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19세기 사진은 ‘학자의 진정한 망막’이 되었는가? 학문의 도구로서 사진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는 무엇인가? 19세기 학자들이 창출한 사진과 영상의 기술 이미지 세계 그 사진들에 담겨 있는 ‘날것의’ 의미를 드러낸다! 문학동네에서 19세기 과학사진사, 과학과 사진의 관계를 다룬 책이 출간됐다. 저자가 추구해온 포톨로지(학문으로서의 사진)의 첫 결실이다. 이 책은 알퐁스 베르티옹의 범죄사진을 비롯해 특정 집단의 여러 사진을 합성해 이상적인 인간형을 찾으려 한 우생학자 프랜시스 골턴의 합성사진, 인체측정으로 인종의 서열화에 앞장선 인류학자 토머스 헉슬리의 인종사진, 정신병자의 발작 동작에서 신경정신병의 법칙을 찾으려 한 신경정신과 의사 장마르탱 샤르코와 알베르 롱드의 순간포착사진,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움직임을 세밀히 분석하여 그 메커니즘을 밝히려 한 생리학자 에티엔쥘 마레의 연속동작사진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그와 더불어 이들이 제기한 사진의 방법 문제, 사진의 가능성과 한계, 사진의 속성과 본질이 포톨로지적 관점에서 자세히 논의된다. 저자 박상우 교수(서울대 미학과)는 2008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동일화: 사진, 흔적, 디지털’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쉽게 말해 그의 전공은 증명사진이다. 증명사진이 어떻게 학문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두 쌍의 사진에서 동일인임을 입증하는 과정, 도망 다니는 신원 미상의 용의자를 가려내는 방법은 의외로 복잡하다. 개인의 정체성 확증은 동일성과 차이라는 철학적 사고가 전제돼야 하며, 사진의 객관성 확보는 사진의 규격화라는 기술적 난제의 선결을 전제로 한다. 19세기 파리에서 활동한 범죄수사학자 베르티옹이 제기한 이 문제들은 조그만 증명사진에 거대한 인문학적 배경이 놓여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저자가 연구한 것은 단순한 증명사진이 아니다. 여러 학문이 융합된 첨단 기술이자, 가장 객관적이고 명증한 과학의 도구로 각광받던 기록 미디어로서의 사진인 것이다. 이 책의 강점은 누군가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당시 학자들이 남긴 1차 문헌을 직접 해독하고, 방대한 사진 아카이브에서 그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필수적인 이미지를 예시한다는 데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상호작용을 통해 독자는 낯설고 강렬한 19세기 사진 아카이브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제1~3장은 알퐁스 베르티옹 범죄사진의 여러 측면. 식별의 철학, 대상의 비교와 분석을 위한 자료의 추상화, 디지털화, 사진과 언어의 관계, 말로 된 사진, 사진의 주요 속성 중 하나인 기술복제가 다뤄진다. 제4~5장은 프랜시스 골턴과 토머스 헉슬리의 인간 유형화 작업 양상. 합성사진으로 평균인을 찾으려는 골턴의 끈질긴 노력, 세계 각지 식민지에서 모은 인체측정사진으로 인종 아카이브를 구축하려 한 헉슬리의 프로젝트가 다뤄진다. 제6~8장은 사진에서 영상으로의 이행 과정. 샤르코의 살페트리에르 정신병원 의학사진은 인간 유형화라는 골턴, 헉슬리의 의도와 맥을 같이하고 정신병자의 발작 동작 유형화에 도입한 롱드의 순간포착사진은 움직이는 영상이라는 에티엔쥘 마레의 연속동작사진과 맥을 같이한다. 특히 그간 소개되지 않은 마레 사진을 다룬 마지막 두 장은 이 책의 백미다. 생리학 연구라는 학문적 목적에서 시작한 다양한 실험과 계측장치 발명이 어떻게 영화의 탄생으로 이어지는지, 진정한 영화의 발명자가 과연 누구인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 뤼미에르 형제가 아닌 마레의 중요성에 새삼 눈뜨게 한다. 경이롭고 기괴한 19세기 사진 아카이브 탐험 사진은 미래에 예술과 과학의 진보에 기여할 것이다. _1839년 프랑수아 아라고의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발표문’ 중에서 이제는 사진이 학자의 진정한 망막이 될 것이다. _1882년 쥘 장센의 ‘프랑스 과학진흥협회 개회연설’ 중에서 베르티옹의 범죄사진: 식별, 사진과 언어, 기억과 시지각, 기술복제 제1장에서 제3장까지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 경찰청 신원 감식부 반장 알퐁스 베르티옹의 작업에 집중된다. 