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빌라

파트릭 모디아노 · Novel
2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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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초기작. "잡히지 않는 인간의 운명을 환기시키는 기억의 예술"이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작품이다. 무국적자이면서 이름조차 확실치 않은 한 남자가 십여 년 전의 방황과 혼란의 한 시절을 되돌아보는 이 소설의 중심부에는 모디아노가 평생에 걸쳐 천착해온 기억과 정체성,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관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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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모디아노 특유의 스타일이 확립된 초기 대표작 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초기작인 《슬픈 빌라》는 “잡히지 않는 인간의 운명을 환기시키는 기억의 예술”이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작품이다. 무국적자이면서 이름조차 확실치 않은 한 남자가 십여 년 전의 방황과 혼란의 한 시절을 되돌아보는 이 소설의 중심부에는 모디아노가 평생에 걸쳐 천착해온 기억과 정체성,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관통하고 있다. 《슬픈 빌라》는 모디아노가 작가 초반의 모색기를 거쳐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고 거장으로서의 전성기로 접어들기 직전의 긴장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독자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나온 사람들, 과거의 편린을 주워 담으며 자기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한 여자와 두 남자 스스로를 ‘빅토르 슈마라 백작’이라고 칭하는 무국적자인 ‘나’. 《슬픈 빌라》는 주인공인 ‘나’가 십여 년 전 자신의 청년 시절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그곳에는 영화배우를 꿈꾸는 이본느라는 여인,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자신을 파괴하는 의사 맹트,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데서 오는 불안에 시달리는 나 자신이 있다. 당시 열여덟 살이었던 나는 뚜렷한 형체 없는 불안에 파리를 도망치듯 떠나와 스위스 국경과 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온천 휴양 도시로 온다. 알제리 전쟁으로 프랑스 국내의 분위기는 팽팽하게 긴장해 있다. 오트 사부아 지방에 위치한 이곳은 휴양 도시다운 흥청거리는 분위기와 아늑함이 공존하는 곳으로,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이본느, 맹트와 어울려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고, ‘슬픈 빌라’에 모인다. 슬픈 빌라는 맹트가 소유하고 있는 별장으로, 그들은 이 슬픈 빌라에서 지내는 짧은 기간 동안 나름의 충만함과 행복을 느끼는 동시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데서 오는 지루함을 느낀다. 이본느와 맹트는 이본느가 열여섯 살 때부터 함께한 사이지만 서로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는 사이면서도 절대 헤어질 수 없는 관계다. 그리고 그런 그들 사이에 ‘나’가 끼어들게 되고, 나는 이본느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을 느낀다. 나는 러시아 혁명을 피해 젊은 나이에 조국을 등지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파리로 흘러들어 온 무국적자인 아버지와 뮤직홀 출신의 어머니에 대해 이본느에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본느는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둘은 그렇게 허구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함께 보낸다. 이본느를 깊이 사랑하게 된 나는 정체 모를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져 이본느에게 미국으로 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제안을 거부하고, 결국 나는 홀로 기차에 올라 그들을 떠나온다.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향해 독자를 이끌고 가는 안개 같은 여정 파트리크 모디아노에게 기억, 과거는 평생의 라이트모티프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시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또한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기억상실자 혹은 정신적 불구자, 무국적자로 등장하고 그들은 항상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떠난다. 《슬픈 빌라》의 주인공도 예외는 아니다. 주인공 빅토르 슈마라로 나오는 ‘나’라는 인물 역시 정체가 모호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며,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뿌리를 거세당한 그는 정체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고 십여 년 전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해보지만, 그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영상은 선명한 것 같으면서도 모호한 시간이다. 그가 회상하는 것은 모두 불확실하다. 먼저 빅토르 슈마라라 자처하는 이 소설의 화자인 그 자체도 정체가 불분명하다. 편린처럼 떠오르는 기억을 통해 그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것이 실제인지 환상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본느 역시 그를 삼촌에게 데려가는 등 신분이 확실해 보이다가도 그녀가 출연했다는 영화를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대목에 이르면 그녀의 존재 역시 모호해지고 그 영화에 관계됐던 모든 이의 존재도 한순간에 스러져버린다. 이렇게 모디아노의 독백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도 분명치 않다. 다시 말해 그가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과거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 중인 과거인 셈이다. 모디아노는 과거의 시간 속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나’라는 인물을 통해 정체성 자체에 대해 회의한다. 그리고 동시에 시간 앞에서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결국 독자들의 손을 이끌고 가는 곳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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