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삶과 죽음 - 로맹 가리
로맹 가리 연보
슬픈 결말로도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 조경란(소설가)
자기 앞의 생
Romain Gary · Novel
363p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던 소설로 1975년 공쿠르상을 받았다. 문학동네에서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어 새롭게 번역, 출간했다. 로맹 가리의 유서라 할 수 있는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 함께 실렸다. 작가는 어린 모모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은 각박하고 모질기만 한 곳으로, 순간순간을 '살아내야' 하는 곳이다. 인종차별 받는 아랍인,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온 유태인, 생활을 위해 웃음을 팔아야 하는 창녀, 버림받은 창녀의 자식들, 친구도 가족도 없는 노인...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장을 가득 메운다. 모모가 만나고 사랑하는 그들은 세상의 중심에서 비껴나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지만, 절망에 지쳐 주저앉거나 포기해버리지 않는다. 그를 맡아 키워주는 창녀 출신의 유태인 로자 아줌마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들이 소년의 스승이다. 소년은 이들을 통해 슬픔과 절망을 딛고 살아가는 법, 삶을 껴안고 그 안의 상처를 보듬는 법을 배운다. 모모와 로자 아줌마 사이에 오가는 소중한 사랑은, 인종과 나이, 성별을 초월한 따뜻한 것이다. 작가는 소년의 목소리를 빌어 '사랑해야 한다'라는 진리를 전달한다. 가진 것 없이 세상에 내쳐진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삶에 내재한 신비롭고 경이로운 비밀을 이야기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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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원작 계약
“출판사에서도 원작자가 누구인지 몰라 광고를 통해 작자를 찾기까지 한 75 공쿠르 상 수상자 에밀 아자르! 그는 누구인가? 정말 그가 썼는가? 왜 상을 거부했나? 전 세계에 파문을 던진 아자르의 충격!”
1976년에 출간된 문학사상사판 『자기 앞의 생』에는 작가 소개 대신 이 문구가 자리하고 있다. 문학사상사 이외에도 수많은 판본의 『자기 앞의 생』이 출간되었지만, 어느 판본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지 않았으며, 소설의 많은 부분이 누락된 채로 출간되었다. 이번에 새롭게 번역 출간된 『자기 앞의 생』은 프랑스 메르퀴르 드 프랑스 사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새롭게 번역된, 그야말로 정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로맹 가리 사후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된, 로맹 가리의 유서라 할 수 있는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모든 좋은 책들이 그렇듯, 이 책 역시 울면서 동시에 웃게 만든다. -- 누벨 옵세바퇴르
『자기 앞의 생』은 비범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비범한 일이란, 사랑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다. 모모는 내게 말해주었다. 슬픈 결말로도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조경란(소설가)
『자기 앞의 생』은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자기 앞의 생』은 ‘삶에 대한 무한하고도 깊은 애정’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아픈 소설이다. 누가 삶을 두고 등허리에 무거운 짐을 얹고 산을 향해 조심조심 오르는 것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모모의 등에 지워진 삶의 무게는 산을 오르기는커녕 어린 그에겐 가만히 서 있기도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가슴 아픈 것은 어린 모모의 인생을 짓누르는 그 삶의 무게가 아니다. 차라리 힘들다고 주저앉아 운다면, 발버둥치며 제발 이런 인생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면 그의 삶을 읽는 우리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작품을 읽는 내내 우리는 힘이 든다. 힘이 들어 몇 번씩 책장을 덮어야 하고, 같은 이유로 또다시 책을 집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어린 모모는 그 무거움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인생의 슬픔을 내색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시니컬한 냉소로 그 무게를 떨쳐내려 한다. 그의 그런 냉소가 무수한 눈물들이 쌓인 알갱이들이란 사실을 잘 알기에 가슴이 아릴 수밖에……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작가는 자기의 실제 나이보다 많은 나이를 살고 있는 열네 살 모모의 눈을 통해 이해하지 못할 세상을 바라본다. 모모의 눈에 비친 세상은 결코 꿈같이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세상은 더욱 각박하고 모진 곳이다.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아랍인, 아프리카인,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유태인, 버림받은 창녀의 자식들, 살아가기 위해 웃음을 팔아야 하는 창녀들, 창녀들의 아이를 돌보는 여자, 친구도 가족도 없는 노인, 한 몸에 여성과 남성의 성징을 모두 갖고 있는 성 전환자,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살인자…… 모모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이탈한,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그들 자신도 스스로를 소외시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버림받은 사람들, 소진되어가는 삶에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사랑에 가득 차서 살아간다. 그를 맡아 키워주는 창녀 출신의 유태인 로자 아줌마를 비롯해 이 소외된 사람들은 모두 소년을 일깨우는 스승들이다. 소년은 이들을 통해 슬픔과 절망을 딛고 살아가는 동시에, 삶을 껴안고 그 안의 상처까지 보듬을 수 있는 법을 배운다.
