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유머와 엽기, 기발한 상상력의 『자살가게』 저자
장 퇼레가 쓴 또 하나의 걸작!
인간에게 운명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삶과 죽음, 그리고 죄의식의 문제!
“몇 년 전 경찰이 저희 집에 와서 남편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살로 결론 내렸죠. 한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남편을 12층에서 밀었으니까요.”
처벌받기를 원하는 여자와 이를 만류하는 경찰 사이의 심리학적 경로를 통해
들추어지는 양심의 무게
앞으로 세 시간 후면 퐁투아즈 경위는 당직을 벗어나, 일요일 하룻동안 골치 아픈 경찰업무의 고뇌와 파렴치한 일들을 깨끗이 잊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한데 바로 그 순간, 한 여자가 경찰서로 들어와 남편을 살해했다고 자백한다.
도대체 그녀는 언제 어떻게 남편을 살해했다는 말인가?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아파트 12층 창문 밖으로 남편을 떠밀었다고 한다.
이유는? 남자가 툭하면 술을 퍼마시고 아내와 아이들을 구타했단다.
그 당시 어떻게 여자가 체포되지 않을 수 있었는가?
그녀는 남편이 자살을 했다고 진술했고 모두가 그 말을 믿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에 와서 자백을 하는 것인가?
왜냐하면 뉘우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럼 왜 하필 오늘 저녁인가? 실은 십 년 전부터 매일같이 그런 심정이었고, 더군다나 내일이면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때문이란다.
퐁투아즈 경위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다. 그런 바보 같은 얘기는 아예 듣고 싶지가 않다. 일개 망나니 같은 놈을 사회로부터 깨끗이 제거함으로써 완전범죄를 저지른 이 여자를 결코 체포하지 않겠노라고 그는 생각한다. 죄책감? 그런 건 집에나 처박혀서 고민하라지. 그러나 살인을 저지른 여자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얼떨결에 남편을 살해한 뒤 10년의 기간을 죄의식이라는 중력에 이끌려
마침내 경찰서를 찾은 한 여인……
한 여인이 경찰서를 찾아와 10년 전 남편을 살해했다고 고백한다. 내일이면 공소시효 만료이고, 그녀가 마주 대하고 있는 경관은 세 시간 후면 퇴근이다. 자신을 체포해주기를 애원하는 여인, 필사적으로 이를 만류하는 당직 경관, 세 시간 동안 살인자와 경찰이 내면의 폭력으로 맞서는 가운데 진실에서 퍼올려진 매우 기이한 대화가 시작된다.
그녀는 12층에 위치한 아파트 창문에서 남편을 밀어 떨어뜨렸다. 성적 학대와 무책임, 그리고 그녀와 아이들을 구타했기 때문에. 남편은 여러 번 자살시도를 한 전적이 있으며 그날도 막 정신병원에서 나왔다. 의심의 여지 없이 사건은 자살로 종료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살인을 했다고 한들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하필 오늘 굳이 그 죄목을 들추어내야만 하겠는가. 여인은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죽여서 아이들의 미래를 보호하고자 했고, 남편은 이 사회에서 사라져도 좋을 망나니 같은 인간이다. 퐁투아즈 경관에게 중요한 것은 다만 조사기록을 남기지 않고 속 편히 휴일을 만끽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라도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자정을 넘기는 일뿐이다.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게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죄인의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경찰에게는 곧 범죄이기에.
“가세요!”
마치 의자에 앉은 수고양이를 내치듯 그는 툭 내뱉었다.
“네?”
죄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퐁투아즈는 자리로 돌아와 여자 맞은편에 앉은 뒤, 책상에 팔꿈치를 괴고 두 손을 모은 채, 상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도망치란 말입니다.”
“뭐라고요?”
“내 말 잘 들으십시오, 부인. 나는 당신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은 겁니다. 그러니 어서 당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안녕히 가세요. 난 이 문제에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앞으로 평생을 감방에서 썩을 거란 말입니다. 자자, 어서 떠나요!”