그는 경찰의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사진을 도입해 범죄수사를 쇄신한 인물이다. 그의 수사기법은 ‘베르티오나주’란 용어로 불리면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찬사와 함께 유럽 전역에서 높은 명성을 누렸다. 베르티오나주란 ‘초상사진’ ‘말로 된 초상(초상언어)’ ‘인체측정기법’ ‘마크 기록법’이라는 네 가지 방법을 가리킨다. 저자는 베르티오나주에 대한 상세한 해설과 그 포톨로지적 의미를 규명한다. 사실 이는 인류학의 방법인 인체측정, 정면과 측면의 사진, 글쓰기 등에서 차용한 것이다. 다수의 학자를 배출한 명문가 출신의 베르티옹에게는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 저자는 정면사진과 측면사진의 규격화, 개개인에 대한 열한 가지 인체측정치가 의미하는 바도 설명한다. 이 모든 것에는 경찰사진은 예술사진이 아닌 과학사진에 속한다는 베르티옹의 명확한 인식이 있었다. 범죄사진은 대상을 정확히 재현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그는 대상과의 절대적 닮음을 추구한다. 범죄사진의 목표는 “최대한 닮은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있고, “측면사진 및 정면사진의 촬영 조건을 완전히 동일하게 함으로써 촬영 시기가 다르더라도 한 개인에 대한 동일한 두 장의 사진을 생산”하는 데 있다. 그러나 식별의 관점에서 닮음은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다. 동일인임을 확증하려면 닮음이 아니라 같음이 보장돼야 한다. 살과 근육의 정면사진이 주는 즉각적인 인상, 뼈로 구성된 측면사진의 선line이란 분석적 요소가 일치해도, 이 닮음(일치)은 ‘동일성(같음)’이 아닌 ‘유사성(닮음)’일 뿐이다. 두 쌍의 사진 속 인물이 같은 사람임을 확신할 수 없다. 여기서 범죄수사학의 목표가 유사성에서 동일성으로의 이전(移轉)이며, 식별은 이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제1장이 주로 경찰서 ‘안’에서 행해지는 식별에 관한 논의라면, 제2장은 경찰서 ‘바깥’ 거리에서 행해지는 용의자 식별에 관한 논의다. 사진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거리에서 범인을 추적하고 식별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초상언어다. 말(구술)로 용의자를 묘사하고 그것을 기억해두었다가 거리에서 그와 동일한 인상착의의 인물이 나타나면 체포할 수 있게 한 수사기법이다. 초상언어 제작에서 실제 얼굴은 ‘사진으로 된 초상’이 되고, 사진으로 된 초상은 ‘글로 된 초상’이 되며, 글로 된 초상은 결국 ‘말로 된 초상’이 된다. 이렇게 그는 얼굴 각 부위의 특성을 분해하고 이를 다시 체계적으로 분류한다. 처음에는 세 단계로, 나중에는 일곱 단계로. 개인의 얼굴 특징을 눈, 코, 입, 귀 단위로 세분화하여 묘사하고 그것을 일곱 단계로 분류하고 체계화하여 1895년 얼굴의 각 부위 특징을 집대성한 ‘구술초상화 연구를 위한 얼굴 특성 일람표’를 완성한다. 경찰은 이 일람표대로 용의자를 묘사해야 했다. 경찰마다 서로 다르게 묘사해 빚어지는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누구나 일람표의 텍스트대로 기록해 용의자를 머릿속에 저장한다. 이때 언어로 묘사된 용의자는 실재가 아닌 이미지다. 따라서 경찰은 암기한 초상언어와 기억 이미지를 서로 맞춰보아야 식별할 수 있다. 여기서 언어와 시지각의 철학적 문제가 드러난다. 저자는 우리가 무언가 보고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머릿속에 그것을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는 베르티옹의 견해를 소개한다. 이 견해는 사실 루이 페스라는 학자의 시지각 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베르티옹은 또 일람표 제작 과정에서 텍스트를 알파벳 기호로 환원한 바 있다. 이렇게 사진 이미지를 디지털화(문자화, 수치화)하는 방식은 당시에는 없던 낯선 것이었으며, 비록 수작업이긴 해도 우리가 아는 오늘날 정보처리 과정을 선취한 것이었다. 제3장은 범죄수사와 관련한 복제 문제가 논의된다. 자본주의 팽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