“어디에서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깎아내리지 않을 사람, 내 편인 사람을 두 사람만 가지고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신경숙 소설의 한 구절이다.
죽은 로자 아줌마를 아줌마만의 지하방, 낡은 소파에 고이 앉혀두고 점점 푸르게 굳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싫지 않을까 몇 번씩 화장을 고쳐주며 그 옆을 지키는 모모에게 아줌마는 바로 이러한 "내 편"인 단 한 사람이었다. 친아버지에게도 아이를 내주지 않은 아줌마에게 역시 모모는 아줌마의 "내 편"인 단 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보여준 인종과 나이, 성별을 초월한 관계의 사랑은 서로를 간절하게 그리워하고 따뜻하게 보듬는 것이었다.
가진 것 없고 무시받는 이들의 남루한 삶을 들추고 소년이 발견하는 것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생의 비밀’이다. 그것은 어리둥절한 소년의 목소리를 빌려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함축적인 진실이기도 하다.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는, 그의 복화술사 모모는 말한다. "사랑해야 한다."
"미토르니히 조르겐.” 유태어를 모를까봐 말해주겠는데, 그건 ‘세상을 원망할 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세상을 원망할 건 없다. 우리는 사랑해야 하고, 또 사랑하고 있으니까.
고독한 광대 로맹 가리의 삶과 죽음--『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휴머니즘의 작가’로 알려진 로맹 가리는 러시아 이민자 출신의 유태인이다. 그의 어머니는 1차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조국 러시아를 등지고 아들과 함께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로 십여 년에 걸친 긴 여정을 시작한다. 이민자로 프랑스 땅에 정착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그런 억척스러운 어머니 밑에서 자란 로맹 가리는 글쓰기 좋아하고 수줍음이 많은 소년이었다. 2차세계대전 때는 레지스탕스 단체‘자유 프랑스’로 활동하며 로렌 비행 중대에서 대위로 활동한 공으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한다. 전쟁 후 그는 세계 각지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1956년에는 소설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일곱 살 연상의 『보그』지 편집자 레슬리 블랜치, 『네 멋대로 해라』의 히로인 진 세버그 등과의 화려한 결혼생활 외에도 그는 성공한 작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연예인 같은 생활을 즐기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겉모습의 이면에는 늘 새롭고 싶었던 고독한 작가의 모습이 있었다.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 이외에도 포스코 시니발디, 샤탕 보가트라는 가명으로 여러 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의 삶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이름을 바꿔서라도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은 욕망에 그 근원을 두고 있던 것이다.
