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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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난하고 무식한 자들로 번창하라!” 광부, 파독노동자, 파월 병사, 도시빈민, 폭도, 살인자, 소년범, 양공주, 빨갱이… 박정희 시대, 공동체에서 추방되어 유령처럼 떠돌았던 존재들에 대한 ‘불온’한 재현 박정희 시대를 새로 봐야 하는 까닭 현재까지 박정희 시대 역사는 크게 두 가지 대립 축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우선, 당대를 근대화와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한 시대로 바라보는 진영이 있다. 대표적으로 경제발전을 최우선적 가치로 설정하는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근대화’와 ‘부국’을 위한 희생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 반대편 진영에서는 박정희 시대를, 민주화를 열망하는 이들을 무참하게 짓밟고 민중의 희생을 강요한 야만과 암흑의 시대로 그린다. 이들 두 진영 간의 대립은 ‘진정한 민족’ 혹은 ‘국민 되기 프로젝트’의 일환, 다시 말해서 누가 진정한 근대적인 국민/민족을 구성하느냐를 둘러싼 쟁투였다. 그런 가운데 그 경계에 존재하는 집단과 개인은 인식되기 어려웠다. 그들은 양쪽 진영 모두에서 외면한 ‘비(非)국민’ 또는 ‘비정상인’, 아니면 ‘적(敵)’이었다. 이들이 바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이다. 혹자는 ‘또 박정희인가?’라고 물을 수 있다. 어느 쪽 진영에 서든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결론에 도달할 게 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는 그리고 한국 현대사는 앞서의 두 대립 축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단언컨대, 아직도 유령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보지 않고서는 우리는 박정희 시대를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다양한 미래 역시 꿈꿀 수도 없다. 그 시대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누락된, ‘유령’들의 기억들을 다시 불러오지 않는 것은 기억을 침묵으로 정지시키고 상상력의 가능성을 제약하며, 미래의 다른 삶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의 ‘유령’, 그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지배 담론은 물론 저항 담론인 민중사에 의해서도 배제되고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이 유령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들은 지배적인 앎에 의해 배제당하고 침묵을 강요당한, 전체적 사실에 부수적으로 딸린 부스러기이자, 심지어 저항 담론에 의해서도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이 존재들을 역사학에서는 ‘서발턴’이라고 부른다. 는 바로 1960~70년대의 서발턴들을 불러내 그들의 삶을 재현한 작업이자 그 이론적인 고민까지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이 서발턴들을 ‘유령’이라는 은유를 통해 호명한다. 저자가 이 책 속으로 불러온 유령들은 다음과 같다. 도시빈민, 폭도, 소년원생, 범죄자, 기지촌 여성, 간첩 지식인, 파독 간호사, 광산 노동자, 파월 병사 등등… 박정희 시대의 엘리트 지배계층에게 이들은 끊임없이 지배 질서를 교란하고 남성적 근대화를 위협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비가시적이고 민중답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언어조차 갖지 못했던 서발턴은 군사정권이 문란하고 악마적이라고 비난했던 경계를 위반하면서 차이의 공간―이른바 도시봉기, 탈출, 범죄 등―에 출몰했다. 서발턴들이 존재했던 공간 그리고 그들의 봉기, 집단행동, 범죄야말로 근대(화)에 역행하는, 전근대와 비근대가 공존하는 유령들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이 유령들의 존재는 박정희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한국 현대사의 모든 시기에 출몰했으나 끊임없이 사회에서 버려진 동시에 망각되었다. 