면이나 풍경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풍경론, 이 두 주장의 상식적 절충을 제안하는 절충론을 모두 반박하며 ‘재귀적 몸실천’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3장에서는 남성성을 정의하는 네 전략, 곧 본질주의적, 실증주의적, 규범적, 기호학적 정의를 모두 비판하며 우리가 남성성과 여성성에 관해 말하는 것은 사회적 실천의 배치 형태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또한 남성성을 한 가지 이상으로 인식하는 태도는 남성성/들을 사고하는 첫 단계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며, 남성성들 사이의 관계, 곧 헤게모니적, 종속적, 공모적 남성성 등의 패턴에 관해 살펴본다. 여기에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남자들의 지배적 위치와 여성 종속을 보증하는 답변을 체현한다. 종속된 남성성은 헤게모니적 남성성에서 상징적으로 쫓겨난 모든 것을 포함한다. 공모적 남성성은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강력하게 수행하지는 않지만 그것에서 가부장적 배당금을 얻는 형태를 말한다.
2부에서는 네 편의 생애사 연구를 제시하며 3장에서 살펴본 이론 틀을 실제 분석에 적용한다. 4장에서 다루는 집단은 블루칼라 노동 계급 남성이다. 4장의 연구는 ‘항의하는 남성성’이라 부를 수 있는 주변화된 남성성으로서, 이 노동 계급 남성들이 노동, 폭력, 강제적 이성애 등과 맺는 관계를 살펴본다. 5장에서 다루는 집단은 4장의 항의하는 남성성하고는 사뭇 다른, ‘부드러운 남자들’이다. 이 남자들은 모두 환경 운동을 통해 페미니즘과 긴밀하게 만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 영향을 받아 자신의 남성성을 개혁하려 했다. 6장의 내용은 시드니의 게이 커뮤니티에 연관된 남자들을 만나 기록한 인터뷰에 기초한다. 이 장에서는 종속된 남성성의 대표 사례로서, 젠더 정치에서 모순된 위치에 있는 게이 남성성을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7장에서는 합리성이라는 쟁점에 연관해 헤게모니적 남성성과 공모적 남성성을 다룬다.
8장에서는 남성성의 역사를 고찰한다. 약 4세기에 걸쳐 진행된 근대적 젠더 질서 전체의 형성 과정, 곧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가져온 변화, 젠더화된 계획으로서 제국의 탄생, 상업 자본주의 중심지들의 성장, 유럽의 대규모 내전이 견고하게 만든 가부장적 질서 등의 풍경 속에서 남성성의 생산에 관해 살펴본다. 또한 젠더 질서를 향한 페미니즘의 도전, 산업 자본주의에서 젠더화된 축적 과정의 논리, 제국의 권력 관계라는 세 가지 변화의 원인이 가져온 일련의 종속되고 주변화된 남성성들의 출현을 살펴본다. 9장에서는 네 가지 형태의 남성성의 정치를 다룬다. 《남자들은 왜 그럴까?》, 《내면의 남성》, 《무쇠 한스 이야기》, 《열망》 네 편의 주요 저작을 분석해 남성성 테라피에 관해 살펴보고, 총기 로비 정치를 통해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수호하는 흐름에 관해 고찰하고, 동성애 해방 운동과 반성차별 남성 운동이라는 두 가지 흐름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10장에서는 오늘날 남성성에 관한 지식이 젠더 관계와 관련된 사회 정의의 프로젝트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찰한다.
젠더 평등의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운 남성성의 정치를 향해
남자들은 젠더 관계들의 모순과 교차 때문에 가부장제의 수호에서 계속 떨어져 나가며, 여기서 남성성들의 새로운 배치 형태와 변형을 가져올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고 코넬은 《남성성/들》의 말미에서 말한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치를 전개하려면 정확한 지식뿐 아니라 생생한 창의성이 필요하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남성성/들》은 변화하는 세계의 새로운 무대 위에서 펼쳐질 새로운 남성성의 정치를 예비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통찰을 던져준다. 젠더 평등과 사회 정의라는 프로젝트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남성성/들》과 함께 ‘남성성들’의 이론과 역사와 실천을 비로소 하나의 흐름으로 일관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