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
3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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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걸의 서양예술사 시리즈. 조중걸 교수가 구석기 시대 예술에서부터 고대, 중세, 근대를 거쳐 현대예술에 이르기까지의 서양예술사를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정리한 총 5권의 '서양예술사; 형이상학적 해명' 중 ‘중세예술’ 편이다. 초기 기독교 미술, 로마네스크, 고딕을 다루고 있다. 그간의 저술에서 보여 왔던 것처럼 이 책에서도 저자는 예술과 철학, 논리학, 기호학, 언어학, 역사 등 다양한 인문분야를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통찰을 바탕으로 이제껏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서양예술사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명을 시도한다. 한 시대의 예술양식과 세계관이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예술적 성취 이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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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서문 Ⅰ. 초기 기독교 미술 (Early Christian Art) 제1장 초기 기독교 미술 (Early Christian Art) 1. 신플라톤주의 (Neoplatonism) 2. 조각 (Statue) Ⅱ. 로마네스크 (Romanesque) 제1장 로마네스크 (Romanesque) 1. 개관 (Overview) 2. 건축 (Architecture) 3.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4. 생 세르냉(St. Sernin) 5. 교차 궁륭 (Groin vault) “고딕”에 들어가기에 앞서 Ⅲ. 고딕 (Gothic) 제1장 정의 (Definition) 1. Opus Modernum 2. 용어 (Terminology) 3. 특징 (Characteristics) 4. 고딕 자연주의 (Naturalism in Gothic) 제2장 골격 (Skeleton) 1. 첨형아치(Pointed arch) 2. 늑골형 궁륭(Ribbed-Vault) 3. 공중부벽(Flying Buttress) 4. 복합기둥(Compound Pier with Shafts) 제3장 전개(Transition) 1. 개요 (Overview) 2. 생 드니(St. Denis) 3. 베이시스템 (Bay System) 4. 단일공간(The Unity of Space) 5. 수직성 (Verticality) 6. 부유성과 개방성 (Flotage and Openness) 7. 과잉성과 집적성 (Superfluousness and Accumulation) 8. 새로운 빛 (The New Light) 제4장 이념 (Ideology) 1. 탐구의 이유 (Reason of Research) 2. 형이상학 (Metaphysics) 3. 스콜라 철학 (Scholastic Philosophy) 4. 실재론적 신학 (Realism Theology) 5. 세 갈래 길 (The Three Ways) 6. 유명론 (Nominalism) 7. 신비주의 (Mysticism) 8. 유명론, 신비주의, 고딕 이념 (Nominalism, Mysticism, Gothic Ideology) 찾아보기

Description

서양예술사 최초의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 교수 필생의 대표작! 그 누구도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서양예술사! ‘학자는 저술로서 평가받아야 한다’라는 신념으로 미디어를 통한 모든 활동을 거부하고 오직 저술을 통해서만 독자를 만나 온 조중걸 교수가 새롭게 정리한 총 다섯 권의 「서양예술사; 형이상학적 해명」 중에 네 번째로 [중세예술] 편이 출간되었다. 그가 쓴 서양예술사는 이제껏 그 누구도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것으로서 구석기 시대 예술에서부터 고대와 중세와 근대의 예술을 거쳐 현대예술에 이르는 인류의 장엄한 성취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명이다. 이번 [중세예술] 편은 중세의 신학적 흐름과 거기에 대응하는 예술 양식에 대한 해명을 담고 있다. 초기 기독교 미술, 로마네스크, 고딕으로 이어지는 흐름에서 저자가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은 중세 말의 유명론과 고딕 성당의 유비이다. 신비에 싸인 고딕 예술에 대한 명쾌한 해명! 저자는 늘 출간에 즈음하여 출판사에 저술과 관련한 소회를 간단히 밝히는 서한을 보내온다. 이번[중세예술] 편의 출간을 앞두고도 출판사에 이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짧은 서한에서도 그의 간결하고 순수한 문체와 표현은 정말 아름답다. 세밀하고 날카로운 통찰이 빛을 발하는 저술과는 다른 느낌이어서 독자에게 소개가 되는 것을 저자는 우려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 서한의 내용이 독자들이 이번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리고 한편으로 저자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이 작게나마 해소되길 바라며 전문을 싣는다. 건축에 대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고 느낀 건 프랑스 유학 시절이었습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은 스물 몇 살의 식견 없는 젊은이에게는 충격이라고 할 만큼 신비스럽고 아름답고 대담하고 낯선 건물이었습니다. 북적거리는 관광객을 피해 겨울에 다녀 보곤 했습니다. 어두운 밤거리를 홀로 걷다 보면 어느덧 그 건물 앞에 오게 되고 그때에는 아득하고 기괴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명이 비친 성당 앞에 많은 시간을 멍하니 서 있곤 했습니다. 깊게 파인 아키볼트들에 새겨진 이해할 수 없는 부조들, 공허하다고 할 만큼 텅 빈 하늘, 스테인드글라스의 약간은 침침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석 같은 빛, 잔혹하고 낯선 공포를 주는 가고일. 무언가 자기 일을 하고 있지만 유령 같은 조용함을 지닌 채 갤러리에 출현했다 사라지는 그림자 같은 신부들. 