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충격적이면서도 신중한 블록버스터급 작품이다. 산투스는 우리가 가장 깊이 자리 잡은 편견들을 ‘다시 생각하지 않도록’ 요청한다. 그는 우리가 세계를 아래로부터 바라보고, ‘보편성’을 북반구가 아닌 남반구의 시각에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그는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구상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 이매뉴얼 월러스틴(미국 사회학자)
인식론 살해에 맞서는 대항헤게모니,
남의 인식론을 재조명하다
보아벤투라 드 소우자 산투스의 대표 저서인 『남의 인식론: 인식론 살해에 맞선 정의』가 번역·출판되었다. 이 책은 서구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지식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남반구의 다양한 인식론을 복원하고자 한다. 또한, 사회적 부정의와 인식론적 억압의 문제를 깊이 탐구하며, 실천적 대안을 모색한다. 저자 산투스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사회학자, 법학자, 비판이론가이다. 그는 서구 근대성이 유일한 보편적 진리를 제공한다는 믿음을 해체하며, 다양한 지역과 문화에서 축적된 지식을 재평가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인식론 살해(epistemicide)’라는 개념을 통해 서구 지식 체계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역사 속에서 비서구적 지식과 문화를 배제하고 억압해 온 과정을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대안적 인식론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책 전반에 걸친 핵심 논의의 중요한 전제로, 산투스는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 사이에 눈에 안 보이는 아득한 심연이 존재함을 상정한다. 아득한 심연을 만든 근거는 바로 근대적 이성과 과학이다. 특히 산투스는 환유적 이성과 예견적 이성이 심연을 만든 주범임을 폭로하고 있다. 이 책은 ‘인지적 부정의(cognitive injustice)’라는 개념을 탐구한다. 이는 전 세계인이 삶을 영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다양한 인식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 현상을 의미한다. 전 지구적 사회적 부정의는 전 지구적 인지적 부정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전 지구적 사회적 정의를 위한 투쟁은 전 지구적 인지적 정의를 위한 투쟁이기도 해야 한다.
산투스는 서구의 지배가 오랫동안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의 기존 지식과 지혜를 철저히 주변화시켜 왔다고 말한다. 기존의 서구에서 생산된 이론은 비서구권의 실천을 설명하지 못했다. “유럽중심적 비판이론과 좌파 정치가 역사적으로 주로 글로벌 노스에서, 특히 북반구의 오직 5-6개 국가(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그리고 어느 정도 미국)에서 발전된 반면에, 최근 수십 년 동안 가장 혁신적이고 효과적인 변혁을 가져온 좌파의 실천은 글로벌 사우스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세계의 인식론적 다양성을 회복하고 존중하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럼으로써 『남의 인식론』은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형태의 세계시민주의를 제안한다. 이 서발턴적, 반란적 세계시민주의는 시장 중심적 탐욕과 개인주의의 논리를 넘어 공존, 연대, 그리고 생명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추구한다.
세계사회포럼의 주요 이론가이자 지식인-행동가, 산투스
산투스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법학자, 비판적 이론가이다. 특히 인지적 정의/부정의와 글로벌 사우스의 인식론에 대한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산투스는 서구중심적 지식 체계의 한계를 비판하고, 남의 인식론(Epistemologies of the South) 개념을 제안한바, 프랑크푸르트학파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비판이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연구는 사회 운동, 탈식민주의 연구, 법과 민주주의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산투스는 사회학, 법학, 정치철학을 아우르는 연구를 해왔다. 미국의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그는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구상할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했으며, 프랑스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산토스의 연구 분야를 넘나드는 통찰력은 실로 인상적”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 WSF)의 주요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활동하며, 신자유주의와 서구중심적 세계 질서에 맞서는 글로벌 대안 운동을 지지했다. 세계사회포럼은 2000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시작되었으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 담론과 실천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산투스는 최근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이 제시하고 있는 좋은 삶/부엔 비비르 철학을 중요한 개념으로 다룬다.
현재 포르투갈 코임브라 대학교(University of Coimbra)의 명예교수이며, 미국과 브라질을 포함한 여러 국제 대학에서도 연구 및 강의를 해왔다. 그는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는데, 그중에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 책이 『남의 인식론: 인식론 살해에 맞서는 정의』과 이 책의 후속편인 『인지적 제국의 종말(The End of the Cognitive Empire)』이다. 이 책들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다.
북의 인식론에 맞서는 남의 인식론
산투스는 이 책에서 세 가지 기본 전제를 제시한다. 첫째, 세계에 대한 이해는 서구가 세계를 이해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둘째, 전 지구적 인지적 정의 없이는 전 지구적 사회적 정의도 있을 수 없다. 셋째,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해방적 변화들은 서구중심적 비판이론이 발전시킨 문법과는 다른 문법과 각본을 따를 수 있으며, 그 같은 다양성은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한다.
첫째, 산투스는 세계에 대한 이해는 서구가 정의한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고 한다. 서구 근대성의 논리는 모든 지식을 서구적 틀 안에서 해석하려 했지만, 세계에는 다양한 방식의 사고와 해석이 존재한다. 서구중심적 인식론은 전 지구적 사고의 일부에 불과하다.
둘째, 전 지구적 인지적 정의(cognitive justice) 없이는 전 지구적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도 존재할 수 없다. 지금까지 서구 식민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가 결합하여 비서구적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제해 왔으며, 이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사회적 평등과 해방이 불가능하다. 서구중심적 지식 체계는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이 책은 서구 근대성이 유지되어 온 방식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제기한다. 산투스는 ‘제도화된 해로운 거짓(institutionalized harmful lies)’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서구가 민주주의, 법치, 인권 등의 개념을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불평등과 억압을 유지해 온 방식을 분석한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대량 소비를 강요하고, 법치라는 이름으로 불법적 약탈이 이루어지며,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강박적 소비를 조장하는 현실 등이다. 우리 현대 세계를 관통하는, 제도화된 해로운 거짓들이 만연해 있는 독특한 방식과 강도를 고려할 때, 부정의에 대한 적절한 인식과 억압의 극복 가능성은 오직 인식론적 단절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인식론적 단절에 대한 초점이 이 책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는 이론을 서구중심 비판 전통과 가장 잘 구분 짓는 지점이다.
셋째, 그렇다면 프랑크푸르트학파 등 서구중심 비판 전통은, 우리 시대의 해방적 투쟁들을 설명해 내는 데 성공했는가? 산투스는 서구적 해방 담론이 여전히 부르주아적 사고의 틀 안에 갇혀 있음을 강조한다. 그럼으로써, 이제 해방적 변화는 서구중심적 비판이론의 문법과 각본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데, 기존 서구중심적 비판이론(예: 프랑크푸르트학파, 마르크스주의)은 비서구적 현실을 적절히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이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자신들이 비판하는 부르주아적 사고와 사회적 부정의의 인지적 차원을 억누르는 동일한 인식론적 토대를 공유하고, 그럼으로써 세계에 대한 서구적 이해와 변혁 전망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서구중심적 비판 전통은 스스로를 대상을 함께 알아가고 이해하고 촉진하고 공유하고 나란히 걷는 것보다는, 대상에 대해 알고 설명하고 인도하는 데 있어 탁월한 전위 이론으로 여긴다. 산투스에 따르면, 이제 새로운 해방의 길은 다양한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