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

오에 겐자부로 and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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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 분야에서 각기 일본을 대표하는 오에 겐자부로와 오자와 세이지. 둘은 1935년에 태어난 동갑내기다. 오에는 시코쿠의 시골마을에서, 오자와는 만주에서 태어났다. 제국주의 시기,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의 혼란기, 경제 발전기를 경험한 두 거장은 이 대담집에서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함께 살아갈 동시대인과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에게 예술과 삶을 이야기한다. 예술 없이는 인간이 지탱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획일화된 국가와 조직이 아닌 민주주의 시대의 건강한 개인과 세계인만이 유일한 희망임을 전한다. 오에 겐자부로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주목 받기 시작하여 주요 문학상 여럿을 수상하고 199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일본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오자와 세이지는 1959년 프랑스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 우승 이후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를 시작으로 1975년부터 30년 가까이 미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인 보스턴 심포니의 음악 감독을 지냈다. 오에는 주목받던 신인 시절, 지적 장애를 지닌 아들 히카리의 출생과 더불어 작품 세계가 크게 변화하여 공존과 화해를 본격적으로 주제 삼기 시작한다. 오자와는 서구의 동양인 차별과 NHK 교향악단 사태 등 도전을 마주하며 각고의 노력으로 동시대를 대표하는 지휘자 반열에 오른다. 둘 모두 제국주의와 패전을 거치며 극단적인 세계관의 변화를 겪었으며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에 맞서 훌륭한 개성을 갖춘 개인으로 우뚝 섰다. 이 대담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과 신뢰를 바탕 삼아 깊이 있는 주제들을 메기고 받으며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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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우리는 동갑내기 _ 오에 겐자부로 살아온 시대, 지금 살고 있는 시대 예술은 인간을 지탱하는 것 ‘새로운 세계인’을 바라며 대담에 감사하며 _ 오자와 세이지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Description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 동갑내기 두 거장의 예술론·교육론 “예술은 인간을 지탱하는 것” 한 시대를 공유하는 두 동갑내기 거장이 걸어온 삶과 걸어갈 삶을 통찰한다. 문학과 음악 분야에서 각기 일본을 대표하는 오에 겐자부로와 오자와 세이지. 둘은 1935년에 태어난 동갑내기다. 오에는 시코쿠의 시골마을에서, 오자와는 만주에서 태어났다. 제국주의 시기,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의 혼란기, 경제 발전기를 경험한 두 거장은 이 대담집에서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함께 살아갈 동시대인과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에게 예술과 삶을 이야기한다. 예술 없이는 인간이 지탱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획일화된 국가와 조직이 아닌 민주주의 시대의 건강한 개인과 세계인만이 유일한 희망임을 전한다. 동갑내기 두 거장이 나누는 예술과 삶에 대한 대담 오에 겐자부로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주목 받기 시작하여 주요 문학상 여럿을 수상하고 199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일본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오자와 세이지는 1959년 프랑스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 우승 이후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를 시작으로 1975년부터 30년 가까이 미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인 보스턴 심포니의 음악 감독을 지냈다. 오에는 주목받던 신인 시절, 지적 장애를 지닌 아들 히카리의 출생과 더불어 작품 세계가 크게 변화하여 공존과 화해를 본격적으로 주제 삼기 시작한다. 오자와는 서구의 동양인 차별과 NHK 교향악단 사태 등 도전을 마주하며 각고의 노력으로 동시대를 대표하는 지휘자 반열에 오른다. 둘 모두 제국주의와 패전을 거치며 극단적인 세계관의 변화를 겪었으며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에 맞서 훌륭한 개성을 갖춘 개인으로 우뚝 섰다. 이 대담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과 신뢰를 바탕 삼아 깊이 있는 주제들을 메기고 받으며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오자와 씨와 나는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다. 오자와 씨는 중국에서, 나는 일본 시코쿠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2차 대전 패전 후 사회적 혼란을 겪은 일본이 재건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기운이 움트지 않았더라면, 각자 다른 분야에서 첫발을 내디딘 두 젊은이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당시 의지할 만한 것이 있다면 오로지 민주주의 기운뿐이었다. 사실 지금도 민주주의 외에는 의지할 것이 없지만 말이다. 당시의 소년은 그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들임으로써 해방감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것이 오자와 씨나 내게 주어진 숙명이었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소년 시절의 우리를 배신하지 않고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일하다가 생을 마칠 것이다.” (오에, 8쪽) 문학은, 음악은, 개인적인 것 두 사람은 외부로부터 격리된 섬에 살며 개인보다 조직과 국가를 우선하는 경향이 강한 일본을 경계한다. 