이렇게만 느끼고 말았다면 중세 예술에 대한 관심은 거기에 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파리의 어느 곳에서도 멀리 보이는 그 성당은 저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졌습니다. 틈틈이 관련 시설과 서적을 들여다보며 조금씩 그 역학적 구조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일단은 이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시간이 없었고 또한 그 성당은 단지 틈틈이 하는 연구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심오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성당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예술사: 형이상학 해명”을 쓰겠다는 계획을 세웠을 때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16세기의 매너리즘에 대한 연구는 4백여 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고딕성당과 매너리즘 예술이 양식적으로 공유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견고함과 확고함을 거부하는 표층성, 지속보다는 사라짐을 삶의 본질로 보는 무상성, 획득에 의해서보다는 놓아줌에 의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공허함, 지적 당당함보다는 감성적 가냘픔을 수용하는 연약함 등. 물론 이 탐구에 덤벼드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느낌과 이해는 다른 문제입니다. 파리에 뿐만 아니라 샤르트르, 보베, 오베르뉴, 생 드니, 쾰른 등에 흩어져 있는 고딕성당들은 그 규모와 호사스러움에 있어 압도적입니다. 당시의 도시 규모를 생각할 때 그렇게 대규모의 공사를 한다는 것은 현재의 기준으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신앙이었습니다.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은 그들의 열렬한 신앙심이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신앙심일까요? 어떤 탐구가 고딕의 형이상학적 해명을 가능하게 할까요? 뛰어드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어떤 노고가 절 기다릴까요? 피에르 아벨라르(Pierre Abelard)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 의문은 영영 풀리지 않았을 겁니다. 어떤 행운이 저를 그 위대했던 파리의 변증가에게 데려다 놓았습니다. 대학 도서관에서 그의 논증의 단편들을 읽어 나가며 그의 신학과 고딕성당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서관과 장서에 찬사를 보냅니다. 등으로부터 동심원을 그리며 내려오는 원뿔 모양의 따뜻한 빛, 등위의 어두움으로부터 서서히 빛을 얻어 나가다 결국 천장으로 소멸해가는 빛, 바스락거리며 흘러내릴 거 같은 낡은 건물 모서리의 먼지, 빛과 더불어 어둠 속으로 소멸하는 높은 천장, 혼자는 아니라는 느낌을 주었던 소곤거리는 낯선 학생들, 조심스럽게 주변을 스치는 발자국 소리, 책에 줄을 긋는 소리, 가까스로 내게 오는 먼 자리 여학생의 향수 냄새. 처음으로 읽히는 책들. 대출자를 만난 적 없이 버려졌던 책들. 오래전에 태어났지만 이제야 빛을 선사하는 독자를 만난 그 장서들. 금속활자가 깊게 새겨 놓은, 손에 기분 좋게 만져지는 요철의 글들. 넘긴 다음에 몇 번을 문질러줘야 넘어가는 책의 페이지들. 오컴만큼 위대한 철학자가 또 있을까요? 아벨라르를 통해서 오컴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고 또한 가우닐론과 로스켈리누스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후로 오컴의 《논리 총서 (Summa Logicae)》는 저의 평생의 책이 되었습니다. 차갑고 냉정한 자기포기, 대담하고 거친 반항, 치밀하고 창조적인 가설과 논증. 아아, 저는 매혹당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관계라는 것이 있다면 신이 그것을 창조했지 관계라는 용어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을 때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적인 안도를 했습니다. 알기 위해 노력해왔고 희망의 유지를 가능하게 했던 삶 그 자체는 결국 미지의 것이라는 절망, 여기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는 절망, 우주는 결국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란 절망, 답변이 있을 수 없는 곳에 의문을 품었다는 그 절망.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기 위해 공부하면 된다는 안도, 쥐기 위해서가 아니라 놓기 위해 애쓰면 된다는 안도, 사유하는 책임을 벗어도 된다는 안도, 탁월하기 위해 애쓸 이유가 없다는 안도, 삼라만상이 다 같이 세계를 물들이고 있다는 안도, 내가 지워지면 된다는 안도.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속하듯이. 다시 유럽으로 향했고 프랑스와 영국과 독일의 로마네스크 성당과 고딕성당을 둘러보았습니다. 저는 누군가 툴루즈에 대해 쓴 글을 읽고 어리둥절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에어버스사의 본사가 있다는 사실을 읽고는 두 개의 툴루즈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툴루즈에서 본 것은 생 세르넹 성당 이외에는 없었으니까요. 샤르트르 성당의 종탑을 몇 번이나 올라갔을까요? 일곱 번까지는 셌습니다. 그다음에는 마구 뒤얽혀 몇 번인지 셀 수 없습니다. 성당 옆의 여인숙과 금요일 노천 시장 외에 샤르트르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성당 외에는. 그 매혹적인 성당. 날씬한 자태의 젊은 아름답고 순수한 아가씨와 같은 그 성당. 세계의 모든 아름다움을 초월하는 그 성당. 저의 성당 순례에는 많은 이야기와 즐거움과 고초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마음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마음속에 머무르다 제가 소멸할 때 같이 소멸하겠지요. 그렇게도 신비스럽고 그렇게도 심오했던 중세 철학자들과 고딕 건축가들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이번에는 그들이 잠든 세계에 그 기억을 나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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