결국 아자르의 이름으로 발표한 두번째 소설 『자기 앞의 생』으로 한 작가에게 결코 두 번 주어지지 않는다는 공쿠르 상을 수상하게 되고,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번갈아가며 소설을 발표한 작가는 결국 ‘아자르를 표절하려 든다’는 아이러니컬한 모함마저 받게 된다. 전처 진 세버그가 약물 투여로 자살하고 난 일 년 후인 1980년 12월, 로맹 가리 역시 권총자살로 고독했던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66세였다. 그의 자살 후 출간된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에서 로맹 가리는 아자르가 자신임을 밝히고 소위 ‘파리풍’이라는 문단권력과 작품조차 꼼꼼히 읽어보지 않고 비평을 쓰는 평론가들을 조소하며 자신이 왜 가명을 쓰면서까지 끊임없이 창작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하여 고백한다.
유일하게 공쿠르 상을 두 번 받은 작가 로맹 가리
1975년 공쿠르 상 수상자가 『자기 앞의 생』을 쓴 에밀 아자르라고 발표되자 수상작가는 공쿠르 상 아카데미에 수상 거절 의사를 밝힌다. 그러나 아카데미 의장인 에르베 바쟁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아카데미는 한 후보가 아닌 한 권의 책에 투표한 것이다. 탄생과 죽음처럼 공쿠르 상은 수락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것이다. 수상자는 여전히 아자르이다.” 그렇게 해서 베일에 싸인 작가 에밀 아자르는 수상자로 남게 되고, 후에 아자르가 실은 로맹 가리임이 밝혀지게 되면서 로맹 가리는 유일하게 공쿠르 상을 두 번 받은 작가로 남게 된다.
슬픈 결말로도 행복해질 수



박우영
5.0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없이 살 수 있나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Carol
4.0
나는 영화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여러분 각자 자기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건 그가 생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신한나
4.0
생애 처음 자장가를 듣고는 본인은 자장가를 들을 만큼 어려본 적이 없었다던 모모의 말에 너무 가슴이 아팠다. 어린 아이들은 물론이고 노인들에게도 나이를 불문하고 사랑이 필요하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온갖 혐오로 얼룩진 현 사회에서도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임을.
성유
4.0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박벨라
5.0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예진
5.0
나는 대부분의 한국 소설들의 질질 끄는 긴 문체가 싫다. 아니, 싫다기보다는, 굳이 선호하지 않는다. 윤동주의 시들과 같이 별다른 미사여구나 형용사 없이 간결한 표현(때로는 단어)만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위대하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의도치 않게 번역 소설에 한국 소설보다 더 큰 감동을 받고는 하는데(적어도 내 생각에는, 번역 소설은 "번역"되기에 원문보다 조금 간결해지고 명확해지는 '느낌'이 있다), <자기 앞의 생>은 그런 번역 소설인 데다가, 원래의 표현 역시도 가치판단을 유보하고 사실만을 전달하는 절제된 면이 있어 나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때로는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나 해가 뜨는 것 같았다." 라고 말하는 것 그 사람을 위해 내가 무엇을 했는지만을 말하는 것 "자연의 법칙 따위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았다." "정신이 나갔을 때 똥오줌을 쌌는지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혹시 내가 자기 때문에 구역질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혹은 이런 말들.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도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에밀 아자르는 그런 사실의 전달을 , 그 배열과 그 표현을 아주 잘 절제하여 하는 작가이다.)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속에서부터 눈물이 북받쳐서 숨이 막혔다. 나는 로자 아줌마의 품에 몸을 던졌다. 그녀는 두 팔로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울며 소리쳤다." 여기에는 '슬픔'과 관련된 어떤 형용사도, 애매모호한 표현도 없다. 그렇지만 화자의 감정은 아주 잘 전달되고, 오히려 더욱 아프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rizu
4.0
누구도 몰랐겠지. 쓰라리고 무거운 아이의 생을 사랑이 지탱했다는 걸.
coenjung
4.5
웃다가 울컥하고 모모 한마디에 머리가 띵해지는 재미있는 문체로 금방 다 읽어버린 '나는 계단에 앉아서 송아지지처럼 엉엉 울었다.물론 송아지들은 엉엉 울지 않지만 표현을 그렇게 한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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