이기적인 개인이 아닌 책임감 있는 개인이 혼자 서는 데서 건강한 인간이 시작된다고 입을 모은다. 오에가 만들어낸 세계적인 문학은 장애인 아들과의 공생을 깊이 궁구한 개인적 삶의 결과이며 오자와가 만들어낸 세계적인 음악은 동양인으로서 서양 음악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수준 높은 음악’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추구한 결과이다. 단일 언어인 한국어를 사용하며 분단된 반도라는 사실상의 섬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도 이 문제 제기는 유효하다. “음악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입니다. 물론 어딘가에 가서 지휘를 한다거나 청중과 오케스트라가 없으면 음악회를 열 수 없는 점 등을 무시해선 안 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요. 저도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음악을 시작했어요.” (오자와, 25쪽) “저는 일본에 없는 소설을 쓰자는 생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니 오자와 씨 말씀대로 아주 가까운 곳, 그러니까 바로 제 곁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가 있더군요. 그때부터 아이는 제 삶과 일의 에너지원이었습니다. ... 사실 우리 인간은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이어져 와서 다시 아이의 아이로 계속 이어져 가는 존재일지도 모르지요.” (오에, 28쪽) “회사도, 소사이어티도, 조직도, 심지어 국가도 중요하지만, 저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오자와, 82쪽) “‘나는 회사를 위해 산다’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요즘엔 좀 덜하지만 버블이 터지기 전엔 유럽이나 뉴욕 주재 대기업 직원들은 일본이라는 국가보다 자기 회사를 더 중요시했어요. 그 무렵엔 활기 넘치는 일본인이 꽤 있었는데, 그런 활기는 국익을 앞세운 데서 나오는 게 아닌 듯했습니다. 모두 사익을 위해, 회사를 위해 열심히 뛰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거품이 꺼지니까 다들 회사를 믿을 수 없어졌었지요. 그 후 사익이란 말이 움츠려 드는가 싶더니 ‘국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더라고요. ‘국익을 생각해야 한다’면서요. 저는 국익 따위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익’, ‘국익’ 하는 건 일본밖에 없는 것 같아요. 국가란 무언가 다른 수준에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힘을 지닌 쪽으로 나아가야 해요.” (오에, 85쪽) 삶을 이끌어준 사람들과의 만남 오자와 세이지는 사이토 히데오, 레너드 번스타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의 훌륭한 스승을 모시며 서양 고전 음악의 깊이를 전수받았다. 오에 겐자부로는 와타나베 가즈오의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을 읽고 감명 받아 스승이 교편을 잡은 도쿄대학교로 진학한다. 스승 사이토 히데오의 이름을 딴 사이토 기넨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교육하는 오자와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오에는 훌륭한 교육이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사실 교육은 시스템만 가지고는 해결이 안 돼요. 무엇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중요해요. 그러니까 사람 자체가 중요하다는 얘기지요. ... 가르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교육의 질이 확 달라져요.” (오자와, 86쪽) 대담 가운데 오에와 오자와는 삶에서 만난 훌륭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일본의 대표적인 음악가 다케미쓰 도루를 회상하며 그의 인품과 작품에 젖는다. 오에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꾸었던 큰아들 히카리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음악가로 성장하여 이번 대담에서 오에의 곁을 지킨다. 친구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에의 오랜 벗 이타미 주조(히카리의 외삼촌)의 죽음을 위로하며 일러준 브람스의 〈주제와 변주, 작품 18b번〉을 히카리 역시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주제와 변주〉의 원곡을 묻는 오에에게 브람스의 〈현악 육중주 1번〉의 2악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문학도, 음악도, ‘일래버레이트elaborate’가 필요하다 오에 겐자부로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오후 2시까지 꼬박 여덟 시간 동안 글을 쓰고 나머지는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삶을 이어왔다. 장편 한 편을 아홉 달 걸려 쓰고, 한두 해 들여 수정하는 작업의 연속이다. 오자와 세이지는 지휘하는 총보 전체를 암기하여 이해하는 엄청난 노력으로 음악 전체를 파악하고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왔다. 이 대담에는 베토벤의 교향곡 전체를 외워 악보에 적는 사이토 히데오 선생의 교육 방법이 등장한다. “젊은 작가들, 나름대로 재능 있다는 작가들은 금방 휙 써서 책을 낸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그렇게 해서 성공한 작가들이 있고, 그렇게 해도 문제는 없지요. 하지만 긴 인생에 걸쳐서 계속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쓰는 일이 의미가 없고 와타나베 선생님의 말마따나 재미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라면 기본적으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창조하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작가는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므로 스스로를 부정할 줄 아는 용기도 있어야겠지요. 말하자면 작가로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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