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책의 세계에 빠져든 독서가, 애서가들의 적나라한 모습
당신은 이러한 세계를 알고 있는가?
책의 마력에 빠진 사람들의 우스꽝스럽고도 슬픈 모습들,
비블리오마니아의 세계,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
독서가들을 위한 대망의 앤솔로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실연이라는 지옥이 있으며, 야심가에게는 무기력이라는 지옥이 있고, 예술가에게는 망각과 질투라는 지옥이 있다....
하지만 자기 돈을 써가며 순진하게 몰두하는 것이, 심지어 네다섯 개의 산업을 지탱하고 나아가서는 문학과 조국의 명예에도 공헌할 수 있는 이것[애서취미]이, 다시 말해 아무런 죄도 없는 취미 앞에 이처럼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은 그걸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그곳에서 방금 돌아왔기 때문이다....
허심탄회하게 우리의 양심에 비추어 보았을 때, 아무리 순수한 것일망정, 취미라고 이름이 붙은 것으로서 물욕, 사치, 오만, 집착, 의무에의 태만, 이웃에 대한 경멸 같은 것을 포함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 이들 금단의 과실을 따내는 자들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그가 쾌락에 빠졌을 때의 눈동자를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도박꾼의 격정이나 방탕자의 횡포에 닮은 무언가를 찾아내지 않을 수 있을까.
(본문 “애서가의 지옥”에서 )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에 개입한다. 책을 기획한 편집자나 출판사가 있고 실제로 책의 내용을 집필하는 저자가 있으며, 그것에 형태를 부여하는 디자이너와 인쇄소, 제본소의 장인들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책은 시장에서 상품으로 유통될 것인데, 상품으로서의 책은 다른 상품과 다르게 아무리 많은 부수를 생산하더라도 원본original으로 가치를 가진다.
최근 인터넷의 등장으로 우리 사회에서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고 유통하는 구조가 큰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바로 책이 가진 원본적인 성격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찾던 책을 헌책방이나 서점에서 입수했을 때 느끼는 희열은 수백만 개의 상품 가운데 하나를 습득한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책의 등장과 함께 출현한 애서가bibliophilia의 역사는 로마 시대 키케로나 아티쿠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들이 책에 대해 가지는 집착과 좌절, 질투심은 애서가를 둘러싼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반면 21 세기 들어선 이후 유럽이나 미주, 일본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소규모 출판 열풍은 책의 원본적 가치, 수집가의 열망이 투사된 현대적 애서가의 등장을 예견한다. 한정된 공간과 수입 안에서 책의 본래적 가치 이상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젊은 독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구입한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다소 폐쇄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전통적인 애서가와는 확실히 다르다. 누군가는 애서가의 책장을 책의 무덤으로 표현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이들 서가는 소중한 자료들을 보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작은 아카이브나 도서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이상 애서가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책을 둘러싼 ‘신화’ 역시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앤솔로지는 위와 같은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책을 소재로 한’ 동서양의 걸작 소설들을 모은 것이다. 무릇 책을 테마로 한 소설이라고 하면 애서가의 심리를 그린 것이나 고서 수집에 대한 기담奇談 등이 많은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추리소설의 테마로서 책이 등장하거나 서점 주인에 의한 세상의 관찰 같은 방식의 소설도 등장하는 등 그 방식이 다양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 앤솔로지는 책과 인생이 생각보다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때로 그 관계는 기묘하고 비참하기도 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줄 것이다.
다음은 수록 작품과 그 작가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이다.
* 알렉상드르 뒤마, “프랑스식 케이크 제조법Le Pastissier Francois” (1852)
『몽테 크리스토 백작』, 『삼총사』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17세기의 희귀본인 엘제비르판 『프랑스식 케이크 제조법』을 소재로 뒤마는 실제로 자신이 체험한 바를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21세의 나이에 일자리를 찾아 지방에서 파리에 온 뒤마는 하숙을 마련하고 그 길로 바로 포르토 상 마르탱 극장에 연극 <흡혈귀>를 보러 간다. 극장에서 우연히 바로 그의 옆자리에 앉게 된 사람은 당대의 유명 작가이자 애서가인 샤를르 노르디에였다. 그를 통해 시골 청년 뒤마는 처음으로 ‘애서광’이란 존재를 알게 된다. 이 글은 그의 자서전인 『회상록Memoires』(1852-54)의 3권 74장에 실린 것이다.
* 앤드류 랭, “프랑스의 애서열풍Bibliomania in France” (1886)
앤드류 랭(1844--1912)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문필가로, 민담과 신화연구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을 졸업한 후 옥스퍼드 대학의 고전학 전공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호메로스’의 영어 번역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으며 소설에 『카인의 인장』, 『세계의 욕망』(H. 라이더 해거드와의 공저) 등이 있다. 여기 수록된 글은 『책과 책의 사람들』의 세 번째 장에 해당하는 것으로, 프랑스 애서광의 역사를 가장 잘 정리한 글로 꼽힌다.
* 샤를르 노르디에, “비블리오마니아Le Bibliomane” (1832)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선량한 ‘괴짜’ 테오도르는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이다. 유명한 법률가이면서 미치광이 같은 수집가로 유명했던 앙트와느 마리 불라르(1754--1825)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장서가 너무 많아져서 결국에는 집을 여섯 채나 구입해야만 했다는 인물로, 그의 사후 남겨진 장서의 수는 무려 60만권을 넘었으며 그의 장서가 시장에 나오면서 고서의 값이 반으로 떨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이 글의 저자인 샤를르 노르디에(1780--1884)는 낭만주의 운동의 중심적인 인물로서 1832년에는 아카데미의 회원이 된다. 문필가로서의 작업 외에 애서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주요한 작품으로는 악몽의 산문시로 꼽히는 『스마라 혹은 밤의 악마』, 요정이야기의 걸작인 『트릴비』 등이 있다. 담백한 문체로 꿈과 광기의 세계를 그려 네르발에게도 강한 영향을 미쳤으며 환상문학의 선구자로 그리고 ‘가장 먼저 온’ 초현실주의로까지 평가받고 있다.
* 옥타브 위잔느, “시지스몽의 유산L'Heritage Sigismond” (1895)
애서가, 특히 수집가는 흔히 세상의 상식을 크게 벗어난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하는 인물로 생각되기 쉽고 소설에서도 풍자나 야유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은 참으로 철저하게 책에 미친 인간들의 이야기로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소극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소설을 쓴 저자 본인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애서가라는 점도 재미있다. 일종의 ‘근친증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인 옥타브 위잔느(1852--1931)는 프랑스의 편집자, 에세이스트, 애서가로 『부채』, 『양산』, 『왕비전하』, 『책의 종언』 등이 대표작이다.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고 삽화를 많이 넣은 호화본을 다수 출판했다.
* 샤를르 아슬리노, “애서가의 지옥L'Enfer du Bibliophile” (1860)
샤를르 아슬리노(1820--1874)는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지 않고 문학을 택했다. 1858년에 발표한 단편집 『이중생활』이 있으며 서지학과 비평의 뛰어난 결합으로 꼽히는 『낭만파 서지』(1872)로도 유명하다. 또한 보들레르