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불후의 명작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마광수 교수의 대표적 시집이다. 1977년 잡지 《현대문학》에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 , 등 여섯 편의 시들이 박두진 시인에 의해 추천되어 발표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게 되었다.
그는 시로써 문학생활을 시작했고, 발표한 시를 바탕으로 그것을 산문화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마광수 교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나 『사랑받지 못하여』, 『왜 나는 순수한 민주주의에 몰두하지 못할까』 같은 에세이집 제목도 먼저 쓴 시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또 장편소설 『권태』나 『광마 일기』, 그리고 『즐거운 사라』나 『불안』도 먼저 쓴 시의 제목이나 이미지를 빌린 것이다. 그러므로 『가자, 장미여관으로』에 실려 있는 작품들은 마광수 교수의 정신세계의 응축이라고 할 수 있다.
마광수 교수의 문학과 사상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반드시 읽고 지나가야 할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애독자들의 끊임없는 요청에 따라 이번에 종이책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 이 시집에 마광수 교수의 모든 문학적 상상력의 씨앗이 응집되어 있다. 그 씨앗이 자라 소설과 에세이로 열매 맺었다.
◎마광수의 『가자, 장미여관으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넘어
-독일 시인 에리히 케스트너와의 교차점, ‘유머와 풍자’
이 시집은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 때문에 ‘야한’ 그러니까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통속적인 의미의 ‘야한’ 시들만 가득찬 시집이라고 세간에서는 오해를 하고 있다. 하지만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독자라면 이 생각이 크나큰 오해와 편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이 시집과 동명의 연극도 있고, 최근에 영화도 개봉했지만 오리지널인 이 시집을 정독하게 된다면 의외로 인생과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가득 차 있는 철학적인 세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아래에 전문을 실은 「6. 인생은 즐거워」 중에서 ‘인간?’이라는 시와 「4. 가자, 장미여관으로」중에서 ‘업(業)’이란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모두 여기에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밖에도 ‘손’이라든지, ‘천국과 지옥’이라든지 등등의 시들에선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이 담겨 있는 철학적 시를 다수 만나볼 수 있다.
사실 성적 아이콘이라는 마광수에 대한 편견과 오해의 틀에서 벗어나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읽어본다면 이토록 유머와 슬픔을 자아내는 철학적인 시집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불후의 명작인 이 시집을 통해 시인 마광수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시니컬한 태도의 이 시집의 느낌은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인 시각을 가진 독일 시인인 에리히 케스트너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에선 『마주보기』시집으로 유명한 에리히 케스트너는 세상과 사회에 대한 냉혹한 관찰과 풍자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에리히 케스트너가 나치스 시대에 집필금지, 분서(焚書)나 체포 등 헤아릴 수 없는 박해를 받았던 것도 마광수 교수가 문학적 표현의 자유를 위한 체포, 구금 등과의 역사와도 교차점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가자, 장미여관으로』 시집이 단지 ‘외설스런 시집의 대명사’로만 잘못 알려진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이번 개정판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에리히 케스트너와 견줄 수 있는 냉철한 유머와 풍자를 읊는 시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인간?
언젠가부터 내 눈에는
여러 가지 싱싱한 생선 요리들이
맛있는 음식으로서가 아니라
비참하고 끔찍한 시체들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생긴 것이 사람과 달라서 그렇지
그것은 틀림없이 불쌍한 시체
더구나 사람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통닭 요리나 돼지머리 고기 같은 것을 보면
그것은 더욱 비참한 시체로 보인다
인간은 너무나 흉악하고 잔인한 동물
만물의 영장도 무엇도 아니다
살아 있는 새우를 튀겨 먹는다든가
꿈틀대는 낙지나 장어를 칼로 토막내어
아작아작 씹어 먹는다든가
미꾸라지를 산 채로 두부와 함께 끓이다가
미꾸라지들이 뜨거움을 견디다 못해
두부 속으로 파고들어 결국 죽어 버린 것을
맛있다고 게걸스럽게 먹는 사람들이
나는 죽이고 싶도록 밉다
만약에 미꾸라지가 자기라고 생각해 봐,
어떻게 그렇게 태연히 먹을 수가 있겠어?
살아 있는 개를 몽둥이로 때려 죽여 보신탕을 끓여 먹으며
“역시 개는 이렇게 천천히 때려잡아야 고기가 연하거든”
하는 사람들도 밉다
낚시질을 무슨 도(道)라도 되는 것처럼 선전해대는 사람들은 더욱
더 밉다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것이
어떻게 도(道)요 고상한 취미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상징으로든, 비유로든, 휴머니즘으로든
살생을 합리화하는 것은 나쁘다
인간은 너무나 이기적인 동물
너무나 너무나 잔인한 동물
언젠가 한번 되게 당해 봐야만 정신이 번쩍 들
정말 한심하고 추악한 동물
(1982)
업(業)
개를 한 마리 기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식 낳고 싶은 생각이 더 없어져 버렸다
기르고 싶어서 기르지도 않은 개
어쩌다 굴러 들어온 개 한 마리를 향해 쏟는
이 정성, 이 사랑이 나는 싫다.
그러나 개는 더욱 예뻐만 보이고 그지없이 사랑스럽다
계속 솟구쳐 나오는 이 동정, 이 애착은 뭐냐
한 생명에 대한 이 집착은 뭐냐
개 한 마리에 쏟는 사랑이 이리도 큰데
내 피를 타고난 자식에겐 얼마나 더할까
그 관계, 그 인연에 대한 연연함으로 하여
한 목숨을 내질러 논 죄로 하여
나는 또 얼마나 평범하게 늙어갈 것인가
하루 종일 나만을 기다리며 권태롭게 지내던 개가
어쩌다 집안의 쥐라도 잡는 스포츠를 벌이면 나는 기뻐진다
내 개가 심심함을 달랠 것 같아서 기뻐진다
피 홀리며 죽어가는 불쌍한 쥐새끼보다도
나는 그 개가 내 개이기 때문에, 어쨌든
나와 인연을 맺은 생명이기 때문에
더 사랑스럽다
하긴 소가 제일 불쌍한 짐승이라지만
내 개에게 쇠고기라도 줄 수 있는 날은 참 기쁘다
그러니 이 사랑, 이 애착이 내 자식새끼에겐 오죽 더해질까
자식은 낳지 말아야지, 자신 없는 다짐일지는 모르지만 정말 자식
은 낳지 말아야지
모든 사랑, 모든 인연, 모든 관계들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되도록
이를 악물어 봐야지
적어도, 나 때문에, 내 성욕 때문에 내 고독 때문에, 내 무료함 때
문에
한 생명을 이 땅 위에 떨어뜨려 놓지는 말아야지
(1979)
◎‘장미여관’은 성(性)적 판타지의 상상 공간
‘장미여관’은 내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여관이다. 장미여관은 내게 있어 두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나그네의 여정(旅程)과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여관이다. 우리는 잡다한 현실을 떠나 어디론가 홀가분하게 탈출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살아간다. 나의 정체를 숨긴 채 일시적으로나마 모든 체면과 윤리와 의무들로부터 해방되어 안주하고 싶은 곳―그곳이 바로 장미여관이다. 또 다른 하나는 ‘러브호텔’로서의 장미여관. 붉은 네온사인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곳, 비밀스런 사랑의 전율이 꿈틀대는 도시인의 휴식공간이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