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함’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선옥의 젠더이슈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의 이분법을 넘어
최근 몇 년 사이 젠더이슈가 쏟아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극단적인 남성혐오 현상이 나타나고, 또 다른 편에서는 안티-페미니즘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혐오가 혐오를 부추기는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 공정하게 판단하고 보도해야 할 언론마저 기울어진 보도 행태를 보이곤 한다. 보다 공정하고 명쾌한 시각으로 젠더이슈를 바라볼 수는 없을까?
《우먼스플레인》은 인터넷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은 유튜브 방송을 정리하여 엮은 책이다. 저자 이선옥은 일찌감치 ‘공정’과 ‘기본권’의 관점에서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의 이분법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왔다. 《우먼스플레인》에서 저자는 시사평론가 김용민, 개그맨 황현희와 함께 '안희정 사건의 문제점', '이수역 폭행사건의 진실', '20대 남성들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린 까닭', '여성도 반대하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등 사회적 논란을 촉발한 젠더이슈를 특유의 이성적 논리와 정제된 언어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설명하는 여자, 이선옥이 선 자리
‘노동·언론·여성·인권 문제에 앞장선 르포작가’로 평가받으며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선옥 작가. 그녀가 젠더이슈를 비판적 시각으로 분석하는 <우먼스플레인>의 논객으로 등장했다. 약자는 늘 옳다는 언더도그마에 빠진 진보 진영에 쓴소리를 하고, 페미니즘이란 이념을 시민의 기본권보다 우위에 두려고 하는 여성계를 경계한다. 딱, 안티 페미니스트로 오해받기 쉽다. 실제로 그런 오해와 비난이 저자를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페미니즘을 비판하지만 안티 페미니즘과도 거리를 둔다. 시민의 기본권을 무엇보다 우선시하고, 각각의 젠더이슈에서 생각해봐야 할 지점들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며, 독자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신중하게 판단할 것을 촉구할 뿐이다.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누구의 편도 아닌 자리, 굳이 말하자면 진리가 속한 자리, 그곳이 이선옥이 서고자 하는 자리이다.
결론이 나와 같은가, 다른가만을 따지기보다 그 결론이 타당한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인지를 세심히 살피고, ‘약자의 편이 무조건 옳다’는 섣부른 선언보다 ‘정의의 편에 서서 그 결과로 약자를 지키는 방식’을 고민한다. 더디더라도 그것이 결국은 모두를 위한 진보라고 믿기에.
페미니즘 뉴웨이브 시대
낯선 언어에 휘둘리지 않기
최근 5년 사이 강남역 살인사건, 메갈리아와 워마드의 탄생, 미투 폭로, 이수역 폭행사건 등이 연달아 일어났다. 이런 사건들은 여성혐오, 미소지니, 미러링, 젠더폭력, 성인지 감수성 등등 낯선 개념어들을 대중적으로 부각시키며 뜨거운 젠더이슈로 자리잡았다.
진보 언론과 지식인 들은 젠더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하기보다는 ‘그동안 억압받아 온 약자 여성’의 주장에 동의하고 힘을 싣는 모습을 보였고, 이에 동조하는 진보 정치인들에 힘입어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는 짧은 시간에 대중문화의 테두리를 넘어 교육, 법률, 정책에까지 반영되기 시작했다. 최근 발의된 미투 법안만 무려 200여 개에 이를 정도다.
