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는 데 실패했다면 그것은 성공일까?
망해 가는 유튜브 채널 소생을 위해
우리는 구독자가 원하는 실패를 찍으러 간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함께 방송반 활동을 해 온 도현, 지현, 오원은 구독자 23만 명에 달하는 미스터리 유튜브 채널 ‘하이드 온 월드’를 운영한다. 그중에서도 유달리 인정 욕구가 강한 도현은 구독자의 반응과 조회수에 일희일비한다. 지난 2년 동안 다룰 만한 모든 미스터리를 다 다룬 뒤로 새로운 소재 발굴에 누구보다 부담을 느끼던 멤버 역시 도현이었다. 채널의 정체기를 침체기라고 생각했던 도현은 현장 취재 기반의 야심 찬 미스터리 다큐멘터리를 기획한다. 홀로 촬영하러 다닐 정도로 열의를 불태우지만, 돌아온 구독자의 반응은 기대와 달리 싸늘하다. 오히려 페이크 다큐로 편집한 영상은 논란에 휩싸이며 멤버들은 처음으로 라이브로 사과 방송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공들여 편집한 것도 아닌 그 라이브 방송이 예상 밖으로 큰 호응을 얻는다. 이에 도현은 진지하게 신비를 탐구하는 콘텐츠 대신 취재에 실패하고 푸념이나 늘어놓는 미스터리 브이로그를 조금은 착잡한 마음으로 기획한다. 도현의 싱숭생숭한 마음과는 무관하게 구독자 입맛에 맞춘 브이로그 1, 2편은 연달아 성공을 거둔다. 여름방학을 맞아 세 번째 촬영을 떠난 세 사람은 이번에도 미스터리 스팟에서 처절하게 고생하다가 소득 없이 돌아오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뜻밖에 진짜 백골을 발견하며, 처음으로 실패하는 데 실패하는데…….
예정된 실패에 개의치 않으며, 그저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도현의 모습에서 실패하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성공 제일주의, 성과 지상주의 오늘날 사회에서 도현의 실패에 집중해 소설을 읽는다면 과정이 아름다워야 결과도 아름답다는 진부한 교훈을 겸허히 진실로 받아들이고 증명해 내는 모습에 감동할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은 관측과 동시에 하나로 고정된다
머리카락 빡빡 밀고 기숙 학원에 들어가면
마음 잡고 공부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그래
어머니, 아버지, 형까지 모두 엘리트 코스를 밝은 법조인 집안에서 혼자 동떨어진 오원은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해 이름 들으면 알 만한 대학에라도 들어가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형과 달리 “투자 대비 효율이 나는 아이”가 아닌 오원은 모든 면에서 “평균 이하”라고 자조하는 데 익숙하다. 그런 오원에게 방송반 활동은 자기 효능감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되찾는 시간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도 쓸모 있다는 감각을 얻은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만약 방송반에서도 자신이 쓸모 없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래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고3이 되어 버렸다. 당사자부터 주변 사람들까지 다들 야단법석을 떨며 마치 남은 모든 인생이 올해 수능을 기점으로 결정될 것처럼 구는 고3이.
오원은 멤버들과 떠난 촬영에서 진짜 백골을 발견하며 처음으로 ‘진짜’ 미스터리의 진실에 가까워질 기회를 얻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삼척의 한 기숙 학원에 머리까지 밀고 입소한다. 기숙 학원에 가기만 하면 마음을 잡고 공부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건 오원의 착각이었다. 그런 오원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눈앞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데…….
오원의 마음이 입자라면 관측 시점은 언제일까? 기숙 학원에 들어가서도 마음을 잡지 못한 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자기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하이드 온 월드’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 모두가 가는 것처럼 보이는 길이 안전한 길이며 옳은 길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마음을 잘 들여다보자, 진짜 마음을 관측한 순간부터 나에게 안전하고 옳은 길은 내 마음이 원하는 길 하나뿐이다. 돌고 돌아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오원의 마음을 지켜보는 동안 독자도 외면해 왔던 진심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인 거 알지?
불안하고 불확실하지만
오롯이 나의 마음과 힘으로 하는 선택
스스로 무색무취, 평범한, 보통의 학생이라고 생각하는 지현은 사실 남다른 꼼꼼함과 정보 검색 능력, 트렌드를 읽는 눈을 바탕으로 열정만 넘치는 도현과 이상 속에서만 사는 오원이 내놓는 아이디어를 통합해 실현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바꾸는 역할을 해 왔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의 채널 운영까지 생각할 정도로 ‘하이드 온 월드’에 진심이지만 자기에 대한 확신이 없어 늘 한 걸음 뒤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그러던 중 내심 자기와 비슷하게 대입과 채널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오원이 ‘진짜’ 미스터리를 뒤로하고 기숙 학원에 들어가는 선택을 하자, 지현은 배신감과 혼란을 느낀다. 꾸준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도현이나 외향적인 오원 사이에서 특출난 것도 특색도 없어 왠지 초라한 기분을 느껴 왔던 게 한번에 폭발한 것이다. 이에 충동적으로 이전과 다른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으로 혼자 미스터리 취재에 나선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불확실한 내일의 선명도를 높이는 방법은 확실한 오늘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을 겪게 된다. 선택하지 않는 선택도 선택인 것처럼. 지현의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미래가 정말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는 자유와 무한한 선택지가 버거울 때 일단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미래는 불가사의하다는 점에서 미스터리와 닮아 있다. 무한한 가능성 가운데 오늘 우리의 힘으로 그 정체를 밝혀내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그리고 그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미래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고 미스터리는 더 이상 미스터리가 아니다. ‘하이드 온 월드’의 도현, 오원, 지현은 어떤 미래를 보게 될까? 찾아 나선 미스터리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채널의 존폐, 대입의 성패보다 오늘의 실패를 값지게 여기게 된 고등학교 방송반의 신비로운 여름 방학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