맞은편의 여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경찰관은 버럭 신경질을 낸다.
“내 참, 어이없어서! 당신은 그놈의 남편이란 작자와 뭐가 영 안 맞아돌아갔던 거야, 그러다가 하루는 그를 창문에서 밀어 떨어뜨린 거라고, 좋다 이거야…… 근데 아무도 본 사람이 없고 경찰은 감쪽같이 속아넘어갔지. 이봐요, 아줌마, 내 분명히 말하건대 당신은 완전범죄에 성공한 거요…… 어쨌든 대단한 일을 해치운 셈이지! 그런데 여러 해가 지난 다음 자진해서 이렇게 납시다니…… 기껏 완전범죄를 행하고 이제 와서 철창신세를 지시겠다? 내 경찰생활 통틀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외다!”
예민한 영혼의 소유자인 여자는 새로운 환멸에 부닥치며 고개를 떨군다. 퐁투아즈는 그녀 쪽으로 잔뜩 몸을 기울이며 이렇게 말한다.
“애당초 나를 찾아오지 말았어야 하는 겁니다…….”
여자가 갑자기 고개를 쳐든다. 그녀의 입술과 경찰관의 갈라터진 입술이 어쩌다 서로 스친다.
“저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요.” (p.53)
삶과 죽음의 양극에서 도덕적 의식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주제를 다루며
인간의 속마음을 치밀하게 천착해 들어간 작품
죄의식과 암울한 일상의 중압감에 시달리는 두 주인공은 각기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타인에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의 대화는 따라서 때로는 감정의 배출구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차츰 문제를 파헤쳐가는 자기 내부의 울림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매우 진실하고 순수한 그들의 대화들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완전히 책 속에 빠져들게 된다. 남편을 창문에서 밀어 떨어뜨리고 10년 동안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스스로 경찰서를 찾은 여인과, 경찰의 직무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남자의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신을 굳이 잡아가라고 요구하는 범법자와 그를 기어코 잡아들이지 않겠다고 버티는 경찰관 사이에는 그 어떠한 변화도 개입할 여지가 없을뿐더러, 그들의 운명 또한 이미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한쪽의 자백을 시작으로 두 입장의 속내 이야기가 번갈아 공개되는 가운데 범법자는 오히려 정상참작이 가능할 건전한 인물임이, 경찰관은 탈법과 타락에 허덕이는 병든 존재임이 점차 드러난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두고 죄의식의 도덕적 이면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장 퇼레는 다시 한 번 그 특유의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완전범죄를 종용하는 경찰과 체포를 당하고자 안간힘을 다하는 여인 사이의 비극적 아이러니를 들추어내는 이 훌륭한 소설 뒷면에서 우리는 굴절된 사회의 고난을 엿볼 수 있다.
매년, 기일을 앞둔 며칠 전에 여자는 규칙적으로 하나씩 늘어나는 죽은 남편의 사진과 맞닥뜨려야만 했다.
지미의 그 사진은―원래 사이즈 혹은 조금 확대한 상태로 흑백 복사된 증명사진―집 안 구석구석, 예기치 못할 장소에서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며 여자를 놀라게 했다. 예컨대 부엌에서 붙박이 찬장 문을 여는 순간, 문짝 안쪽에 압정으로 고정된 A4용지 크기의 남편 얼굴이 불쑥 튀어나오는 식이었다. 찻잔을 집어들면, 거기 받침접시 한복판에 찻숟갈 크기의 남편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형으로 빙 둘러가며 찍힌 R?publique fran?aise(프랑스 공화국)라는 우체국 소인의 일부가 복사된 남편의 얼굴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가루커피통 속에 계량컵을 담갔다가 빼내면 아라비카 수북한 꼭대기에 지미의 얼굴이 얹혀 있었다. 그러면…….
그러면 여자는 커피통 뚜껑을 그대로 닫고, 잔을 내려놓으며, 찬장 문을 닫을 뿐, 무슨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지 영문을 몰랐다. 해가 거듭할수록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갔다. 도대체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