4.19 당시 거리를 활보했지만 사라진 넝마주이, 5.18 광주항쟁 직후 떠돌았던 사라진 구두닦이들, 1991년 5월 투쟁 당시 민주화운동을 오염시킨다는 비난을 들었던 폭도들, 그리고 2008년 촛불시위에서 마지막까지 폭력 시위를 주장한 집단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은 아직도 불순하고 위험한 집단으로 지배 담론에 의해 매도되고 민중사에 의해서도 망각되어 왔다. 이처럼 서발턴은 저항서사인 민중사의 주인공도 아니었으며, 연구자의 시야에도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서발턴은 민중사가 ‘혁명적-이성적 민중’이란 이름으로 통합하려던 욕망의 대상인 동시에, 민중사에 포함시키기엔 부적절한 ‘민중답지 못한 존재’였다. 유령을 재현하는 방법1: ‘갈라진 혀’로 말하는 구술 서발턴은 무엇보다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한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보이지 않는 유령들의 기억을 불러내야 할까? 자기의 언어로 스스로를 재현할 수 없으므로, 이들을 불러내는 가장 유력한 방법은 구술이다. 그러나 이들은 명료하게 진술하지도 일관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대신 모호하게 웅얼거리고, 갈라진 혀로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에게 빙의하여 개인의 생애사를 효과적으로 재현하는 동시에 신문기사, 칼럼 등 2차 자료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날카롭게 추적한다. 그렇다면 왜 구술작업을 통해서인가? 저자는 파월 병사, 파독 노동자, 기지촌 여성 그리고 탄광촌 광부들의 구술자료를 통해 이들의 기억을 재현한다. 이들은 당시 지배 엘리트들에 의해 ‘자유를 수호하러 가는 애국자’ ‘경제성장의 숨은 주역’ ‘외화벌이 애국자’ ‘근대화를 이룩한 산업 역군’ 등으로 추켜세워졌다. 하지만 이들의 고통과 트라우마는 공식 기억에서 삭제되거나 주변부로 밀려났다. 결국 파병 병사의 경우, 그들은 국가로부터는 잊힌 애국자로 찬밥 신세가 되었고, 시민사회운동에 의해서는 전쟁 폭력을 일삼은 ‘용병’ 또는 ‘우익단체의 들러리’로 불려진다. 특히 이 책에서는 파독 간호사와 사라진 탄광촌 광부들의 기억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파독 간호사들의 기억은 ‘경제성장을 위해 외화를 송금했다’거나 ‘가부장의 보호로부터 탈출해 독일에서 문란하고 사치를 일삼는다’는 당시의 지배적인 기록과는 다르다. 이들은 독일행을 자신의 생애에서 하나의 기회로 생각했으며, 냉전이 강요했던 선택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는 회색인으로 살아가기도 했다. 탄광촌 광부들은 박정희 시대를 죽음에 대한 공포와 일상화된 폭력을 끼고 살던 시절로 기억하면서도 ‘산업전사’로 인정받았던 시기로도 기억한다. 단지 산업화의 피해자로 전형화될 수 없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유령을 재현하는 방법2: 사건, ‘유령’들이 출현하는 유일한 방식 이 유령들의 구술은 모호하고 불완전하고 불연속적이어서 거대 담론과 합리적 이성으로는 걸러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불온하다. 그리하여 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불온한 방식으로 자신들을 드러낸다. 현실 세계에서 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의미화하는 유일한 방식은 ‘사건’이다. 엘리트 지식인들이 이들에 대해 느끼는 공포감은 바로 그러한 것에서 기원한다. 저자는 박정희 시대에 일어난 봉기, 범죄, 탈출 등 기존의 정치적 행동의 임계를 넘어서는 사건들을 당시 신문기사, 소설, 보고서 등을 통해 재구성한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 1977년 무등산 타잔 사건, 1979년 부마항쟁, 그리고 박정희 시대 내내 빈번하게 일어났던 소년원 탈출 사건에 주목한다. 저자는 먼저 광주대단지 사건을 통해 가난한 이농민, 강제로 끌려온 철거민, 폭동에 참가한 도시 룸펜 그리고 선동에 말려든 대단지의 이름 없는 술주정뱅이와 부녀자들을 비정상인이나 공포를 불러오는 유령으로 형상화하는 지나친 폄하와 멸시로부터 구해낸다. 그러고 나서 철거반원 4명을 살해한 박흥숙의 무등산 타잔 사건을 통해 봉기와 범죄 사이의 간극이 그리 멀지 않음을 증명한다. 지금까지도 살인자와 범죄자의 오명을 지닌 채 기억되고 있는 박흥숙과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군을 동일선상에 겹쳐놓으면서. 또한 1960~70년대 신문 지상에 빈번하게 등장하던 ‘소년원 탈출 사건’을 통해 소년원에 감금되었던 이들을 둘러싼 지배적 지식체계를 살펴보고, 한국 사회가 왜 현재까지 이들을 ‘비정상인’으로 문제시하는지를 근본적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부마항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