이선옥은 이를 페미니즘 진영의 언어 선점이 ‘운동의 성공’으로 이어진 결과로 해석한다. 성별 전쟁의 최전선에는 페미니즘 진영이 빚어낸 낯선 개념어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사회적 판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페미니스트들의 일방적 정의를 섣불리 받아들인 결과, ‘여성혐오는 가능하지만, 남성혐오는 불가능하다’ ‘롤리타는 범죄지만 쇼타는 취향이다’라는 식의 비상식적 억지 논리가 버젓이 방송되고, ‘성인지 감수성’ ‘2차 가해’처럼 개념조차 모호하고 아직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용어들이 법률에까지 반영될 수 있었다고 진단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최근 몇 년 사이 등장한 낯선 개념어들이 명료하게 정의되어 있는지를 따져 묻는다. 법률에까지 스며든 개념들은 과연 오남용 없이 정확하게 쓰이고 있는가? 마치 개념의 명료화를 통해 언어의 미혹에서 벗어나려는 분석철학자처럼, 저자는 명료하게 정의되지 않고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통용되는 용어들의 ‘대강의 의미’가 놓치고 있는 지점들을 세세하게 밝혀 보인다.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묻게 될 것이다. 이렇게 제대로 정의조차 되지 않은 용어들이, 운동 차원의 주장을 넘어 법과 정책에까지 반영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가?
이런 작업을 통해 저자는 말하고 싶어 한다. 시민 모두의 기본권이 어떤 이념보다도 우선한다는 것, 그리고 오남용되는 용어 사용과 편향된 언론 보도 속에서 휘둘리지 않고 단단하게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모든 사안을 판단하는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훼손하지 않고, 시민 사이의 동등한 지위를 보장하는 '공정성'이다. 《우먼스플레인》은 이 기준을 근거 삼아 이슈마다 합리적인 판단과 분석, 대안을 제시하려 했다.” - 저자의 말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경우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통과를 앞두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단 하나의 표현 때문에 진통을 겪었다.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란 문구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젠더폭력’이란 개념이 생소했던 이들은 자구를 수정하든지 법안 제목을 수정하라고 요구했고, 어떻게든 여성폭력이란 단어를 지키고 싶었던 여당은 결국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수정했다. 그 결과 20~30대 남성들의 강력한 반발은 둘째 치고, 기존 법과 상충되어 법안 공포와 동시에 개정안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에 처했다.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이 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포퓰리즘’ 공약과 여성계의 과욕이 가져온 결과다. 저자는 여성을 법적 약자로 규정한 이 법이 헌법 11조가 보장하고 있는, 모든 이가 법률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을 권리를 위반한다고 말한다. 즉 개인이 어떤 성별에 속하느냐에 따라 법이 차별적으로 적용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법에 들어간 ‘여성혐오’나 ‘2차 피해’ 등 법률적으로 개념이 정의되지 않은 용어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에 원칙에 위배되며 이는 기본권의 후퇴를 가져온다고 우려한다.
예를 들어 수사 재판 과정에서 겪는 사후 피해, 따돌림, 불이익 조치 등을 지칭하는 2차 피해를 보자.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는 피의자, 피고인, 피해자 신분으로 겪는 절차들이 정해져 있습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필요한 절차들이에요. 그런데 2차 피해 개념을 이렇게 모호하게 집어넣으면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위해 진행하는 조치들까지도 2차 피해로 규정하게 돼요. 그래서 다른 범죄의 피의자나 피고인이라면 누렸을, 상대방과 동등하게 재판과 수사받을 권리를 침해하게 됩니다.”
이렇게 민주주의 사회의 소중한 가치들이 운동의 이름으로 훼손되는 상황에 대해 진보 진영이 문제의식을 가질 것을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촉구한다.
페미니스트 운동의 ‘성공’
그런데 우리는 더 나은 사회로 가고 있는가?
이선옥은 페미니즘 운동이 언어의 선점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운동의 성공’이 과연 우리 사회를 정말 더 나은 사회로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한다.
여성혐오, 남성혐오, 노인혐오, 난민혐오 등 어느 대상에든 ‘혐오’라는 말을 붙여 조어를 만드는 시대가 되었고, 동료 시민을 여혐, 남혐으로 낙인찍으면서 결국 혐오의 총량만 많아진 사회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한 문재인 대통령마저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큰일 날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성별 갈등과 혐오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자라면서 한 번도 이전 세대 같은 특혜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2030 남성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강자 남성’으로 프레임화하는 데 반발한다. 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