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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여성혐오, 세월호, 비정규직, 대중인문학, 갑질, 흙수저… 문화평론가 문강형준 《한겨레》 크리틱을 책으로 만나다! 대한민국의 안과 밖, 우리의 ‘헬조선’ 생존기 문화평론가 문강형준이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 ‘크리틱’을 모았다. 200자 원고지 8.5장 남짓한 짧은 글에 담긴 한국 사회에 관한 통찰은 날카롭다. 지은이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대표되는 청년들의 현실과 그들을 향한 위로를 보며 “가장 거친 폭력들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가장 부드럽고 달콤한 언어들이 번성한다. 사회의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청춘들을 내면의 고민과 아픔이라는 심리적 틀 속에 묶어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보인 뒤늦은 눈물과 출국, 외국 순방에서 한 외국어 연설 등 박근혜 대통령을 매개로 한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 진단은 묵직하다. 이후, 촛불 시민은 대통령 박근혜를 끌어내렸다. 과거를 ‘불러내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8)의 미덕도 찾아낸다. 과거에의 ‘향수’는 현실도피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잊어버린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라는 것이다. 저자에게 부자와 빈자가 서로 돕고, 전교 1등과 999등이 친구가 되고, 이웃의 상처가 외면당하지 않는 1988년 ‘쌍문동’ 이야기는 ‘좋은 세상’에 대한 집단적 향수로 읽힌다. 그래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드라마 주제가의 다음을 함께 부르게 한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우리 시대는 ‘재난의 시대’다. 원자력발전소 폭발, 테러리즘, 금융 위기에는 국경이 없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재난을 목도했다. 세월호 침몰. 그날 이후, 피해 가족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개인의 삶과 사회 를 되돌아보게 한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재난은 상실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애도’라는 정동(情動·affect)을 동반한다. 애도의 고통은 심리적 차원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애도의 행위가 죽음을 만들어낸 거대한 질서를 인식하게 될 때, 애도는 외적이고 사회적 차원의 투쟁으로 격상될 수 있다. 세월호 비극을 애도하는 국민의 슬픔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할 기회를 열어젖히는 정치적 성격을 갖게 된다. 그러나 세월호 비극을 국가가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희생자’만이 드러났을 뿐, 책임소재의 확정도, 제도적 변화의 요청도 사라졌다. 우리 시대는 재난도 만들어내지만 정동도 만들어내고 관리한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기쁨, 행복, 긍정과 슬픔과 우울을 오가며 소진된다. 한남동의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읽는 공간이 되었다. 인간의 공간이 자본의 공간으로 바뀌는 젠트리피케이션은 핫 플레이스를 넘어 대학으로 이어졌다. 캠퍼스가 깔끔해지고 고층화될수록 인문-사회-예술은 대학에서 주변화되어 간다. ‘국가대표 걸그룹’을 뽑는 <프로듀스 101>은 남성/강자의 시선을 내면화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약자들이 생존하는 방식의 엔터테인먼트 버전이다. 꿈을 향해 잔인함을 감내하는 어린 소녀들의 모습은 결국 우리의 모습이다. 소녀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국민 프로듀서’는 다음날 아침 일터에 나가 다른 ‘갑’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에너지를 불살라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프로듀스 101>은 걸그룹을 뽑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생사의 갈림길이 일상인 한국인의 삶의 방식에 대한 개론서라고. ‘메갈리아’ 등장 이후 일상의 차별과 폭력에 대한 경험을 고발하기 시작한 여성들의 관심은 페미니즘으로 이어졌다. 여성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생존 문제다. 여성들은 애도와 분노를 담은 포스트잇으로 강남역을 물들였고, ‘티셔츠’ 한 장 때문에 교체된 성우를 위해 여성들이 연대해 시위에 나섰으며 검은 옷을 입고 ‘낙태죄’ 폐지 운동에 뛰어들었다. 촛불 정국에서는 대통령 퇴진과 함께 광장의 여성혐오를 비판하며 젠더 민주주의를 외쳤다. 문강형준, 부모 성을 같이 쓰는 이답게 여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균형감 있다. 강자인 남성에 의한 여성혐오는 성추행부터 살인까지, 취업차별에서부터 유리천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의 폭력을 부르지만, 그에 대한 여성의 반발은 오직 ‘말’의 영역에만 있으며 그 어떤 실제적 결과도 낳지 못한다는 것을 저자는 드러낸다. 저자에게 여성혐오는 ‘약자’ 일반에 대한 혐오의 다른 버전이다. 생물학적 성별이 일상적 차별과 폭력에서부터 죽음에까지 ‘쉽게’ 연결되는 성차별 사회. 오늘 한국 여성들의 분노는 이 점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감각의 제국(개정판)』은 또렷이 말한다. 저자가 『감각의 제국(개정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이야기’의 힘이다. 저자는 사회 현상과 사건, 영화, 드라마, 책 등 여러 문화 현상을 분석하면서 오늘날 한국인을 둘러싼 ‘이야기’들의 맥락을 짚어낸다. 저자에게 ‘문화비평’이란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달려들기 전에 그 문제의 맥락이 된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지 판단하는 일이다. 그러면서 어떤 이야기를 취하고 어떤 이야기를 버릴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가져야 함을 역설한다. 이 책이 여러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되고, 대학생을 비롯한 청춘의 필독서로 읽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