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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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의 책 소개 "어쩌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착각이 나를 건강하게 하는지 모른다" 문학동네시인선 142 안주철 시집 『불안할 때만 나는 살아 있다』를 펴낸다. 200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통해 등단한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다. 근 8년 만이다. “해야 하는 일에 구멍이 뚫리면 여유가 생긴다. 조급해지지만 그것도 여유다”라 밝힌 시인의 말을 짧아서가 아니라 되새김이 깊어서 여러 번 읽고 본다. 보니 들린다, 그의 시심이. 들리니 열린다, 그의 시세계가. 총 3부로 나뉘어 전개되는 시집이다. ‘불안할 때만 나는 살아 있다’라는 제목에 일단 머물게 되는 시집이다. 그렇지. 불안하면 불편하고, 불편하면 뒤척이지. 편안하면 안도하고, 안도하면 지나치지. 뒤척여야 단추처럼 새로 달 수 있는 눈, 그런 시인만의 제3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떠한가. ‘모르는 글자에서 꽃이 피’는 걸 홀로 보게 한다. ‘사라지면서 모든 걸 남기는 저녁이 온다’할 때 그 남김을 홀로 좇게 한다. ‘궁금할 때마다 밤’이어서 홀로 깨어 있게 한다. 그 홀로 아래 혼잣말 같은 사유 아래 그를 좇아 홀로 서 있어보니 이거 참, 왜 이렇게 슬픈가. 체념이 있고 단념이 있다. 부푼 생각을 오롯이 다 껴안은 마음이 제 전부를 탈탈 털어낸 뒤고 싹둑 끊어낸 뒤여서일 거다. 움켜쥔 자의 품은 좁고 덜어낸 자의 품은 넓다. 그게 ‘여유’라는 말로 다 수렴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열리는 백지 가운데의 빔 속에서 투명한 시의 어느 의자에 앉아서든 읽는 우리들은 호흡을 가다듬을 수가 있다. 그러면 에둘러보게 되는 것, 내 사는 안팎이 혹여 허공이라고 해도 손으로 휘휘 저어보게 되는 것, 그렇게 보이는데 안 잡히고 안 보이는데 잡히는 것만 같은 ‘착각’으로 시간의 흘러감을 배우고 “더이상 나이를 먹지 않아도/될 것 같은 생/이제 죽어도 산 것과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후회할 것도 없는 생”(「내가 나에게 묻는 저녁」)이라 나를 두고 보게 되는 것, 그게 우리가 시로 삶을 재확인하는 과정이 아닐까. 여하간 그 과정을 참도 쓸쓸히 참도 짠하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안주철의 시들. 나보다 앞서 선 사람들의 등을 보며 지난 시간을 반추할 때의 그 헛헛함, 특히나 알다가도 모를 가족이라는 이름의 관계, 비는 오고 나는 모르겠고 그래 생은 “어디까지가 눈물인지” “외롭다 그립다 쓸쓸하다/이런 말들 밖에서 가만히/세상을 들여다보면/고요와/고요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귀를 기울이면//위로가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귀를 기울이면//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새떼가 되어 날아가듯이”(「비가 오겠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남겨지는 그 무엇, 짠 것인가 쓴 것인가 헷갈리게 남겨진 이 감정 앞에 그리하여 시인은 “친하게 지내면/친하게 지낼수록 서러워지는 친구들”(「서러워지는 친구들」)이라 일단은 살기 위해 조금 더 살아보려 스스로 제 감정을 추스르고도 있는 것일 게다. 욕심을 버리고 집착을 지우는 데서 가벼워지는 시. 그래서 들릴 수 있는 시, 들려 올림이 가능해져버리는 시. 거기서 이 생 다음의 생을 일찍부터 또 벌써부터 기대하게 하는 시. 불투명하고 가늠이 안 되나 있을 것이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걷게 하는 시, 나아가게 하는 시. “몇 조각의 뼈가 발견되었고/몇 조각의 뼈가 기적같이 아이가 되었다”(「아이가 아이를 들고」) 하는 이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시, 덜 아프게 하는 시, 아픔의 통점을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서 앗아가는 시. 안주철의 시는 쉽게 읽힌다. 어쩌면 빠른 속도로도 읽힌다. 그러나 그 쉬운 만큼, 그 빠른 만큼 다시금 처음으로 와 서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때의 쉬움은 처음보다 어려워지고 그때의 빠름은 처음보다 늦되어진다. 혼잣말 같은 그의 시가 처음에는 헐렁한 것 같으면서도 끝 간 데서 아주 팽팽 조여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데는 그 반복의 읽힘에 근거하기도 해서일 거다. 왜 슬플까 하면 내가 겪은 이야기고 왜 눈물이 날까 하면 내가 겪을 이야기이기도 해서일 거다. 그런 의미에서 안주철의 시는 공감의 보트다. 속도를 이기고 속력을 이겨먹으려는 이기 없이 물살 따라 물결에 몸을 맡겨 흘러가고 있는 그런 보트다. 가벼운 고집이다. 가여운 우리들이다. 그리하여 궁금할 때마다 밤이 되는 당연함이다. 그러하니 이 시를 마지막에 얹고 감으로 편해지는 내 심사다. 결국 아버지 죽었다 평생 병든 채 살았고 반전 없이 마지막도 병들어 죽었다 아버지가 죽었는데 왠지 나의 일부를 끌고 간 느낌이 든다 그게 무언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 죽을 때 가지고 간 게 도대체 뭐예요? 죽으면서 저승에 뭐 들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제삿날 아버지 잠깐 왔다 닭갈비만 먹고 간다 가끔 내가 올려놓은 도넛을 먹기도 하지만 한입만 먹고 갔는지 반쪽은 달지 않다 살다보면 바쁜 일도 많고 잊고 지내는 것도 많아서 세상에 대한 불만도 피곤해서 갖지 못하지만 아버지, 도대체 뭘 가지고 간 거예요? 궁금할 때마다 웃는다 궁금할 때마다 밤이다 -「궁금할 때마다 밤이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