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깨닫게 해주는 경이로운 책” - 다이앤 애커먼
인류ㆍ지구ㆍ우주에 닥칠 마지막 순간을 조명한 매혹적인 문제작
죽음이란 지극히 사적인 사건이다.
사람들은 보통 나의 죽음 혹은 내가 아는 사람들의 죽음 이외에는 진정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때문에 세상에 종말이 오느냐 마느냐의 문제 역시 영화 속에서나 흥미롭게 비칠 소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 재기발랄한 천문학자 크리스 임피는 신작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원제: How It Ends)를 통해 세상 모든 것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과학적 사실은 물론 다양한 가설까지 뒤섞어 낱낱이 펼쳐 놓는다. 이 중에는 ‘세상이 과연 종말을 맞이할 것인지’와 같은 묵중한 질문에 대한 대답도 담겨 있지만 한편 이러한 이야기에서 파생된 흥미로운 이슈들, 예를 들면 ‘기계로 된 육체를 갖게 될 미래의 인간’이라든지 ‘제2의 지구가 존재할 가능성’, ‘사스SARS가 외계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라는 설의 진위 여부’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팩트fact의 나열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 철학, 생물학, 지구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때로는 날카로운 분석과 상상력 넘치는 추측을, 때로는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보여준다.
이 압도적인 지식과 고찰의 결과물을 읽어가다 보면 개인적인 영역에 놓여 있는 죽음이 실은 얼마나 우주적인 사건인지, 보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게 된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시종일관 위트를 잃지 않는 저자의 문체를 즐기는 것은 덤이다.
세계적인 우주생물학자가 들려주는
만물의 탄생과 소멸에 얽힌 놀라운 비밀
이 책의 저자 크리스 임피는 우주생물학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이다. 우주생물학이란 지구를 비롯한 우주의 생명을 연구하는 신생 학문으로서 주로 생명의 기원과 진화과정을 연구 범위로 한다. 지구 밖 존재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됨에 따라 우주생물학은 점점 더 각광을 받고 있으며 현재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등 온갖 분야의 연구자들이 이 학문 분야로 몰려들고 있다.
전작 《우주생명 오디세이》(원제: The Living Cosmos)를 통해 우주생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렸던 그가 이번에는 우주생물학에 기반하여 ‘생명의 탄생과 소멸’이라는 좀 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새로운 문제작을 들고 찾아왔다. 2009년 로마 교황청의 호세 가브리엘 푸네스 신부 등과 외계 생명체의 존재 문제를 논의하는 학술회의를 여는 등 분야를 넘나들며 파격적인 연구를 해온 그답게 이번 책에서도 다양한 학문들을 씨실과 날줄처럼 엮어가며 만물의 죽음에 대해 의미 있는 논의를 들려준다.
그는 이번 책에서 엄청난 범주의 이야기를 아우르고 있다. 그 대상은 인간에서 우주에 이르기까지 넓고도 다양하며, 특히 시간적으로는 수십 년에서 영원의 세월까지를 포함한다. 이야기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앞부분에서는 인간의 죽음과 그것을 대하는 자세,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요인들, 다가올 인류의 미래, 인간의 삶과 생태계와의 관계 및 생태계에 닥칠 위험 등 주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등장한다. 뒷부분에 이르면 놀랍도록 스케일이 커져서 태양계와 은하수 등 우주의 마지막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여러 가지 예측들이 등장한다.
책의 뼈대는 이렇듯 묵직한 주제로 연결되어 있지만 이 안에서도 탁월한 이야기꾼인 그는 도무지 지루할 틈 없이 흥미로운 소주제들로 논의를 이어간다. 인간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노화의 비밀, 노아의 방주의 실체, 공간 이동의 성공 가능성, 지구 종말 시나리오 등 우리 모두의 삶과 죽음에 얽힌 흥미로운 이슈들을 다채롭게 펼쳐놓고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압도적인 지식과 통찰
크리스 임피는 왜 인간을 비롯한 생명은 결국 꺼져버릴 수밖에 없는지, 나아가 우주가 과연 종말을 맞을 것인지 등에 관해 다양한 가설을 들려주고 있지만 특정한 한 가지 가설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사후세계란 과연 존재하는가’와 같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비교적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논제에서조차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자칫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계적 균형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책 곳곳에서 그가 이따금씩 던지는 성찰적 질문들은 그의 의도를 짐작케 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나 동물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는 미래상에 대해 설명한 후 그가 던지는 ‘미래란 무엇인가? 아니, 미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인간, 나아가 존재의 정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중립적 자세는 만물의 죽음과 생명의 문제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종국에는 독자로 하여금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 이르도록 이끌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이 책의 마지막 문단에 이르러 더욱 극명해진다.
생명체의 지각력은 천혜의 축복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주이기도 하다. 우리는 운 좋은 금요일 밤을 보내고 잠들었다가 토요일 아침에 우주적 의식으로 깨어나 갑자기 불안감에 빠진 오합지졸일지도 모른다. 이보다는 차라리 개미처럼 세상 물정과 상관없이 부지런하거나, 하루살이처럼 단명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아니면 낙지나 문어처럼 가까운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만 두뇌를 사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어쨌거나 우리는 생각이 없는 물질보다는 우월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마술 같은 사건으로 가득 찬 이 우주에서 마지막에 어떤 일이 일어나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12장_다시, 새로운 우주로/pp.374-375
누군가에게는 두렵고,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며, 누군가에게는 미지의 세계로만 느껴지는 죽음에 대해 이 책은 담담하게, 하지만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삶과 죽음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응시하게 된다는 데 이 책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 하겠다. 이 책이 과학서이지만 한편으로 철학서처럼 읽힐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